프로젝트 이인의 라시내, 최기섭이 안무와 연출을 맡은 〈쿼드(Quad)〉가 1월 21일(목)부터 23일(토)까지 신촌극장에서 공연되었다. 사무엘 베케트의 TV용 단편극 <쿼드>를 안무 스코어로 읽어내고자 한 이번 작업을 위해 무용수 강호정, 김선주, 송명규, 유지영이 함께 하고, 지미 세르가 퍼커션으로 참여했다. 소설가이자 극작가인 사무엘 베케트는 생애 마지막 시기인 1970년대 중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독일 공영방송 SDR의 지원을 받으며 TV용 단편 작품에 집중했는데, 1981년 발표된 <쿼드>는 이 시기에 만들어진 네 편의 작품 중 하나다.
베케트가 창작의도에서 밝힌 것처럼 원작 <쿼드>는 TV에서 상영될 목적으로 창작되었다. 반면 라시내와 최기섭에 의한 <쿼드>는 카메라의 시선에서 벗어나 공연되는 것을 목표로 제작되었다. 일반적인 프로시니엄 공연장의 객석이 무대를 올려다보는 형태인 것과 달리 신촌극장에서의 이번 공연은 높은 의자에 앉아 낮은 무대를 바라보게 되어 무대에서 펼쳐지는 퍼포먼스가 수평면을 지향하며 때로는 시선을 분산시키는, 그래서 집중을 더욱 요하는 공연이 되었다.
베케트는 작품에 “네 명의 플레이어와 조명 그리고 퍼커션을 위한 작품”라는 부제를 달았는데, 공연이 시작되면 플레이어로 제시된 4인의 무용수들은 무표정한 걸음으로 뚜벅뚜벅 사각형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집요하게 반복되는 워킹과 4방향 플로어 패턴의 조형성에 근간을 두고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시각화된다. 눈앞에서, 또는 관객의 몸 앞에서 펼쳐지는 공연이기에 걸어가는, 또는 걸어오는 플레이어들과 관객의 거리는 더욱 도드라진다. 시종일관 걸음으로 채워지는 공연에서 관객의 시선은 퍽 자유롭다. 거리를 재어가며 한 걸음씩 전진하는 발을 바라볼 수도 있고, 그 발들의 놓임을 4명의 무용수들이 각각 어떻게 구사하는지 연기술을 감상할 수도 있다. 누군가는 원작 <쿼드>에서 수도승의 의복과 두건이 의상 디자이너 정호진에 의해 새롭게 해석된 네 가지 색 가운과 찰랑이는 체인으로 가려진 안경 액세서리에 주목할 수도 있다.
4명의 무용수들이 함께 중앙으로 향하며 응집되는 에너지는, 이내 짧은 엇갈림을 지나 각자의 방향을 향해 풀어진다. 이 찰나는 마치 맞물리는 톱니바퀴를 연상시키며 묘한 희열을 준다. 그렇게 응축된 에너지는 공간을 가득 메우며 더욱 빠져들었다. 이들이 보여주는 반복된 움직임의 수행성은 평면 공간에 입체감을 더하고, 템포의 변화를 주어 작품의 밀도를 높였다. 무용수들은 일정한 속도로 무대 중앙으로 걸어가다가도 중앙의 한 지점에서 모이기 직전, 몸을 비틀며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진다. 입장 시 나눠준 전단에 인쇄된 스코어에 따르면 이 중앙 지점은 E라고 표시되어 있는데, 이는 ‘위험지대’를 의미한다(전단에 이 내용이 함께 고지되었더라면 움직임에 대한 이해를 보다 높일 수 있었을 것이다).
반복되는 행위가 일으키는 지루함을 못 이긴 관객은 사각형 내부에서 눈을 돌려 공연의 공간의 분위기를 이끌고 있는 지미 세르의 연주를 감상하기도 한다. 다양한 안무가들과 작업을 이어가고 있는 그의 음악은 움직임이 제 자리를 잃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자연스럽게 들어온다. 이번 음악 또한 신촌극장의 작은 공간을 적당한 긴장감과 편안함이 오가는 그의 섬세한 자극이 함께 했다.
이런 요소들에 대한 시선의 옮김은 관객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 주관되기보다는 사실 관객 개인이 눈을 돌려가며 벌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베케트가 제시한 요소들을 꼼꼼하게 검토해가며 만들어진 연출인 만큼 관객들도 그런 요소들을 검토하며 종합적인 감상에 이르게 된다. 이런 경험의 창출은 당연하게도 신촌극장이라는 공연장에서 공기를 나누며 마주한 상황이었다는 점에서 촉진된다. 여기에서 창작진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사무엘 베케트의 제안 이후 수많은 <쿼드>의 구현이 이뤄졌을 것이다. 실제로 인터넷을 검색해보면 중간중간 걷기 외에 다른 움직임을 삽입한 버전*이나 심지어 로봇을 이용한 작업**도 살펴볼 수 있다(로봇 버전은 브루스 나우먼이 1960년대 자신의 작업실 바닥에 설치하고 실험적 작품들을 쏟아낸 사각형들을 연상시킨다). 이번 <쿼드>에서는 본래의 대본을 전반적으로 충실하게 따르되 각각의 요소에서 변주를 가하는 것으로 차이를 발생시켰다.
<퀴드>는 스코어에 대한 창작자의 지식과 움직임이 합쳐져 완성된 개념무용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정의는 움직임의 스타일이나 테크닉의 과시보다는 개념을 우선시했다는 점, 몸의 연구를 위해 실험하고 프로시니엄 무대를 탈피해 공간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만들었다는 점, 그리고 우리가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기능적 우수함보다 실험성과 개념이 구현되는 방식이 두드러졌다는 점 등에서 가능했다. 감정이 배제된 표정 없는 무용수들, 미니멀한 춤어휘가 일반적인 공연을 예상한 관객들에게는 신선하게 다가온 반면, 개념에 비해 전단의 설명을 읽지 않고서는 파악이 힘들어 따라가는 데 장벽을 느끼게 하는 무대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분명 어설픈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낄 때보다 견고한 세계를 엿보는 즐거움을 주었다.
프로젝트 이인의 이번 작업은 재현을 넘어 오늘의 시각에서 또 다른 스코어를 남겼다. 무대 위에서 완성된 결과를 보여준다기보다 스코어를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좀 더 가까웠고, 그렇기에 무용수들의 스텝을 따라가고 방향이 바뀌는 데 따라 시선을 이동시키면서 관객들 또한 스코어를 만들어가는 이 과정에 동참하고 있다는 인상이었다. 과정에 대한 고민과 담론이 많아진 시대, 새로운 갈래를 보여주는 그들의 신선한 시도와 같은 젊은 창작자들의 과감한 실험이 더욱 기대되는 2021년이다.
참고:
*걷기 외에 다른 움직임을 삽입한 버전: https://youtu.be/gXyIkFd4z5M
**로봇을 이용한 작업: https://youtu.be/0GP0nJhFS3o
참여자_ 서현재, 윤단우, 이세승, 장지원
대표 교정_ 윤단우
사진제공_ 프로젝트 이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