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바리와 주나모가 듀엣으로 활동하는 2인 즉흥그룹 바리나모가 3월 13일부터 21일까지 성수동 모므로살롱에서 <아나킥 리추얼(Anarchic Ritual)> 공연을 진행했다. 그들은 9일간 16명의 연주자와 7회의 즉흥공연, 2회의 즉흥잼을 펼쳤다. 타무라 료(퍼커션), 농담(보컬), 유태선(트럼펫), 이응석(콘트라베이스), 지미 세르(전자사운드), 김예슬(장구), 심은용(거문고), 손성제(색소폰), 하임(일렉트로닉), 서정민(가야금), 송지윤(대금), 김선기(드럼), 김예지(해금), 김대희(일렉트로닉), 이선재(색소폰), 심운정(장구) 등 다양한 장르의 뮤지션들이 대거 참여한 이번 공연에서 바리나모는 매번 다른 연주자들과 만났다. 각 공연마다 참여 뮤지션이 바뀌므로 매번 다른 음을 듣고, 음악 또는 악기의 변화와 그에 조응하는 움직임의 변화를 함께 느낄 수 있도록 구성되었기에 즉흥으로 난장을 벌리면서 매번 다른 의례를 보여주었다.
사실 의례라는 것은 특별한 것이 아니다.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의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일상의 행위가 의례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특별한 문턱(limen)이 필요하다. 이렇게 일상적이며 평범의 문턱을 넘어 비일상적이며 비범한 세계로 들어서는 것을 인류학에서는 리미널리티(liminality)라고 칭한다. 대개 리미널리티로 가기 위해서 춤, 음악, 노래를 동원한다. 소리와 몸짓으로 트랜스(무의식, 명상, 최면 등)에 빠져들고 고양된 의식 속에서 마술적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이들에게 리미널리티로 접속하는 길은 접촉즉흥(Contact Improvisation)이었다. 독무들의 구성 사이에 등장하는 접촉즉흥은 그동안 함께 쌓아온 시간에 반비례하게 짧은 순간 두 사람간 호흡의 동기화가 이뤄진다. 접촉즉흥의 물성 탐구에서 출발하나 금방이라도 인간관계의 드라마를 창출할 것 같았고, 그러면서도 연극적 상황은 관객들 의식에만 맡기듯 물리적 신체 탐구와 극적 연출 사이 영역에 머무르며 관객과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한다.
ⓒ바리나모x모므로살롱
실제 공연에서 2명의 무용수는 무용원 창작과 전문사 출신들로 테크닉에 집중된 무용의 형식이 아니라 그들 자체가 직면하는 소리와 공간을 활용한 움직임의 형태에 충실했다. 서로가 서로의 움직임과 소리에 반응하고 음악가들도 기존의 형식을 없애고 현장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에 따라 연주 되었을 것이다. 음악과 소리의 파동을 감각하는 본연의 몸을 드러내고자 한 바리나모의 움직임은 앞서 언급했듯이 전문적으로 훈련받은 몸이 드러내는 스킬을 배격함은 물론 의상 등에서도 장식적인 요소를 걷어낸 채 움직이는 신체만을 남겨놓았다. 성별을 구분하는 최소한의 기호조차 사라진 신체는 그저 물성을 가진 어떤 것으로만 존재했는데, 이들의 움직임은 인간의 이지(理智)마저 지워버린 듯 소리와 움직임, 신체와 움직임, 움직임과 움직임 사이의 작용과 반작용으로서만 기능했다.
3월 17일 공연은 송지윤(대금), 서정민(가야금)의 연주가 형식을 탈피하는 새로운 연주법을 보여 주었다. 송지윤(대금)은 거친 호흡으로 불기와 울부짖는 소리를 통해 고조된 분위기에 긴장감을 더했다. 서정민은 가야금에 천을 덧대서 뜯기도 하고, 활을 사용하며 틀을 깨는 신선한 연주법을 선보였다. 이들의 즉흥 연주와 김바리와 주나모의 움직임이 교차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낯선 질감은, 중앙 무대를 둘러 앉은 관객들의 시선이 겹쳐지며 더욱 흥미를 더했다. 20일 공연의 뮤지션은 김대희(일렉트로닉), 김선기(드럼), 김예지(해금) 3인이었다. 공연 후 알았지만 이들은 ‘삼킴’이라는 이름의 ‘전자어쿠스틱 즉흥 트리오(Electroacoustic Improvisation Trio)’였다. 공연을 마치고서야 알 수 있었음은 뮤지션들의 공간 배치가 공연장의 양쪽 끝과 중앙에 있어 한 그룹이라면 응당 한자리에 모여있을 것이라는 예상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의 선택은 일방향으로 음악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방에서 소리의 진동을 무대로 모아주는 것에 적합한 것이었다. 전반적으로 뮤지션들의 연주는 음파의 진동이 오래, 멀리 퍼져나가지 않도록 제약하며 음악이나 소리가 공간을 장악하는 것을 피하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는데, 이를 통해 연주하는 뮤지션이 전면에 드러나는 것이 아닌 음악으로서, 소리로서 공간 안에 존재하는 방식이었다. 이들은 퍼포머들의 움직임을 침해하지 않고 움직임과 대화를 주고받는 듯한 어울림을 만들어냈다.
ⓒ바리나모x모므로살롱
움직임에 주목하자면 뮤지션의 음악이 점진적으로 쌓여갈 때 어느새 등장한 무용수는 서두름 없이 자신 몸에서 움직임의 동기를 찾아나간다. 그러나 이때의 찾아감은 사변적이지 않은, 몸으로 행하는 과정에 있다. 걷기 정도의 가벼운 속력은 미세하고 꾸준한 다른 무용수의 가속을 통해 뛰기로 옮겨가는데, 움직임 어휘를 배열하는 방식이라기 보다는 끊임없이 신체 부분들 간의 인과성을 그 자리에서 실험하고 있었다. 두 무용수는 솔로와 듀엣을 통해 서로의 움직임에 집중한다. 그들은 유연한 관절을 통해 물리적 원심력도 구체화하지만 관객들 너머로 향하는 시선과 몸통의 펼침을 통해 심상적 원심력을 구현한다. 또한 바닥 가까이로 낮게 엎드리다가도 순간 뛰어올라 높이의 위계를 전복시킨다.
음악과 움직임뿐만 아니라 <아나킥 리추얼>에서 모므로살롱의 ‘살롱’이라는 공간성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살롱(salon)은 17-18세기 유럽에서 꽃피운 사교 모임을 뜻했다. 주로 귀족층 부인들이 호스트가 되어 지인들을 초대하여 철학과 예술에 대해 토론하고, 문학작품을 읽고, 음악을 연주하고, 함께 춤을 추며 어울리던 공간이 살롱이었다. 신분의 위계 뿐만 아니라 성차에 따른 사회적 영역의 구분이 명확했던 시대에, 살롱은 신분이나 성별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대화를 나누고 함께 예술을 향유하는 동등한 교류의 장이었다. ‘응접실’이라는 의미를 지니기도 했던 살롱이 그러한 물리적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사적 모임의 성격을 넘어 지식과 예술의 산실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 때문이다.
ⓒ최인수
모므로살롱이 어떤 동등한 교류의 장으로서 기능하고 있다면, 그것은 기존의 제도화된 체계 속에서 관객이 작품을 만나던 것과는 다른 방식의 만남을 모므로살롱이 시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모므로살롱이 주선하는 만남은 관객과 작품의 만남이라기보다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남에 가깝다. 정철인, 박선화 등 지금까지 모므로살롱에 초청되었던 이들은 그들의 취향으로 공간을 채우고 춤을 매개로 초청된 이들과 사적인 만남을 가졌다. 특히 <아니킥 리추얼>은 모므로살롱이 주선하는 이러한 대안적이고 새로운 형태의 만남의 장에 더욱 부합하는 성격의 공연이었다.
<아나킥 리추얼>을 통해 소수의 관객과 소수 출연진의 집중도는 몰입감을 형성하기에 좋은 구조를 가진 것으로 판단되었다. 각자의 경험담을 배경삼아 볼 수 있었던 이번 공연은 두 무용수의 소통이 자연스럽게 서로를 의지하고 표현하는 방식에서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특히 과거의 살롱처럼 오늘날의 새롭게 해제된 극장 공간이 추구하는 행위자와 관람자의 소통과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상호작용이, 공연을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상되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시간이었다. 결국 <아나킥 리추얼>이 모므로살롱이라는 공간적 특수성에 부합했던 것은 신체를 통한 춤이 삶인 무용인들에게 ‘공연’보다는 ‘리추얼’로서, 다시 말해 삶에 밀접한 제의로서 사람들과 만났기 때문이다. 또한 시공간을 초월해 춤의 제의를 펼치는 그들에게 진정성이 느껴지는 것은 우리 모두를 리미널리티의 세계로 이끌었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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