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용협회에서 주최하는 젊은안무자 창작공연이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지난 92년부터 만 35세 이하의 안무자를 오디션을 통해 선발해 12명에게 무대를 제공하는 경연 형태의 공연에 올해는 총 76명의 안무자가 오디션에 참가해 역대 최고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올해 공연 역시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본 공연을 1회로 축소하고 모든 공연을 무관객·온라인 중계로 진행하였다.
올해 선정작에서 눈에 띄는 것은 한국무용을 바탕으로 한 안무자들의 약진으로, 본선 무대에 오른 12명 가운데 7명이 한국무용 전공이었다. 최우수상인 문화체육부 장관상을 수상한 권미정은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선정되며 치열한 경쟁 속에서 창작력을 인정받았는데, 그의 수상으로 젊은안무자 창작공연은 지난해 최종인에 이어 다시금 한국무용의 강세를 이어갔다. 최우수상에 대한 특전으로 권미정의 작품은 서울무용제 ‘열정춤판’ 초청작으로 재공연의 기회가 주어진다.
이유진의 <죽은 것들의 전시장>
조의연의 〈SHAKE HANDS〉
염정연의 〈12121?〉
첫날인 4월 14일에는 이유진, 염정연, 조의연의 작품이 차례로 올려졌다.
이유진의 <죽은 것들의 전시장>은 SNS의 타임라인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으로, 공연은 SNS의 단문 메시지를 시각화한 듯 기다랗게 배열된 테이블 위 이유진의 독무로 시작된다. 척추를 활처럼 뒤로 휜 자세는 낮아진 골반과 함께 무용수의 얼굴을 도드라지게 하는데, 이 포즈는 얼굴이라는 상징으로 나타나는 외면의 전시에 대한 안무자의 관점을 짐작케 한다. 자신들의 시간을 실어 나르는 듯, 다른 세 명의 무용수들은 각자 테이블을 이동시키며 분주하게 움직여 독무와 대비를 이룬다.
주고받는 소통이라기보다는 영역 다툼에 가까워 보이는 갈등이 지나면 이윽고 테이블들은 서로 뒤엉켜 폐허가 된다. 몸을 내세울 방향을 잃은 네 자아는 고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듯 사방으로 얽히고설키는 군무를 보여주는데, 무용수들이 두 눈을 부릅뜬 채 무대 뒤쪽으로 향하는 마지막 장면은 제목과 달리 살아서 지켜보고 기억하리라는 의지의 표현처럼 보인다.
염정연의 〈12121?〉는 목욕탕에서 쉽게 볼 법한 낮은 높이의 플라스틱 의자를 이용해 절도 있는 동작을 반복하는 것으로 안무를 전개해나간다. 첫 등장과 중간에 이 의자를 가면처럼 얼굴에 덮어서 감정을 오히려 몸으로 표현한다. 무용수들은 매우 무심하게 짝수의 숫자를 입으로 세며 그로부터 파생되는 변주들을 나열하는데, 이 숫자 세기는 중반에 이르러 단지 거친 호흡으로만 남아서 무용수의 몸을 지탱하는 의지가 된다.
안무는 트리샤 브라운이나 안느 테레사 드 케이르스마커의 기법들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데, 염정연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떠한 심적 작용에 대한 몸의 반응을 다룬 것으로 보인다. 실험적이며 재치 있는 작품이라는 평가와 함께 심사위원장상을 수상했다.
조의연의 〈SHAKE HANDS〉는 판소리 별주부전이 재해석된 음악을 배경으로 듀엣과 4인 군무를 오간다. 무대 앞 중앙에 놓인 바둑판에서 시작되는 수싸움이 무대 전체로 확장되거나 다시 응축되는 공간 활용이 눈에 띈다. 특이할 만한 것은 움직임도 느려졌다 빨라지는 연출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점인데 무용수들의 한국무용 배경과 맞물려 효과적으로 표현됐다. 특히 손가락 두 개를 뻗어 유연하게 움직이는 것은 벨기에 안무가 시디 라르비 셰르카위의 <수트라>를 참조할 만하다. 바둑판 근처의 응축과 상반되게 무대에 펼쳐진 군무에서는 발사위가 리드하여 동적인 균형을 이룬다.
다만 바둑판 위에서 펼쳐지는 손가락의 섬세한 움직임이 카메라의 클로즈업을 통해 화면 밖의 시청자들에게 인상적으로 전달된 것은 비대면 공연의 장점으로 볼 수 있으나 막상 현장 공연에서는 앞좌석과 뒷좌석 관객들 간의 시야 차이가 감상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어 전달 방식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
권재현의
박진경의
둘째 날인 4월 16일에는 윤하영, 권재현, 박진경의 작품이 올려졌다.
윤하영의 <스프링 뉴턴(Spring Newton)>은 빠른 타악 리듬과 함께 군무의 움직임으로 시작한다. 작품 전체를 통틀어 뚜렷한 줄거리를 제시하지는 않지만 작품의 구성요소와 움직임을 통해 작품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양동이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판초우의를 입은 무용수들은 이러한 소품과 의상을 사용하여 개발한 움직임을 행한다. 예를 들어 맺어주는 호흡과 함께 우의의 끄트머리를 팽팽하게 잡아당기거나 물을 쏟아 버리듯 원심력을 이용해 양동이를 크게 돌리는 식이다.
특히 5인무라는 구성의 특징을 살려 군무의 대형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데, 다함께 모여 차례차례 기울거나 회복하는 순환은 이 구성을 고려한 군무이다. 물이 실제로 등장하지는 않으나, 물을 몸에 끼얹거나 흩뿌리는 동작들을 보여줌으로써 물의 이미지를 구현해 생명이 움트고 시작되는 봄의 힘을 춤으로써 보여주었다. 작품에서 생생하게 감각되는 움직임은 대지에서 시작되는 힘을 이용하는 한국무용의 동작적 특성과 맞닿아 있어 매우 인상적이지만, 각 장면의 개연성을 보여주었다면 관객들로 하여금 더욱 공감을 불러일으켰으리라는 아쉬움도 남는다.
권재현의 〈Tool〉은 시계 초침소리와 함께 금속 재질의 직사각형 테이블을 제시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리듬이라기보다 둔탁한 채찍질에 가까운 이 반복적인 음향에 맞춰 무용수들은 컨베이어벨트 위의 물건들처럼 테이블 위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굴러간다. 사방에서 익명의 노동자들이 지원을 오지만 냉정한 공장의 시간은 사람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전차의 무한궤도처럼 무용수들은 이 순환의 일부일 뿐이며, 이들의 모습은 인간이 아니라 테이블에 딸린 부속품처럼 보인다.
무대 한가운데 길게 세로로 세워진 테이블에 기대 선 한 무용수의 모습은 언뜻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를 연상케 하나 구세주가 아니라 희생양인 그는 부활하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사라지고 만다. 이 같은 섬뜩한 결말은 현대사회의 비인간화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개개인에게는 ‘대체 불가능한 존재란 무엇이며, 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하게 한다. 젊은 안무자의 세상을 향한 시선과 표현성이 인상적인 작품이며, 작품에 깊이가 있다는 호평과 함께 우수상을 수상했다.
인디언들은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고 한다. 박진경의 〈Indian Rain Ritual〉은 인디언의 기우제를 소재 삼아 제의에 대해 탐구한 작품이다. 기존에 제의를 다룬 많은 작업들이 구조에 대하여 천착했다면 박진경은 그보다 제의의 움직임을 수행하는 몸 자체가 가진 혼종성을 뽑아내서 결합시키고 있다. 주목할 만한 장면은 중반부에 남성 무용수 뒤로 여러 개의 팔이 뻗어져 나온 후에 그려지는 무용수들 신체의 만다라이다. 패턴의 아름다움은 그로테스크와 겹쳐져 있어서 순간순간 나타났다 알아챘다 싶을 때에 이미 사라진다.
6명의 무용수들이 작품 후반부에서 각자의 돗자리를 가지고 춤을 추는 장면은 제의를 가장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 열렬하게 제의를 지내던 무용수들이 모두 떠나고 마지막에 한 명만 남아 있다가 마침내 그 한 명의 무용수마저 자리를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이 장면은 끊임없이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의 덧없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언제 올지도 모르는 비를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고 제의를 지내는 것이 기우를 위한 최선은 아닐 것이다. 초중반에 야심찬 제의의 장을 연 후에 말미에 이르러 소극적으로 맺은 결말은 못내 아쉽다. 하지만 동시대성을 고려하며 민속 주체 사이를 넘나드는 움직임의 선택이 과감하며 고무적이다.
양병현의 <바람소근>
셋째 날인 4월 18일에는 김하나, 권보빈, 양병현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김하나의 〈8, 3∞0 = 生(팔만삼천생)〉은 생의 윤회를 주제로 한 작품이다. 제목은 고려사의 유물인 팔만대장경과 불교의 삼천세계에서 따온 듯한데, 모티브가 된 단어의 개별적인 의미보다는 영겁을 거듭하며 이어지는 생의 아득한 시간을 의미하는 듯 제목에 무한(∞)의 상징을 넣어 표기하고 있다. (참고로 고대 인도에서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숫자를 표현할 때 8만5000이라 하고, 인간의 번뇌가 많다는 의미에서 8만4000 번뇌로, 석가모니가 해탈하여 부처가 되는 길을 설법한 것을 8만4000 법문으로 칭한다. 그러니 작품 제목을 팔만오천이나 팔만사천이 아닌 팔만삼천으로 한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공연이 시작되면 형체를 분간하기 어려운 하나의 생명체가 어두운 조명 아래 꿈틀거리고 있다. 어둠에 익숙해진 관객의 눈은 곧 점차 이 하나의 몸이 두 신체의 연결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된다. 척추의 파동은 점차 사지로 뻗어나가지만 몸과 몸의 연결은 꽉 맞물린 기계처럼 서로를 놓아주지 않는다. 다음 장면에서는 상하의를 서로 나눠입는 다른 두 신체가 등장한다. 처음과 마찬가지로 신체 간 연결은 지속되나 차츰차츰 서로의 분리가 허용된다. 그럼에도 문득 지나가는 기억은 육체의 제한과 생의 의지의 막강한 힘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음을 상기시킨다. 한국무용 기반으로 무용을 수학한 안무가의 작품이라면 으레 떠올릴 기대가 무색하게, 밀도와 난이도가 높은 두 짝의 파트너링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권보빈의 〈Wings〉는 올해 선정작 12편 가운데 유일한 발레 작품이다. 여성 무용수의 독무로 시작되는 작품은 팔과 다리를 분명히 하늘로 향하며 날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주지만 무용수의 몸은 무릎이 땅에 닿아 있거나 몸통이 수평적으로 낮아져 있어 그러한 의지를 실현하지 못한다. 이 인물은 곧 어두운 반투명의 큐브에 스스로를 가둔다. 큐브의 바깥 공간에서는 두 개의 이인무가 펼쳐지면서 남녀 간 애정이, 그리고 이성관계에서 서로가 날개일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인무가 끝나면 큐브에 갇혀 있던 여성에게로 한 남성이 다가가 베일을 걷고 세상으로 나오기를 권유한다. 이 장면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남성에 의한 여성 구원 서사를 연상케 하지만 이후에 펼쳐지는 이인무는 좀 다른 형국을 창출한다. 남성의 움직임은 이중적인데, 여성의 몸을 감고 있는 검은 천을 풀어 여성을 자유롭게 해주려는 듯 보이기도, 다른 한편으로는 옭아매는 듯 보이기도 한다. 여성은 남성을 향하기보다는 그 바깥으로, 스스로 서려고 노력한다. 앞 장면에서 펼쳐진 이인무들과는 대조되는 다른 남녀관계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안무자는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날개를 펼칠 때에야 과거에서 미래로 날아오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양병현의 <바람소근>은 현대인을 위한 동화 같은 작품이다. 공연에서 관객들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은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아니라 성우의 목소리다. 속삭이는 듯한 차분한 내레이션은 위안의 한숨이 바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려나간다. 두 명의 무용수가 이 목소리의 흐름에 따라 바람의 움직임을 선사한다. 이 두 바람은 때로는 결을 함께 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다른 감정을 가지고 다른 방향으로 옮겨가기도 한다. 그러나 자연의 바람처럼 무작위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안무자는 바람을 형상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안무법을 사용하고 있는데, 바람이라는 자연물의 체현, 감성의 형상화를 시도해나가는 과정은 오히려 기존의 현대무용 움직임 어휘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스트릿댄스의 신체 분절과 유연한 사지의 웨이브로써 나타나는 바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설득력을 갖추고, 관객의 마음을 간질인다.
박래영의 <방백>
마지막 날인 4월 21일에는 박유나, 권미정, 박래영의 작품이 공연되었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동양철학에서 빠질 수 없는 천지인 사상이다. 한국무용의 정신도 이 사상과 맞물려 표현되고 상징되고 있다. 박유나의 〈11⑵〉은 공연을 보기 전, 작품 제목에 먼저 눈길이 갔다. 이진법의 수. 일반적이지 않기에 한 번에 읽을 수 없는 숫자다. 허나 이것이 숫자 3을 가리키고, 이내 천지인을 표현한다는 것을 알게 되자 다소 상투적인 접근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앞섰다. 그러나 작품을 다 보고 난 후의 생각은 ‘상투적일지라도 그것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구나’로 생각이 바뀌었다.
음과 양으로 각각 상징되는 적색 끈과 청색 끈을 서로 연결한 네 명의 무용수 외에 중심을 맡아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안무자까지 총 5명이 등장한다. 5명의 무용수가 보여주는 움직임은 군더더기 없이 간결하지만 구도는 매우 변화무쌍하고 다양한 전개를 보여준다. 마치 검은 먹을 잔뜩 머금은 붓에서 떨어진 화선지에 피어나는 수많은 아지랑이를 보는 듯하다. 허리에 매단 끈은 인물들의 거리가 멀어지면 더욱 팽팽해지고 가까워지면 오히려 느슨해진다. 안무자는 이러한 음양이 가진 기의 탄성을 몸의 사용에서도 드러낸다. 무게를 낮게 두어 땅에 가까워진 상태로 팔은 마치 날아가기 시작한 화살처럼 날카롭다. 이러한 중심이 잘 잡혀 있는 개별 인물들은 때로는 홀로, 또는 둘이서, 그리고 그보다 큰 수로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한다. 모든 경우의 수를 검토해나가며, 이러한 분별의 논리를 천지인의 사상과 융합시켜나가고자 하는 안무자의 차후 작업도 기대해볼 만하다.
권미정의 〈Gobi〉는 제목 그대로 고비사막을 모티브로 한 작품이다. ‘고비’는 몽골어로 ‘거친 땅’을 의미하는데, 작품은 도입부를 사막과 같은 메마른 느낌의 조명과 함께 시작한다. 무대 중앙에는 하나의 결단, 한 순간을 짚어내는 팔의 내려침을 반복하는 인간이 있다. 이후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길 수 없는 타는 갈증을 신의 탓으로 돌리듯이 하늘을 향해 원망하는 듯한 신경질적인 제스처를 취한다. 제목에서 유추해 본다면, 사막과도 같은 황량한 환경에 놓인 육체들이 그들에게는 신기루와도 같을 물을 찾아 헤매는 것으로 보인다. 안무에서 척추를 둥글리는 동작이 많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이는 타오르는 듯한 사막의 아지랑이를 떠올리게 하였다.
작품 중반부터는 이러한 신기루는 환영에서 환상으로, 그 후에는 환상에서 실제로 차원이 옮겨진다. 물소리와 함께 장면전환이 이루어지며, 이때부터 움직임은 차분해지고 유연하고 부드러워진다. 그리고 이 작품의 중요 메타포로 보이는 수레가 등장한다. 수레가 쉬지 않고 천천히 움직이는 동안 무용수들은 수레 안과 밖을 오가며 움직인다. 끊임없이 수행하는 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를 통해 안무자는 사막에서의 오아시스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찾아가는 과정임을 말하고 있다.
연극에서 ‘방백’은 혼자말로 처리되는 대사로, 무대 위의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달되지 않고 관객들에게만 전달된다는 약속을 가리킨다. 박래영의 <방백>에서도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서로에게 전달되지 않고 단절되어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두터운 코트를 걸친 세 명의 인물이 어깨를 맞대고 걸음을 옮겨나간다. 고장난 광대처럼 각자 풍선을 하나씩 입에 물고 있는데, 어기적어기적 걸어갈 때 이 풍선이 흔들리는 모습이 알 수 없는 우울함을 끌어내고 있다. 바닥에 전체적으로 깔린 커다란 비닐 가장자리에 도달하면 으레 프로그램이 그렇게 설정됐다는 듯 그저 각도를 틀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뚜렷한 목적지가 없는 발의 옮김은 부조리하고 이 인물들이 가끔씩 내보이는 팔꿈치와 팔은 움직임의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무용수들은 계속해서 무릎을 약간 구부리고 몸에 진동을 주며 발걸음을 작게 내딛는데, 이 움직임은 무용수들의 불안하고 초조한 심리를 드러내고 있는 듯하다.
인물들 사이에서 차이가 발생하는 지점은 두 명의 풍선 바람이 빠지는 와중에 한 명의 풍선은 그대로 있는 때부터다. 이 외딴 인물은 땅에 쓰러져 구르게 되는데, 그 동선에 가로막힌 나머지 인물들의 메시지는 더욱 바깥세상을 향해 나아갈 수 없다. 이러한 막힘 또는 소통 가능성의 부재는 무대 뒷벽을 부각시킴으로 극대화된다. 결국 실존의 참을 수 없는 무게는 무용수들의 발작적인 경련으로 나타난다. 비극도 희극도 아닌 이 무대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와 같은 우리 자신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들이다.
이번 젊은안무자 창작공연은 전반적으로 창작의 경계가 더 이상 장르로 구분 지을 수 없는 지점에 이르러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테크닉적인 장르의 특성 외에는 동시대적인 주제를 사용하고, 의상과 소품에서도 안무가들 스스로가 장르의 경계없이 창작안무를 시행하고 있는 것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또한 한정된 예산으로 작품을 만들면서도 안무가들 간 개별적인 투자비용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났는데, 이는 현장 관람과 달리 영상을 통해 관람할 경우 고민해봐야 하는 부분으로 여겨진다. 이제는 현장과 온라인이 동시에 이루어지거나 별개로 진행되는 형식이 하나의 공연 형태로 자리잡고 있으며, 공연이 경연으로 진행되는 만큼 안무가는 현장과 영상의 두 가지 표출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젊은안무자 창작공연은 제목 그대로 젊은 안무자들에게 창작의 기회를 주는 공연이다. 오디션을 통해 안무자를 선정하고, 최우수상 수상자에게는 서울무용제에 초청되어 재공연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안무자가 안무 능력을 인정받고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니만큼 신진안무가들, 무용가들의 참여에 있어 좀 더 접근성이 편리한 시도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대학원생, 대학 졸업생들 중 안무를 하고 싶고, 공연을 하고 싶지만 교수님들의 추천이나 권유가 없으면 신청 자체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러한 부분을 확대하는 방안이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참여자_ 박원정, 오정은, 윤단우, 이세승
대표 교정_ 윤단우
사진제공_ 한국무용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