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2-13일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는 김혜연 안무, 임진호 연출로 <혜석을 해석하다> 공연이 있었다. 안무자인 김혜연은 경기도무용단 상임 단원으로 무용의 대중화와 예술의 일상화를 추구하는 예술 커뮤니티 그룹 ‘여니스트’를 이끌고 있는데, 이 작품은 2019년 경기아티스트스테이지 어울여울 우수선정작으로 초연된 이후 지난해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활동 지원사업 및 서울문화재단 ART MUST GO ON 선정작으로 관객들과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제목에 나혜석의 이름을 내세웠지만 공연은 그의 빛나고도 불우했던 인생사를 연대기처럼 보여주지는 않는다. 아니, 공연이 나혜석의 이름을 빌려 말하고자 하는 것은 결국 지금 이곳에 있는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나혜석에서 노라까지, 액자 속에서 겹쳐지는 이야기
공연이 시작되면 깊은 어둠으로부터 걸어나오는 곰 한 마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 곰 인형은 공연이 진행되면서 그 외연(外延)이 넓어짐에 따라 중심적인 역할을 맡게 되는데, 인형의 옷이 갈아입혀져 결혼하는 신부로 제시된다거나, 또 다른 작은 인형을 출산하는 잉태의 이미지 등이 지나가며 빠른 전개를 보여준다.
곰 인형이 무대에서 사라지고 나면 무대에 남은 두 명의 퍼포머는 인형술사에서 무용수로 역할을 바꾼다. 2인무를 시작하면 1930년 전후의 나혜석에 관련된 일화들로 구성된 내레이션이 묵직한 성우의 목소리로 전달된다. 파리에서의 불륜, 남편과 기생의 외도, 이혼 통보 등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메아리처럼 반복되는 가운데 펼쳐지는 2인무는 이야기에 종속되지 않는다. 움직임이 이야기를 설명하지 않고, 때때로는 내레이션의 리듬이나, 이야기의 분위기 등을 따르는 것 같기도 하는 것에서 안무가가 내용과 몸짓 사이 위계에 대해 주의를 기울였음을 알 수 있다.
무대장치로는 수평의 무대와 수직의 무대막을 크게 둘러싸는 흰색 띠로 직사각형의 액자가 설정되어 있다. 여기에 프로젝션 맵핑을 하여 영상이 투사되는데, 장면에 따라 그 내용이 다채롭다. 초반의 나혜석 내레이션에서는 신문 이미지들이 제시되거나, 곰 피규어와 독무의 혼합 장면에서는 디지털을 상징하는 수북한 점들의 이미지가 펼쳐진다. 독무를 추던 김혜연은 마이크를 들고 그녀의 목소리로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이때의 연출은 작품이 하나의 액자 안에서 펼쳐지는 이야기라는 것을 분명히 드러낸다.
액자는 연출의 장치이기도 하지만 공연이 어떻게 전개될지 귀띔해주는 복선이기도 하다. 나혜석의 이야기를 하는 듯하던 무대는 어느새 다른 이야기, <인형의 집>으로 바뀌어 있다. 김혜연은 극작가 입센을 떠올리게 하는 ‘헨리크’로 변신해 있는데, 그녀가 발화하는 동화 구연 풍의 목소리는 공연을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킨다. 실제로 연극의 형식을 공연 안에 소환하는 장면에서도 반복 기법은 적극적으로 활용된다. 한번은 곰 인형과 로봇 목소리를 가진 나혜석으로 연기하는 퍼포머 사이에서 일어나는 거리감을 둔 역할극이 벌어진다. 두 번째로는 관객의 참여 유도로 인해 실제 관객이면서 일시적인 ‘배우’와 퍼포머 연주하의 전문 ‘배우’로서의 정체성이 연극이라는 형식을 통해 드러난다. 공연의 참여자로서 자리하고 있는 또 다른 관객들은 이러한 반복 사이의 차이에서 공연의 요소들을 되짚게 된다.
테이블이 하수로 옮겨지고 테이블 뒤에 숨은 인물들은 입센의 대표작 <인형의 집>의 도입부 부분을 신체극 형식으로 풀어낸다. 처음에는 테이블 주위에서 신체의 부분을 이용한 작은 움직임으로 오밀조밀하게 쌓아가다가 점차적으로 무대 전체로 영역을 넓혀나간다. 무용수들 사이에서 세밀하게 설정된 약속들의 합이 4인무에서 3인무로 전환되며 펼쳐지는데 이러한 미시적인 군무의 완성도는 객원 무용수 안현민의 역할을 되새기게 한다. 이쯤에 이르면 노라의 이야기는 신체성으로 관객에게 다가간다. 다시 말하면 언어의 연극은 몸의 유희로 바뀜에 따라 무대 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에 대해 몸을 통한 해석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공연에서 등장한 모든 존재, 즉 인형과 사물 그리고 무용수들이 중앙에 집결되며 공연은 마무리된다. 이 응집의 연결부분들에서 길게 늘어진 몸통과 하체 사이로 아기 곰들을 배출하기도 하는 기이한 신체 이미지들이 나타난다. ‘해석은 자유’ 또는 ‘혜석은 자유’라고 들을 수 있는, 발음의 모호한 겹침을 이용한 마지막 발화는 이 공연의 제목을 한 번 더 상기시킨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 공연은, 근대의 시대에 놓인 나혜석의 인물상을 현대의 관점, 즉 나의 해석으로 제시하고자 하며, 여기에서 ‘나’는 단지 고정된 주체가 아니라 탈근대적인 ‘우리’임을 외치고 있다. 전반적으로 텍스트가 많고 친절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나 숨겨진 함의는 만만치 않다. 몸과 무용의 상대적 소외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신체들의 혼합을 맞춰나가며 감각을 통한 이해라는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자 하는 젊은 무용가의 노고가 느껴지는 공연이었다.
아직도 ‘해석’의 자유를 외쳐야 하는가
안무자는 관객에게 인형과는 달리 자신의 의지로 주체적 삶을 살아간 나혜석에 대한 해석을 요구한다. 결혼이라는 제도에 얽매였지만 과감히 자신의 길을 개척해 시대를 앞서간 여성 나혜석을 보는 현대인의 시선이라는 주제는 무거웠지만 표현방식은 귀여운 곰 인형이 등장하고 마치 아동극을 보듯 대사와 움직임을 가볍게 처리함으로써 반어법을 사용했다.
안무가 김혜연이 보여준 장면 사이사이의 무게를 덜어낸 이음새와 개성 있는 무용수들의 연기력이 돋보였으며, 작품을 이끄는 중심 소재로 의인화된 커다란 곰 인형은 관객들의 유연한 감상과 흥미를 자극하였다. 또한 안무자가 던진 질문과 감상의 폭을 확장시켜주는 살아 있는 디테일과 연출력은 융복합공연의 긍정적인 시도였다. 실제 움직임은 안무자가 경기도무용단 단원임에도 한국무용과 현대무용의 경계 없이 독특한 춤어휘를 구사했다. 전체적으로 곳곳에 숨겨진 메시지와 정교한 움직임의 조합은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 무대였다.
다만 초반부에는 인형극을 보듯 편하게 관람했으나 해석이 부담으로 다가왔을 때 그 난해함을 피해가기는 어려웠고, 후반부의 <인형의 집> 주요 장면 이후 다소 일방적이고 조급한 전개는 아쉬움으로 남았다. 나혜석과 <인형의 집> 노라를 연결해 가부장제가 여성을 어떻게 억압하고 그 안에서 여성이 어떤 좌절을 겪었는지에 대해 움직임과 내레이션, 소품과 영상 등 무대에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사용해 적극적으로 발화하면서도 해석은 자유라고 굳이 반복해 강조하는 것 역시 방어적인 태도로 읽혀 공연 내내 발화된 목소리의 힘을 약화시키는 데 일조했다.
물론 창작자가 이러한 태도를 취하게 되기까지는 창작자 본인의 성향보다는 창작자가 한 겹 방어막을 치게 만드는 주변 환경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술가가 표현의 자유를 사수하기 위해서라면 범죄(그것이 언어폭력에 머무르는 수준이건 신체주권을 침해하는 성폭력에 이르는 것이건 간에)조차 용인받아야 한다는, 혹은 범죄를 통해 금기를 깨트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예술계 전체에 만연해 있음을 돌이켜본다면 ‘해석의 자유’에 대한 외침은 너무나 당연해 의아함이 들 정도다. 공연이 여성주의적 시각을 요구하기보다는 한 인간으로서의 선택이라는 포괄적 범위로 확대되는 방향으로 전개된 것은 역설적으로 창작자가 외치는 해석의 자유가 여성주의 국면에서만큼은 그리 자유롭지 않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같은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면서도 이 이야기를 뚝심 있게 무대에 올린 안무자의 용기가 더욱 빛난다. 한국무용을 전공하고 직업무용수로 활동하고 있는 중에도 사회적 이슈를 놓치지 않고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안무가 김혜연의 앞으로의 성장을 기대해본다.
참여자_ 서현재, 윤단우, 이세승, 장지원
대표 교정_ 윤단우
사진제공_ 여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