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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건반사를 통해 본 삶의 탐구: ‘차세대 열전 21!’ 중 김환희의 <파블로프의 개>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차세대예술가들의 창작 및 기획 역량을 지원하기 위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직접 운영하는 사업으로, 만 39세 이하의 예술가들을 선발하여 연구 및 조사, 워크숍, 네트워킹 프로그램, 작품 발표 등을 돕는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에 참여하는 예술가들은 연구단계, 중간 발표, 창작 단계, 작품 발표 단계의 프로그램을 거치면서 자신들이 해보고 싶은 주제나 방식을 선택하고, 선배나 동료 예술가들과 교류하는 등 다양한 기회를 갖는다. <차세대 열전>은 작품 발표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릴레이 성과발표전이다. 

 

2021년도 성과발표전은 ‘차세대 열전 2021!’이라는 제명으로 작년 11월부터 올해 2월까지 열리며, 무용 부문에서는 김소월, 김환희, 유지영, 임정하 등 4명이 참여한다. 이중 집단리뷰 참여자들은 김환희의 <파블로프의 개>(2022.1.20.(목)~21(금), 성수아트홀)를 관람하였다.

 

김환희에게 춤을 창작한다는 ‘안무’와 그 안무를 보여준다는 ‘공연’의 의미는 무엇일까? 사회 보편적인 문제를 통해 인간과 인생을 표현하는데 주력한다는 김환희는 행동심리학의 대명사 ‘조건반사’가 바로 연상되는 <파블로프의 개>를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했을까? 공연 전부터 특정한 자극에 따라 생기는 반응이 다른 성질의 자극으로도 똑같이 생긴다는 그 유명한 행동심리학의 이론이 무대에서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사뭇 기대되었다. 사실 너무 명확한 이론이나 과정이 정해져 있는 서사를 무대에 펼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칫 구구절절 이론을 설명하다가 끝나버릴 수도 있고 서사를 따라가느라 안무가의 창의성이 발휘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조금 모호하거나 조금 열려있는 주제가 차라리 안무가의 표현을 훨씬 자유롭게 한다. 김환희의 <파블로프의 개>에 대한 기대는 이런 이유로 약간의 우려를 하게 했다.

 

안내 멘트가 나온 후 무대 위에 스태프가 등장하여 무대 앞 왼편에 매달려 있는 종을 울린다. 관객들은 일제히 행동을 멈추고 무대로 시선을 고정한다. 관객들은 부지불식간에 종소리에 조건반사적으로 반응하면서 공연이 시작된다. 곧이어 흰색 실험복 가운을 입은 김환희가 풍선을 들고나와서 불더니 파블로프의 고전적 조건형성이론에 대해 강의식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작품은 예상대로 ‘조건반사’에 대한 자세하고 다소 긴 설명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김환희의 설명은 지루하지는 않았다.

 


 

스크린에 비치는 영상과 ‘조건반사’를 설명하기 위해 펼쳐지는 안무는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의 다소 긴 리서치 과정을 입증이라도 하듯 다양하고 꼼꼼하게 그리고 매우 열심히 만들어졌다. ‘파블로프의 개’가 종을 치면 먹이를 주는 줄 알고 침을 흘렸다면 이번 작품은 첫 장면에 보여준 종을 치면 무용수가 풍선을 부는 장면이 반복된다. ‘국기에 대한 경례’라는 음원을 틀고서 관객들이 거부감 없이 일어나 자신도 모르게 오른손을 왼쪽가슴에 대고 무대 앞 스크린의 태극기를 바라보게 하는 행위라든지 김환희가 신 레몬를 한가득 베어 물며 몸소 보여준 ‘슬랩스틱’ 등 관객들은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조건반사 행위들에 쉽게 빠져들었다.

 


 

세 명의 남성 무용수가 펼치는 역동적인 춤은 내용을 짐작게 하는 영상과 다양한 게임, 반복되는 시퀀스를 통해 ‘조건반사’가 ‘사회문제’로 진화되었다. 처음에는 느리고 자세히 이루어지던 행위들은 반복이 진행되면서 간략하고 빠르게 진행되었고, 이 과정에서 일어나는 우스꽝스러운 장면들에 관객들은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다. 특히, 안무가는 법이라는 테두리, 신호등, 직업병 등을 통해 삶과 일상에서 반응하고 있는 조건들을 소개하였다. 그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소방관, 참전용사, 폐소공포증 등의 PTSD(외상후스트레스장애, 트라우마)를 조건반사로 끌고 간 장면이다. 대사와 영상,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그들이 겪은 화재현장에서, 전쟁터에서, 학교폭력에서의 경험이 전혀 다른 조그마한 자극에도 그때의 고통을 겪고 있는 모습을 점진적으로 보여주며 무엇보다 이런 장면들이 매일의 일상 안에 있음을 시사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 자극도 되지 않는 사소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극이 된다는 것이 안무자의 문제의식이라고 이해되었다. 

 


 

이렇듯 김환희의 <파블로프의 개>는 시사적이면서도 안무가 특유의 재치와 명랑함이 넘친 작품이었다. 공연의 마지막 부분에서 김환희는 “당신들의 삶은 과연 온전히 당신의 것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졌다. 안무자는 작품에서 교육과 세뇌 그리고 의식과 무의식 사이에서 개개인의 삶이 어떻게 일반화되었는지에 대해 의문하며,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조건반사가 한 사람에게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말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종내에는 관객들이 ‘파블로프의 개’가 아닌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사유해 보라고 권유하였다. 

 


 

리서치 기간이 길었던 만큼 안무가가 찾아낸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하나의 주제로 다양한 안무적 소스를 찾아낸 ‘열공’을 볼 수 있었던 무대였다. 하지만 그 많은 것들이 계속해서 펼쳐져 깊이를 들여다보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다. 마지막 부분에 파블로프의 실험이 가진 동물 학대적 의미까지 꺼내 놓았던 것은 피했으면 어땠을까? 김환희가 한국창작예술아카데미 프로그램을 통해 하나에서 열을 찾는 과정을 경험했다면, 이후에는 찾아낸 많은 것 중 하나를 깊이 들여다보고 다양한 표현의 방법들을 찾아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렇다면 이번 작품은 안무자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산실’로 기억될 것이다.

 

리뷰 참여_김미영, 한성주, 장지원, 최해리

대표 편집_최해리

사진제공_박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