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유튜브, 릴스, 틱톡 등 영상 크리에이터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용계도 영상으로 공연을 홍보 및 중계하는 것은 이제 흔한 광경이 되었다. 코로나19라는 재난 시기에 영상매체는 무용인들에게 구원의 도구였으며, 특히 댄스필름이 부각되었다. 지난 3년간 코로나19 긴급 예술기금의 절반 이상은 공연영상 제작에 할애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쏟아져 나온 공연영상은 송출, 서비스, 시청할 수 있는 플랫폼이 태부족이라서 예술가들의 혼이 담긴 영상이 빛도 보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다. 플랫폼의 구축은 예술가 개인이나 사설 예술단체가 감당하기 어려우며 기업 또는 공공기관에서 나서야 하는 문제이다. 다행히 최근에 와서 정부 산하기관들이 다양한 플랫폼을 구축하고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갤러리윈도우 [스테이지 3×3]이다. [스테이지 3×3]은 대학로예술극장의 한 모퉁이에 1평 남짓하게 설치된 ‘QR 미디어 창’이다. 현재 [스테이지 3×3]에서 상영하는 것은 [아르코댄스필름 온 스테이지 3×3]이다. 대중들이 쉽게 접할 수 없었던 현대무용을 댄스필름을 통해 소개하겠다는 목적에서 시즌마다 5편의 댄스필름을 상영하겠다고 한다.
첫 번째 시즌 [아르코댄스필름 A to Z]는 <키치-키치-팝!팝!>의 도파민최(최종환) 작가가 ‘키치팝’의 컨셉으로 공간과 연출을 담당했고, 극장운영부 오선명씨가 협력 프로듀서 및 에디터로 참여했다. 이들이 선정한 다섯 작품은 <우라가노(Uragano)>(정훈목), <새다림>(김주빈), <보따리>(김선영), <춤이 된 카메라, 롤 앤 액션>(성승정), <마당-인터랙션>(M.B Crew & 김재덕 & 전혁진)이다. 현재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네이버 블로그에는 최종환 작가의 인터뷰와 다섯 개의 댄스필름이 서비스되고 있다. 이번 호 집단리뷰팀은 [아르코댄스필름 A to Z]를 통해 국내 댄스필름의 현주소를 가늠해 보고자 한다.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의 네이버블로그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aver?volumeNo=33966330&memberNo=18719577.
댄스필름은 단순히 공연 현장을 영상에 담아내는 실황 녹화, 기록의 개념이 아니다. 공연 기록에서는 필름(film)이 춤(dance)의 부차적인 수단일 뿐이지만 댄스필름에서는 예술 장르로서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몸 움직임과 카메라라는 이질적 질료는 프레임(frame) 안에서 서로 탐험하고 충돌하면서 시공 초월의 몽환적 환영(illusion)을 직조한다.
<우라가노(Uragano)>(정훈목 안무)에서 대표적으로 볼 수 있듯이 카메라라는 무기는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바꾸고 뒤튼다. 급작스러운 클로즈업이나 점프컷, 그 외의 영상 기법으로 공연장에서는 줄 수 없는 충격과 놀람을 제공하며 공포분위기를 배가시킨다. 무용수 몸의 부분을 클로즈업함으로써 무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갈비뼈의 세부와 근육의 미세함을 드러낸다.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한 무용수가 벽에 붙어서 춤을 추다가 벽에서 떨어지면서 춤을 이어가는 장면이다. 프레임을 90도 틀어 보여줌으로써 마치 무용수가 바닥에 붙어 있다가 공중으로 붕 떠오르는 진공 상태인 것 같은 환영을 만들어내는데, 엘리베이터 장면과 교차편집 되어 마치 엘리베이터가 낙하하는 것 같은 착각을 주기도 한다(화면이 돌아가 있는 것을 인지하면서도 그 묘한 긴장감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유로운 샷과 카메라 움직임, 편집 등을 통해 춤은 더욱 생동감 있게 구현이 가능하다. <새다림>(김주빈 안무)의 영화적 전개와 장면 전환, <마당-인터랙션>(M.B Crew & 김재덕 & 전혁진 안무)의 빠른 편집과 카메라 움직임 등은 필름의 매체적 특성을 통해 춤에 생명력을 부여하고 있다. 나아가 필름 자체가 춤의 주체가 된다.
댄스필름은 춤 공연의 대체재가 아니다. 춤을 보이는 다양한 방식 중 하나일 뿐이다. 춤의 핵심은 현장성에 있다. 관객은 춤 현장에서 공연자의 몸과 만난다. 공연하는 몸의 호흡과 소리, 육중한 신체성과 움직임을 자신의 몸으로 전이시키고 메타 피직(meta-physic)이라는 경험을 통해 감각과 사유를 확장한다. 한편 필름이 구현하는 현장성은 조작된 현장성이다. 필름의 시공간은 이미 지나간(촬영된) 현장이다. 역설적이게도 다른 기술적 기제들로써 더 그럴듯한 현장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 또한 필름의 특징이다. 춤에서 정직하게 보여줄 수밖에 없는 몸 움직임과 힘의 흐름은 필름에서는 자유롭게 왜곡될 수 있으며, 그럼으로써 더욱 ‘그럴듯한’ 춤 현장을 연출할 수 있다.
댄스필름을 춤의 하위 장르로 생각하거나 춤을 담아내는 영상 수단 정도로 간주할 경우 오히려 이러한 현장성이 죽어버리고 그야말로 지루한 ‘춤 영상’일 뿐 그 이상이 되지 못한다. 춤꾼의 호흡, 관객들이 자아내는 분위기, 생생한 조명 등 그 모든 것은 관객인 내가 같은 시공간을 함께 한다는 경험에서 의미를 갖는다. 이미 스크린이라는 2차원의 프레임 안에 춤을 가두어 현장성을 오롯이 담아낼 수 없는 영상은 그러므로 다른 방식으로 춤과 만나야 한다.
움직임과 역동성이 생명인 춤이 제한된 프레임 안에서 2차원적 영상 이미지로 만날 때 춤과 필름이라는 두 매체의 결합은 모순적 결과로 드러난다는 점이 흥미롭다. “미디어가 곧 메시지”라는 마셜 맥클루언의 언설처럼 댄스필름이 담아내는 메시지는 춤과 필름의 경계를 넘어선 새로운 영역일 것이다.
과거에 ‘키치(Kitch)’는 B급 정서라는 부정적 의미가 강했으나 오늘날에는 흥미 위주의 대중적 취향을 나타낸다. ‘팝(Pop)’ 역시 대중 취향의 현대적 예술 기호이다. [아르코댄스필름 A to Z]에 오른 다섯 편의 댄스필름이 모두 ‘키치’하고 ‘팝’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다섯 편 모두가 댄스필름을 표방한 것도 아니었다. 고전적인 영상기록, 포스트모던댄스 시대의 비디오댄스, 컨템포러리댄스 시대의 댄스필름, 영화성이 강한 시네댄스가 혼융된 [아르코댄스필름 A to Z]을 보며 춤은 필름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에 대한 무용계의 합의와 개념 정리가 필요함을 여실히 느꼈다.
리뷰 참여_ 여지민, 이희나, 장지원, 최해리, 한성주
대표 편집_ 최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