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춤 중심의 국공립무용단이 변하고 있다. 과거에 공립무용단체의 안무 트렌드가 발신되는 곳은 주로 서울이었으며, 지역의 무용단은 서울 트렌드를 참조하고, 반영하고, 모방하는 경향을 보였다. 최근 들어서 발신과 수신의 경로가 역전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김혜림, 홍은주, 윤혜정, 이혜경 등 창작역량이 우월한 안무가들이 제주도립무용단, 울산시립무용단, 강원도립무용단, 전북도립국악원 무용단 등 지자체의 무용단체장이나 상임안무자로 부임하면서부터이다. 이들의 창작력은 여러 차례의 대극장 공연을 통해 내공으로 쌓였고, 서울 무대로 서서히 진격해오고 있다.
국립부산국악원 무용단의 정신혜 예술감독이 안무한 <야류별곡 - 달의 시간으로 사는 마을>(이하 <야류별곡>)이 2022년 10월 28일과 29일 국립국악원 대극장 무대에 오른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현상의 이면에는 현대무용 안무가들에게 창작터전을 내주면서 혼종과 혼돈을 거듭해 온 국립무용단이 존재한다. 한국무용가들은 국립무용단으로 인해 한국춤 안무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있다며 절박감을 표출하기도 했다. 이런 차에 지자체 공립무용단들이 한국춤의 스타일(한국춤다움)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 출중한 기량의 무용수들로 감각 있는 무대를 선보이니 환호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야류별곡>은 춤의 고장 동래에 전하는 동래야류를 극장으로 가져와 한편의 무용극으로 만들어냈다. 경상도 지역에 전하는 야류, 오광대놀이에는 문둥이, 말뚝이, 양반들, 영노 또는 비비, 영감을 찾아다니는 할미, 젊은 각시를 만난 영감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하여 춤도 추고 재담도 풀어간다. <야류별곡>은 이런 캐릭터들을 성실하게 탐색해서 무대화하고 춤을 수련하여 다양한 장면들을 만들어냈다.
동래야류 자체를 보아도 즐거운 감상이 될 수 있지만, 무대화 하는 과정에서 기술적인 소도구와 춤에 집중된 구성으로 관람자들에게 동래야류에 접근하는 매개역할이 가능한 콘텐츠라 볼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의미로는 국악기로 가요를 편곡하여 공연하면 그 공연을 통해 국악에 관심을 두게 되는 접근성의 측면에서 부산국악원이 전통춤에 접근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한 것으로 보여진다.
공연에서 유독 돋보인 장면은 ‘프롤로그-달의 시간으로 사는 마을’이었는데, 무용수들의 군무가 개개인의 훌륭한 기량으로 개성을 살리면서 화합이 되었다. 또한 인형움직임을 무용수들이 나와서 공연의 틀을 잡아주는 매개로 표현한 것은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도록 잘 활용된 부분이었다. 또한 젊은 단원들의 힘있고 선이 분명한 춤은 이 공연에 쏟아 부은 노력이 전달되어 인상적이었다. 전반적으로 작품은 많은 사람들에게 재밌고 신선한 한편의 우리춤일 수 있었다.
다만 야류나 오광대가 가지고 있는 투박하면서도 진한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고졸한 해학, 탈의 움직임이 주는 현장감, 확실하게 맺고 풀어주는 경상도 배기기 사위와 음악의 긴장감, 문둥이춤이 보여주는 특유의 슬픈 신명 등 그 본래의 맛을 알고 있는 관객에게는 뭔가 채워지지 않는 허전함이 있었다. 이 허전함을 극장춤의 섬세함으로 또는 새로운 시각의 재해석으로 채워준다면 전통과 창작이 조우한 훌륭한 사례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아쉬운 부분은 남성 무용수들의 기량 부족과 연기력이 어색한 부분이지만 레파토리화 하면서 점차 발전 할 것으로 생각된다.
<야류별곡>은 전통춤을 바탕으로 다양한 매체와 실험적 창작이 시도되고 있는 최근의 동향에서 한국춤 창작의 방향성을 볼 수 있었다. 또한 정신혜 예술감독의 센스와 리더쉽 등이 돋보이는 우수한 작품이었다. 이후에는 지역성을 잘 살리고, 전통춤(전통예술)이 가진 핵심을 살리면서 창작되어진 부분들이 한국무용이 지향해야 할 창작의 일면을 구성할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이번 무대에서는 동래야류를 다뤘지만 차후 좀 더 범위를 넓혀 진도씻김굿, 경기도당굿, 남원 춘향제 등 각 지역성과 연계된 한국무용의 재창작, 재구성, 재해석으로 발전되기를 바래본다. 마지막으로 한국춤에서 서울과 지역의 경계구분은 지도상의 구분일 뿐이다. 예술성과 대중성을 갖춘 훌륭한 작품은 그 어느 곳에서나 빛을 발하기 때문이다.
리뷰참여_ 오정은, 장지원, 최해리 외 1명
대표편집_ 장지원
사진제공_ 부산국립국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