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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휴머니즘으로 본 미래: 국립현대무용단 〈내가 물에서 본 것〉

집단리뷰

Vol.111-2 (2024.11.20.)발행

필진_ 송준호, 오정은, 유수미, 장지원

대표편집_ 장지원

사진제공_ 국립현대무용단



국립현대무용단이 김보라 안무로 10월 17-19일 LG아트센터 서울 LG SIGNATURE홀에서 〈내가 물에서 본 것〉의 공연을 가졌다. 여기서의 ‘물’이란 ‘water’가 아니라 ‘matter’이다. 흔히 말하는 물질(物質)의 의미인 것이다. 본 공연에서는 장르를 불문하고 최근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포스트휴머니즘을 표방한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우리’와 ‘인간’이 하나라는 관념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하는 담론이다. 이것은 ‘우리’에는 인간뿐만 아니라 비인간의 요소(동물, 로봇, 물질 등) 혹은 존재를 인정하자는 주의이다. 즉 인간이 이미 그 자체로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다양한 외부 요건에 따라 영향을 받는 가변적인 존재라는 의미다. ‘포스트휴머니즘’이라는 거창한 용어는 당연해 보이는 이 개념에서 출발한다. 


〈내가 물에서 본 것〉은 몸에 대한 탐구를 통해 ‘우리’를 이루고 있는 인간과 비인간의 문제를 도발적으로 파헤친다. 그 시작점은 난임 상태를 치료하기 위해 시행한 김보라 안무가의 보조생식기술 체험이다. 자기가 겪은 수차례의 시험관 시술을 소재로 해서 인간, 인격, 시험관 속의 생명, 시술실에서 들리는 소리, 느껴지는 공기 등을 펼쳐 보이고자 했다. 공연이 시작되기 전 프로그램북을 통해 소개된 안무가의 경험은 작품의 이해를 돕는다. 차갑고 이질적인 기계음과 불협화음을 이루는 몸짓들은 진찰대 위에 놓인 인간 개체를 떠오르게 한다. 이후 공연의 진행 방식은 이러한 무력한 인간 존재에 대한 성찰을 시청각적으로 표현하는 데 집중한다. 철저하게 기술의 실행 대상이 된 몸들은 영혼을 담은 숭고한 존재가 아니라 생식의 매개체에 불과한 고깃덩어리(corpus)에 불과하다. 그렇기에 시종일관 이런 몸들로 채워지는 무대는 주로 추(醜)와 불쾌(不快)의 정서로 점철된다.



〈내가 물에서 본 것〉은 몸이 기술이 실행되는 매개로 전락하며 혼란에 빠진 안무가의 체험이 작품의 동력이자 안무의 키워드가 된다는 점에서 동종의 작품들과 차별점을 갖는다. 그것은 철저히 동시대적이고 현실적인 상황을 마주한 우리에게 인간 보편의 문제를 구상화해 보여준다. 이를 통해 ‘우리’라는 존재가 숭고한 관념의 담지체인 몸을 통해서만 입증되는 것도 아니고, 몸 바깥의 존재와 관계되어 완성되며, 몸 자체가 물질이기도 하다는 낯선 사유가 전달되는 것이다. 이 점에서 제목인 ‘What I sense in the Matter’의 Matter는 이 작품에서 다분히 중의적인 의미로 활용된다. 몸은 물질(matter)이면서 중요한 것(matter)이고, 그것이 다양한 영역과 연결되어 문제시되는(mattering) 것에 관한 내용이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하듯 작품은 단독자로서 존재하지 않고 지속적으로 엉켜 있는 움직임을 통해 동일자가 아닌 존재들이 공존하는 현실을 표현한다. 이는 물질을 객체나 타자로 보고 있는 전통적 유물론과 달리, 주체적으로 외부에 영향을 주는 행위자로서 바라본다는 점에서 신유물론과 연결된다. 이러한 신유물론의 관점에서는 몸도 물질의 일부이고, 생물학적 존재에 그치지 않고 주체적으로 다른 물질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내가 물에서 본 것〉의 안무 방식은 이러한 신유물론의 속성에서 대부분 차용된 것이 분명해 보인다. 


또한 신유물론적 관점은 이 작품에 내재된 페미니즘적 뉘앙스와도 자연스레 연결된다. 페미니즘은 결국 성별에 따라 몸의 해석 방식이 달라지고 이로부터 어떤 불평등과 제약이 작용하는지 묻는 학문이다. 안무가의 개인적 체험은 말할 것도 없고, 의료 기기 소리의 활용과 주체성이 박탈된 채 방치된 몸의 전시는 여성 신체에 물리적, 사회적으로 얽혀 있는 문제를 들여다보는 것은 인상적이다.




그렇다고 〈내가 물에서 본 것〉의 포스트휴머니즘이 사회적으로 배제된 타자로서 여성의 지위 회복을 추구하는 기존의 페미니즘적 태도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 몸은 생물학적 한계를 말하는 것이나 특정한 사회적 구성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여기서 몸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정의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의도적으로 일그러지고 변질된 몸(물질)들은 이를 재현하기 위한 매개체다. 이들이 표현하는 ‘이상한’ 몸이란, 기존의 휴머니즘 헤게모니에서 소외되어 정당한 ‘우리’로 인정받지 못한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공연 내내 생명 반응을 보인 주체로서 객석이라는 외부 세계에 존재감을 입증했던 ‘물질’들은 자기만의 낯선 생명 활동으로 ‘우리’라는 존재의 영역을 되묻는다. 


다만 퍼포먼스의 에너지나 오브제 활용의 방식이 전체적으로 이 같은 관념적인 테마의 무게에 눌려 있는 경향이 크다. 그 때문에 연출이나 안무가 다소 단선적으로 느껴진다. 무려 15분 정도의 시간을 할애해 드넓은 비닐 패널을 뜯어내는 초반부의 연출이 그 예인데. 파란 비닐을 벗겨낼 때의 질척한 촉감과 마찰음, 그 밑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차가운 금속판의 정서는 시술대에 누운 육체의 처지를 연상시킨다. 피부를 한 꺼풀 벗겨낸 듯, 몸의 장기를 묘사한 흉측한 의상은 성별의 구별이 불가하다. 날달걀을 바닥에 던지고 깨트려 그 점액질 위로 문질러지는 육체는 앞서 휴머니즘의 신체 개념에 맞서는 비인간/물질로서의 몸 개념을 구상화한 아이디어다. 무대 위의 한없이 연약한 육체와 뒤엉킨 관계성, 분리될 수 없는 구조와 생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의상까지, 모든 요소들은 결국 하나의 메시지로 모아지고 있다. 그것은 혐오와 차별로 점철돼 폭력과 갈등을 빚는 이 시대야말로 상호 의존과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는 반성이다. 이에 대한 당위성은 이미 팬데믹을 통해 입증된 바 있다. 기존의 휴머니즘으로는 더 이상 살아남기 어려워진 시대를 영위하기 위해서는 결국 다양한 존재들과 나란히 공존하며 새로운 ‘우리’를 구성하려는 발견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작품은 말한다. 이런 것들이 안무자 고유의 은유, 상징화된 표현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이 아쉬웠는데, 이는 퍼포먼스의 연출이나 에너지가 담론의 존재감에 종속된 듯한 인상을 준다. 물론 이는 연출의 보완과 오브제들의 재구성과 발전을 통해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국립현대무용단에 대한 기대로 공연장을 찾은 관객들에게 추(醜)의 미학은 당연히 불편하다. 보통의 무용공연은 주제와 테크닉 위주로 보게 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테크닉에 대한 부분은 접근하기 어렵고 퍼포먼스에 가까운 표현으로 실험적인 공연작품이었다. 이 부분은 ‘국립’이라는 타이틀에 있어서 규모가 주는 기대감, 대중적인 니즈와 공감이라는 측면에서 성공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특히 〈내가 물에서 본 것〉은 개념에 대한 사유가 중요한 공연이라 하겠다. 그렇기에 춤을 통해 단어를 파생하고, 질문을 유도하고, 문답 형식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과 하나의 단어에서 파생되는 파생어 형성 과정을 하나의 몸짓에서 연결 짓는 춤으로 표현한 부분은 이해 가능했다. 그럼에도 춤 동작의 의미는 무엇일까? 라는 궁금증을 유도하고 집중을 요하는 춤을 보며 몸의 언어와 상대방의 언어가 맞닿는 순간을 기다리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춤을 통해 이루고 싶었던 것은 소통이라는 생각에 우연한 만남일지라도 초면보다는 대화를 시작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며 묻고 싶었던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으로 이어졌으면 싶다. 몸은 무엇일까? 춤은 무엇일까? 라는 궁극적인 물음에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 답이라면 결국 서로가 궁금해지는 상황을 연출해낸 공연이었다.


전세계의 독자들을 위해 '구글 번역'의 영문 번역본을 아래에 함께 게재합니다. 부분적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양해 바랍니다. 

Please note that the English translation of "Google Translate" is provided below for worldwide readers. Please understand that there may be some errors.

Collective Review

Vol.111-2 (2024.11.20.) Issue

Written by Song Jun-ho, Oh Jeong-eun, Yoo Su-mi, Jang Ji-won

Edited by Jang Ji-won

Photos provided by National Dance Company of Korea



Re-questioning the definition of ‘us’ through the aesthetics of ugliness: National Dance Company of Korea’s 〈What I Sense in the Matter〉



The National Dance Company of Korea performed 〈What I saw in the Water(What I Sense in the Matter)〉 choreographed by Kim Bo-ra at LG SIGNATURE Hall in LG Arts Center Seoul from October 17 to 19. Here, “water” is not “water” but “matter.” It is the commonly used meaning of material. This performance advocates posthumanism, which has recently become a trend regardless of genre. Posthumanism is a discourse that begins by questioning the idea that “us” and “humans” are one. This is a cautionary note that acknowledges not only humans but also non-human elements (animals, robots, materials, etc.) or existence in ‘us’. In other words, humans are not complete beings in themselves, but rather variable beings that are influenced by various external factors. The grand term ‘posthumanism’ starts from this seemingly obvious concept.


〈What I Sense in the Matter〉 provocatively explores the issue of humans and non-humans that make up ‘us’ through an exploration of the body. The starting point is choreographer Kim Bo-ra’s experience with assisted reproductive technology to treat infertility. Using the material of her multiple in vitro fertilization procedures, she attempted to unfold human beings, personality, life in a test tube, sounds heard in the procedure room, and air felt. The choreographer’s experiences introduced in the program book before the performance help to understand the work. The cold and heterogeneous mechanical sounds and dissonant gestures bring to mind a human being on an examination table. The way the performance progresses thereafter focuses on visually and audibly expressing reflections on this helpless human existence. The bodies that have become the objects of the performance of technology are not sublime beings with souls, but mere corpus, mere mediators of reproduction. Therefore, the stage, which is consistently filled with these bodies, is mainly filled with emotions of ugliness and discomfort.


〈What I Sense in the Matter〉 differs from similar works in that the choreographer’s experience of being confused as the body becomes a medium through which technology is performed becomes the driving force of the work and the keyword of the choreography. It conceptualizes universal human problems for us who are thoroughly faced with contemporary and realistic situations. Through this, the existence of ‘us’ is not only proven through the body, which is the carrier of sublime ideas, but is completed in relation to existences outside the body, and the unfamiliar thought that the body itself is also material is conveyed. In this respect, the word ‘Matter’ in the title ‘What I Sense in the Matter’ is used in a rather ambiguous meaning in this work. This is because the body is matter and important, and it is about being connected to various areas and being problematic. Reflecting this, the work does not exist as an independent entity, but expresses the reality of coexistence of non-identical entities through continuously entangled movements. This is connected to new materialism in that it views matter as an agent that subjectively influences the outside, unlike traditional materialism that views matter as an object or other. From this new materialist perspective, the body is also a part of matter, and it does not stop at being a biological entity, but subjectively influences and is influenced by other substances. It seems clear that the choreography of “What I Saw in the Water” is largely borrowed from this new materialist attribute.


In addition, the new materialist perspective is naturally connected to the feminist nuance inherent in this work. Feminism is ultimately an academic discipline that asks how the way the body is interpreted differs depending on gender, and what kind of inequality and restrictions are imposed from this. Not to mention the choreographer’s personal experience, the use of medical device sounds and the exhibition of bodies that have been neglected and deprived of their subjectivity are impressive in that they look into the physical and social issues entangled with the female body.


However, the posthumanism of 〈What I Sense in the Matter〉 is not limited to the existing feminist attitude that seeks to restore the status of women as socially excluded others. In this work, the body does not speak of biological limitations or remain in a specific social construct. Rather, the body here ultimately poses an ontological question about the definition of humanity. The intentionally distorted and deformed bodies (materials) are the medium for representing this. The “strange” bodies they express are those who have been alienated from the existing humanistic hegemony and have not been recognized as legitimate “us.” Nevertheless, the “materials” that have proven their presence in the external world of the audience as subjects who showed life responses throughout the performance question the realm of existence called “us” with their own unfamiliar life activities.


However, the energy of the performance and the way in which the objects are used tend to be weighed down by this conceptual theme. As a result, the direction and choreography feel somewhat linear. An example is the direction in the beginning where a wide vinyl panel is torn off after about 15 minutes. The sticky texture and friction sound of peeling off the blue vinyl, and the emotion of the cold metal plate revealed underneath, are reminiscent of the situation of a body lying on a surgical table. The hideous costumes depicting the organs of the body, as if a layer of skin had been peeled off, make it impossible to distinguish between genders. The body that throws a raw egg on the floor, breaks it, and rubs it over the mucus is an idea that conceptualizes the concept of the body as an inhuman/material that confronts the concept of the body in humanism. All the elements, from the infinitely fragile body on stage and the entangled relationships, to the inseparable structure and costumes that make us think again about the meaning of life, are ultimately gathered into one message. It is a reflection that in this era, which is filled with hatred and discrimination and causes violence and conflict, interdependence and self-reflection are necessary. The legitimacy of this has already been proven through the pandemic. The work says that in order to survive in an era where it is no longer possible to survive with existing humanism, we ultimately need to discover and make efforts to coexist with various beings and form a new ‘we’. It was regrettable that these things were not expressed through the choreographer’s unique metaphors and symbolic expressions, which gave the impression that the direction or energy of the performance was subordinated to the presence of the discourse. Of course, this seems to be an area that can be sufficiently improved through the supplementation of the direction and the restructuring and development of the objects.


The aesthetics of ugliness are naturally uncomfortable for the audience who visited the performance hall with expectations for the National Dance Company of Korea. Usually, dance performances are focused on themes and techniques, but in this performance, the parts about technique were difficult to approach and it was an experimental performance piece with expressions close to performance. This part is questionable whether it was successful in terms of the expectations given by the scale of the title ‘National’, and in terms of popular needs and sympathy. In particular, 〈What I Sense in the Matter〉 is a performance where thinking about concepts is important. Therefore, it was understandable that it derived words through dance, induced questions, and created an atmosphere of question-and-answer format, and expressed the process of forming derivative words derived from a single word through dance that connected them with a single gesture. Nevertheless, it was not easy to wait for the moment when the body language and the other person’s language met while watching the dance that required concentration and inducing curiosity about what the dance movements meant. What I wanted to achieve through dance was communication, so I thought it would be better to start a conversation rather than a first meeting even if it was a chance meeting, and I hoped it would lead to a time where I could talk about what I wanted to ask. What is the body? What is dance? If I think the answer to the ultimate question is what I think, it was a performance that ultimately created a situation where both sides became curio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