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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K-발레 월드" 폐막 공연에서 본 두 작품 - 김용걸과 김주원


  김용걸의 무대엔 세 개의 중심이 있다. 오른 쪽 맨 앞에 선홍색 드레스의 여인이 홀로 누워 있고 그 뒤편 무대 가장 깊은 곳에 모여선 검정색 운동복차림 무용수들이 구원을 기다리는 듯 애타게 손을 흔들고 있다. 반대편 왼쪽 무대 한가운데서 살색 타이트를 입은 한 쌍의 남녀가 움직임으로써 춤은 시작된다. 한국발레협회(김인숙)가 주최한  "K-발레 월드 2014"의 폐막 공연(9.4~5, 아르코대극장)에 선정된 김용걸의 <빛, 침묵 그리고...>의 서막이다. 그리고.....그 후에 맺지 못한 말은 아마도 ‘죽음’일 것이다. 공연이 계속되는 40분 동안 배경 스크린엔 같은 영상이 떠 있다. 해를 가리면서 짙게 드리워진 구름이다. 불합리하고 부조리가 횡행하는 어두컴컴한 세상에서 결코 환하게 들어나지 않을 빛을 기다리며 침묵 가운데 절망하는 세태를 상징할 것이다. 어느 곳에서도 언급되지 않았지만 작품의 모티브가 세월호란 것을 느낄 수 있는 배경설정이다. 한 마디 말도 없이, 요란한 음악과 화려한 소도구나 영상이 없어도 관객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스토리텔링능력은 춤의 힘이고 또 춤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한 매력일 것이다.

 




 

 

 

 

  김용걸은 성균관대 무용과를 졸업한 후 국립발레단 주역을 거쳐 파리오페라단 드미 솔로이스트(2002), 솔로이스트(2005), 주역무용수(2006)로 활약했다. 2009년 귀국한 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발레교수로 특채된 입지전적 발레리노다. 아내 김미애와 함께 주역을 맡아 공연한 <비애모>(2012, 강동아트센터)로 무용가로서 뿐 아니라 안무가로서도 예술성과 대중성을 인정받은 바 있다.  <빛, 침묵 그리고...>에서도 그의 서사능력은 충분히 드러난다. 어둠이 주조가 되는 흐릿한 조명 속에서도 빛과 어둠의 밝기를 교묘하게 조종하고 옅은 배경음이 깔리는 침묵과 소음을 대비시키면서 사회의 명과 암을 이야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솔로와 듀엣, 군무를 적절히 안배하면서 무대를 끌어가는 능숙한 드라마투르기와 유리창 안에 가친 채 서서히 죽어가는 리얼한 장면 묘사, 비극적 죽음에 대한 살풀이춤을 추듯 피날레를 장식한 붉은색 발레리나의 열정적인 춤이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또 하나의 폐막작으로 보여진 <김주원의 마그리트와 아르망(Marguerite and Armand)>은  알렉산드르 뒤마 소설인 ‘춘희(The Lady of the Camellias)’가 원작이다. 프레데릭 애쉬톤이 리스트의 음악(piano sonata in B minor)을 사용하여 영국 로열발레단을 위해 안무한 작품이다. 1963년 런던 코벤트 가든 초연에 이어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되면서 마고트 폰테인과 루돌프 누레예프의 환상적인 파트너링을 세계에 알렸던 로맨틱한 작품이다. 국립발레단 주역으로 2000년대 한국 발레계를 풍미하던 김주원이 마그리트 역을, 유니버설 수석무용수인 이승현이 아르망 역을 맡아 출연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마그리트가 아르망과 함께했던 추억을 회고하며 병상에 누워있다. 소식을 듣고 아르망이 달려온다. 그들 사이에는 미묘한 감정의 혼선이 있다. 공작의 약혼녀인 마그리트 앞에 등장한 핸섬한 청년 아르망, 사랑에 빠져드는 두 연인에 대한 아르망 아버지의 반대와 백작의 질투, 두 연인 간에 배려와 오해가 교차하면서 급기야 마그리트를 떠나고 마는 아르망과 그가 떠난 후 여인에게 닥친 절망적인 상황들이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것이 원작의 줄거리다. 매혹적인 작품이지만 단막으로 소화하기엔 무리가 따를 수 있기에 마그리트의 불꽃같은 춤과 감성적인 캐릭터, 출연자들의 섬세한 연기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작품이다. 김주원은 김용걸과 함께 발레스타가 대학교수로 변신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그녀가 국립발레단 주역으로서 ‘예기나’(스파르타쿠스), ‘니키아’(라 바야데르) 등에서 보여준 카리스마를 이 작품에서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원작의 제명에 'Kim Joo Won's'란 수식어를 붙였으면서도 자신의 색깔을 가미하지 못하고 원작 스토리를 따라가기에 급급했던 것도 아쉬운 점이었다. 듀크 백작을 포함한 남성 추종자들의 군무가 가미되었으면 작품은 더욱 활기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각광을 받으며 무대 앞 오케스트라 석에 등장하여 리스트 소나타를 연주한 이효주의 피아노 반주가 홀로 빛났던 작품이었다.



글_ 이근수(무용평론가, 경희대 명예교수)

사진_ 한국발레협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