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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녹록치 않은 삶의 무게를 자연스럽게 그려낸 - 댄싱박프로젝트, <춤추는 파파>





 쉽고 일상적인 소재에 유머와 위트를 담아 관객과의 소통에 주력하고 있는 대표적 남성안무가 박해준이 3월 18~20일 대학로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춤추는 파파>라는 제목의 공연을 가졌다. 90년대 이후부터 활발한 활동을 하며 다수의 수상경력으로 안무적 역량을 보인 박해준의 이번 공연은 2009년 ‘세계음악과 만나는 우리춤’에서 18분의 소품으로 시작된 것을 모티브로 1시간의 장편으로 완성시킨 것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그대로 “춤추는 파파”는 박해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아버지들의 힘겨운 삶을 춤으로 풀어낸 단편들이기도 하다.


 여성의 지위향상에 반비례해 작아지는 아버지들, 어느덧 가족부양과 행복을 위해 돈 벌어오는 존재로 인식되는 남편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일탈을 꿈꾸지만 점차 자신을 잃고 상실감을 느끼는 한국의 중장년층 남성들은 슬프지만 그 내면에 희망을 담고 있다. 가족이라는 단위는 그들에게 힘겨운 무게를 지우지만 동시에 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지막 엔딩에 아빠를 외치며 등장하는 딸을 통해 그들은 내일을 또 다시 살아갈 것이다.


 작품의 전개상 씨어터적인 스토리 위주의 장면들은 각각 시간의 흐름에 따라 4개의 장으로 구성되는데, 이는 사실적인 표현으로 용이하게 접근하면서도 춤의 전개는 치밀하게 의도된 것이었다. 아내로 등장하는 최경실, 장은정, 김혜숙의 섬세한 감정의 전달은 자칫 남성들만의 투박함을 커버하며 여성들의 고달픈 현실도 함께 투영한다. 소통 없는 남성과 여성(남편과 아내)는 오늘도 그들의 톱니바퀴를 맞춰나가지만 진실한 터치 없이 무의미하게 움직이는 몸짓에는 허무함이 깃들었다.




 아침 7시 기상 장면에서 출근준비를 하는 남성들과 걸레질을 하는 최경실이 등장해 각자의 공간을 채웠다. 홈드레스 차림의 무표정한 최경실의 모습과 출근하기 바쁜 남편들의 분주함이 대조적이었고, 오후 3시 사무실 풍경에서는 책상 앞에서 살아남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남성들의 치열함이 엿보였다. 현실적인 사무실 모습과 행동이 이어진 뒤 장은정과 박해준의 듀엣이 뒤따르는데, 외로움을 나타내는 여성과 달리 이를 외면하는 남성은 피곤함에 지쳐 그녀를 돌아볼 여력이 없다.


 저녁 9시 퇴근 후 술집의 풍경은 가장 춤이 극대화된 부분으로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술을 마시기도 하고 막춤을 추기도 하는 실제 모습에서 관객들의 공감과 웃음을 얻어냈다. 남성들의 음주가무 사이사이에 동일한 패턴으로 이뤄진 춤들은 속도감 있는 동작들로 입체감을 더하고 일상적인 행동과 기교를 갖춘 춤의 경계를 넘나들며 자연스럽게 연출되었다. 새벽 3시 풍경은 남편을 기다리는 김혜숙의 공허한 춤으로 가득 찼다. 이후 지쳐있지만 다시 가방을 매는 아빠의 모습으로 분한 박해준은 다소 신파(?)로 흐를 수 있는 전체적 내용을 솔직하고 담백하게 그려냈다. 춤과 극이 공존하며 그 속에 슬픈 진실과 웃음을 담아낸 그의 자화상에서 우리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신귀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