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대표하는 발레단이라면 누구나가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발레단을 손꼽는다. 특히 국립발레단은 국가브랜드 이미지를 창출하는 중대한 사명을 띠고 있는 바 이들의 행보는 주목받을 수밖에 없고, 요사이 발레에 대한 대중의 인지도가 높아지면서 수준 높은 관객들의 미의식을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 부담감도 가중되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2월 24일~27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된 국립발레단의 첫 정기공연 <지젤>은 전석매진이라는 기록을 남기며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는 점에서는 성공적이라 볼 수 있다. 물론 전석매진이라는 상황이 작품의 예술성과 완성도를 보장하지는 않으나 낭만발레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작품의 명성, 프랑스 오페라극장발레단 상임 안무가 파트리스 바르의 안무, 지젤 역의 김지영· 김주원· 신예스타 이은원· 프랑스 최고 무용수 라에티시아 퓌졸의 뛰어난 기량 등은 기대에 부응했다.
무용사에서 <지젤>은 당대의 유명한 발레리나 마리 탈리오니의 <라 실피드>에 비견할만한 인물로 카를로타 그리시를 부상시켰다. 1841년 초연 이래 줄곧 낭만발레로 꼽혀온 이 작품은 프랑스 시인이자 비평가였던 고티에가 하이네의 독일 전설에 영감을 받아 만든 이야기로, 고티에가 예찬했던 그리시에게 바친 발레이기도 하다. 안무는 파리 오페라좌의 수석 발레감독인 코라이와 스승이며 남편이었던 페로가 분담해 담당했던 바 <지젤>의 원형은 당연히 프랑스에 있다. 이번 무대는 원작을 달리한 또 다른 버전으로 당시의 분위기를 살리며 나름의 개성을 더했다. 또한 <지젤>의 성공에는 음악도 크게 기여했다. 아돌프 아당의 음악은 당시 발레음악에서는 드물게 인물과 상황을 암시하는 멜로디의 소재(motive)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상황을 종합한 라이트모티브(유도음악)가 사용됨으로써 작품의 효과를 높여주었다. 지젤이 행복했던 때를 떠올리며 알브레히트와 춤췄던 곳에 사용된 주제들이 반복될 때 지젤의 미친 듯 괴로워하는 장면을 보여주는 방법을 통해 현저한 효과를 낳도록 활용된 것이다.
<지젤>은 2막 발레로 간략한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시골처녀 지젤이 신분을 숨긴 귀족 알브레히트와 사랑에 빠지지만 그에게 약혼녀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에 빠져 죽은 후 숲 속을 지나가는 남자들을 죽을 때까지 춤을 추게 만드는 윌리(결혼 전에 죽은 처녀들의 영혼)가 된다. 이후 지젤의 무덤을 찾아왔다가 윌리들의 포로가 된 알브레히트가 지젤의 사랑으로 목숨을 구한다. 작품의 관람 포인트는 1막의 극적인 구성과 지젤의 기쁨과 슬픔을 동시에 표현하는 표현력이며 2막의 희고 긴 로맨틱 튀튀를 입은 군무의 아름다움, 지젤의 중력을 거부한 도약 등이다.
필자는 신예 이은원과 김현웅이 캐스팅 된 공연을 관람하였기에 그 인상만으로 한정해 주목해보자면, 우선 김현웅의 늠름하고 귀족다운 자태는 알브레히트의 캐릭터를 잘 살려냈다. 이은원 또한 연륜 탓에 김주원이나 김지영만큼의 드라마틱한 감정선을 그려내진 못했으나 뛰어난 기량과 젊은 패기로 주역으로서의 가능성을 점쳤다.
실질적으로 1막에서는 귀족들의 등장에 두 마리의 개가 동행해 현대무용에서 피나 바우쉬가 실제 오브제의 사용을 통해 리얼리티를 살린 점과 유사한 연출을 했고, 무대배경은 19세기 낭만주의 화풍을 되살려 러시아 발레처럼 광대한 스케일은 아니지만 이국적이며 초자연적인 풍경이었다. 특히 2막은 공기 속의 존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가벼운 도약력을 가진 페로가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녹여내 안무한바 지젤이 살아있는 생명체가 아닌 윌리임을 실감나게 만들었고, 이은원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 솜털 같은 움직임들이 김현웅과의 듀엣을 통해 빛을 발한 장면이었다. 파트리스 바르의 버전은 전체적으로 군무를 강화시키고 섬세한 디테일을 더해 충분한 춤 어휘를 완성해냈다는 점과 대중적 요소를 많이 부각시키려 하는 노력이 엿보였으나 기존양식에 익숙한 우리에게 다소 어색한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새로운 도전과 원작의 재창조라는 과제를 충실히 수행해가는 우수한 안무자들의 출현이 반가운 것도 사실이다.
과거에 비해 우리의 발레를 보는 관객들의 시각의 확대와 무용수들의 훌륭한 테크닉의 향상은 실로 놀랍다. 이에 국립발레단의 역할이 컸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에 비록 발레의 원천은 유럽에 있으나 우리의 정서에 부합하면서도 세계인들을 감동시킬 작품과 무용수들의 출현이 이곳에서 이뤄졌으면 하는 바람과 함께 성장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읽을 수 있는 무대였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국립발레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