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에서 한국미를 연구했던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중일의 조형예술을 비교하며, 일본은 색, 중국은 형, 한국은 선이 두드러진다고 말했다. 세 나라의 춤은 어떻게 비교할 수 있을까. 일본은 형태, 중국은 기예, 한국은 신명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부키와 노, 그리고 현대의 부토에서 일본의 연희자들은 형태를 만드는 것에 집중한다. 그런데 신체에 각(角)을 세우다보니 관객들은 긴장하게 된다. 경극이나 오늘날의 발레에서 보듯이 중국의 연희자들은 경이로운 기예로 관객들의 기를 죽인다. 한국의 연희자들은 형태와 기예라는 외연보다는 신명이라는 내연을 강조한다. 우리의 춤판은 연희자의 신명만으로는 승부수가 나지 않는다. 춤꾼과 관객의 신명이 한데 버물려질 때 제 맛이 나는 것이다. 이는 저절로 우러나오는 것이라서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가 없다. 우리 춤은 너울 짓만으로도 누구나 얼추 출 수 있는 춤이다. 그런데 무대 위에서 막힘없이 자유자재로 춤을 추자면 상당한 수련과 연륜을 필요로 한다. 이런 춤꾼을 알아보고 온몸으로 호응하는 관객들이 있을 때 춤판은 절로 신명나게 마련이다. 신명난 춤판에서는 춤꾼은 흥에 겨워 덩실거리고, 관객들은 어깨를 들썩이며 “얼~씨구!”, “잘한다~!”라며 추임새를 넣는다. 이렇게 춤꾼과 관객이 흥을 주고받고, 무대와 객석이 함께 출렁거려야 춤판이 제대로 선 것이라 할 수 있다.
지난 9월 15일에 제대로 선 춤판을 만났다. 서울남산국악당이 기획한 <나의 무용담(舞踊談): 삶은 춤이다 춤은 삶이다>의 한 무대였다. <나의 무용담>은 9월 2일부터 17일까지 10회의 공연에 무려 50명의 춤꾼들이 출연했던 일종의 뷔페 공연이었다. 20대 무용수 공유화가 춘앵전을 추고, 중견 여성춤꾼 김선정이 태평무를, 중견 남성춤꾼 박덕상이 소고춤을, 그리고 70대의 김진홍이 지전춤을 췄으니 다양한 세대의 춤꾼들이 전통춤의 거의 모든 레퍼토리를 들고 나온 것 같았다. 50명의 출연진들은 차세대 춤꾼(10명), 여성춤꾼(20명), 남성춤꾼(20명)으로 엮여 있었다. 춤꾼들을 엮은 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흔히들 춤꾼은 춤꾼을 알아본다고 말하는데, 임이조 서울시립무용단 예술감독이 자신을 포함하여 49명의 춤꾼을 선정했다. 임이조는 2,000명의 아줌마 부대를 몰고 나닌다는 장안의 소문난 춤꾼이다.
내가 본 것은 8번째 공연으로 김진원(승무), 김평호(소고춤), 박덕현(북놀이), 방승환(부포놀이), 백경우(사풍정감) 등 중견 남성춤꾼들이 출연한 무대였다. 다섯 명의 출연자들은 모두 40대를 넘기고 50대를 바라보는 춤꾼들이다. 부제로 붙은 ‘삶은 춤이다 춤은 삶이다’라는 표현대로 이 연령대의 남성 춤꾼들은 녹록치 않은 춤의 삶을 살아 왔다. 남자가 춤을 춘다는 이유 때문에 주변으로부터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했고, 오로지 한 스승만을 까다롭게 모셔야 했으며, 선배들의 서러운 박대도 무던히 헤쳐 나와야 했다. 또한, 이전 세대와는 달리 이들은 춤만으로는 살 수가 없었다. 대학에 들어가 인문학을 비롯해 춤 이외의 지식을 쌓아야 했고, 스승과 선배들의 무대 언저리를 맴돌며 연륜을 쌓아 올려야 했다.
이제야 자신의 이름 석 자를 내걸고 춤을 추게 되었으니 얼마나 신나겠는가. 신바람이 들었다고 해서 이들의 춤이 가볍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의 춤에서 깊이가 느껴지는 것은 전통춤에 알맞게 설계된 무대 때문이었을까. 이들 춤꾼들의 무대에서는 이전 세대의 춤꾼들이 주던 미완의 공간감이 사라져 보였다. 즉 마당이나 방안의 춤들이 극장무대에 짜 맞춰진 듯한 느낌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이들은 무대공간에서 한결 안정된 춤태를 보여 주었다. 악기와 부포를 다루는 솜씨는 능수능란했고, 지긋이 내려밟고 슬쩍 들어 올리는 발동작에서는 연륜이 묻어났다. 뒷등을 타고 오르는 흥으로 몸을 노니는 것도 경륜이 없으면 보여주기 힘든 몸짓이었다. 관객들의 열광은 춤꾼들의 기와 끼를 북돋우는데 큰 몫을 한다. 이날 춤판에서는 춤꾼들이 들어 올리는 호흡에 관객들의 호흡 또한 올라갔고, 춤꾼들이 훅하고 내뱉는 호흡에 관객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으~잇!”, “좋지!”를 연발하던 관객들의 추임새는 “아이고!”라는 나지막한 탄식으로, “진짜 춤꾼이네요!”, “어쩜 저렇게 이쁘게 춘대!” 등의 찬사로 바뀌어 갔다. 춤판이 달아오르자 객석에서는 함성이 터져 나오고 신명난 관객들은 손을 머리 위로 들어 올리고 박수를 쳐댔다. 관객들이 내지르는 환호성과 박수소리는 인기가수의 콘서트장과 교회의 부흥회장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공연이 끝나고서도 춤꾼들과 관객들은 수그러들지 않는 신명에 어쩔 줄 몰라서 앙코르 무대를 펼쳤고, 무대에서 함께 춤을 추는 난장을 벌렸다.
<나의 무용담>은 우리 춤이 지닌 가치와 덕목이 새롭게 발현하는 무대였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우리 춤의 맛을 제대로 내게 된 춤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그런 춤맛을 제대로 볼 줄 아는 관객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제 우리 춤의 새로운 진경시대가 열리는 것일까.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오늘날의 춤판은 서구식 무대미학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며, 기획, 제작, 유통이라는 산업화된 공연체계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이를 위해 춤꾼들은 자신들의 춤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어야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춤에 전통의 때깔을 덧씌우는 훈련도 계속해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지숫는 발과 내려앉는 자세에 무게감을 주어 묵직한 춤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몸이 춤을 추는지 장단이 춤을 추는지 모를 경지에 이르도록 장단에 온몸을 내던지는 법을 터득해 주길 바란다.
글_ 최해리(무용인류학자,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신귀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