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무회 정기공연 겸 한국공연예술센터 공동기획공연으로 9월 17-18일 양일에 걸쳐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김선미의 <강변북로 2010>이 무대에 올랐다. 창무회 회장인 김선미는 지금까지 <공으로 돌지>, <잔영>(1985), <추다만 춤>(1992), <땀흘리는 돌>(1996), <월영 일시무>(1998), <아우라지>(2001), <나의 지고이네르바이젠>(2003), <강변북로>(2005) 등의 작품을 발표했다. 이들을 통해 깊이 있는 춤 해석과 자신의 춤 어휘로 창작무용계에 일조했는데, 2005년 초연된 <강변북로>를 또다시 논점화함으로써 새로운 시공의 이미지를 연출했다. 이번에도 역시 시인 황지우의 텍스트에 무대미술가 윤정섭의 연출, 이상봉의 조명, 무용음악 작곡가 김태근 등 각 분야 최고의 공동작업을 바탕으로 급변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인간의 실체를 조망해본 것이다. 안무자는 현실 속에 실재하는 진공(真空)의 섬 강변북로에 주목한다. 즉, 다양한 삶의 궤적으로 수놓아진 ‘강변북로’를 매개체로 고립된 공간 속에서 반복되며 전개되는 다양한 인간 군상들의 환상과 실재, 아픔과 기쁨, 좌절과 희망에 대한 이야기를 조망하고자 한 것이다.
막이 오르면 황망한 거리에 빠르게 차들이 지나가는 듯한 소음과 검은 공간에 서치라이트가 한번 훑고 지나가고 이어서 무대를 횡으로 가로지르는 길 조명에 하수에서 상수로 긴박감을 더하는 음악과 함께 무용수들이 뛰어 들어간다. 붉은색과 검은색을 입은 군무진과 회색계열의 옷을 입은 김선미가 공간상의 대비를 이루며 그녀의 현대적 표현양식을 보여주는 춤을 춘다. 이때 어두운 공간을 조율하는 조명효과가 작품의 완성도를 더했고, 공간을 확대해 가로 혹은 세모꼴로 나눈 가운데 전통 춤사위가 아닌 자유롭고 파격적인 몸짓을 선보인다. 알록달록 다채로운 색상과 다양한 형태를 지닌 의상은 현대인의 여러 모습에 사실성을 더하기 위해 제작되었음은 알겠으나 무용수들의 춤 디테일을 살리는데는 실패한 경우였다. 호흡의 일치가 중요한 군무들의 춤에서 미흡한 부분들이 엿보였으나 다소 난장(亂場)의 느낌이기도 하고 땀 흘리며 질주와 춤을 반복하는 이들의 신체에서는 꿈틀대는 생명력이 전달되었다. 느린 선율에 등을 관객 쪽으로 돌리고 여성무용수 5명이 서서히 움직이는 모습은 응집된 에너지를 가졌고 지향점을 갖지 못하고 허무히 달리는 이들의 이동은 무작정 달리는 자동차들의 질주와 유사했다. 이처럼 군무진들의 빠른 템포와 대조적으로 김선미의 춤은 절제되었지만 그 내면에 끓고 있는 혹은 폭발직전의 화산 같은 강렬함을 숨기고 있었다.
김선미는 이번 공연의 가장 크고 중요한 변화로 주체의 변화를 꼽는다. 2005년 강변북로가 주인공 한 사람의 드라마였다면, <강변북로 2010>은 무용수 각각의 존재(being)와 현실 그 자체의 일상을 그려냈다. 따라서 시간 확장의 자유로움과 속도감의 초월성을 인간의 실체, 그리고 원초적인 몸짓과 한계 즉, 사람의 존재 자체를 보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았다. 무용수들은 신체를 통해 시공을 탐구하고 관객들은 춤을 통해 속도감과 공간속의 일상을 반추(反芻)한다. 웃음소리를 내며 웃는 여자, 가슴을 치며 격렬히 움직이는 남자 등 개별적 특성을 지니고 어필하는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극적 이미지를 풍기며 점점 반복되는 춤사위는 지루하고 습관이 되어버린 기계처럼 일하는 현대인을 이야기한다. 매우 급박한 리듬과 경쾌한 리듬이 섞이며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표현하고 안무자가 구현한 춤 동작은 절제되어있으면서도 부드러워서 현대인의 비정성과 함께 내면을 들여다보는 선(禪) 이미지로 무대를 채워나갔다. 음악의 무게감이 춤을 압도하는 부분도 없지 않았으나 전체적으로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충분히 담당했고 마지막 걸음들은 인간 군상의 고독과 허무함을 그려냈다. 엔딩씬에서 샤막 속에 정지하고 끝나는 그들의 몸짓은 무작정 달려온 삶을 끝내고 정리하는 의미인지 아님 또 다른 질주를 준비하는 휴식의 의미인지 알 수 없으나 각자의 길에서 우리가 해석해야하는 의무감을 지어준다. 결국 강변북로는 자유와 폐쇄가 공존하는 매우 특별한 의미와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가진 공간이며 안무자는 창무회 특유의 표현방식으로 우리의 시공 속에 존재하는 신체와 삶의 실체를 다뤘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문화예술기획 이오공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