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춤 공연을 보면 대개 8개 내외의 레퍼토리를 구성하여 관객과 만나는 경우가 많다. 그 내용을 보면 어떤 경우는 한 류파의 레퍼토리가 일관성 있게 펼쳐지는가 하면 어떤 경우는 서로 다른 류파의 레퍼토리들이 그들만의 독특한 색깔을 뽐내는 경우들도 있다. 그러면서 문화재로 지정된 태평무, 승무, 살풀이가 중심에 놓이고 중간 중간에 한량무, 진도북춤, 소고춤 혹은 장구춤 등 신명을 불러일으키는 구조가 이러한 공연에서 가장 보편적인 구성인 듯 하다.
그런 와중에 관객은 은연중에 여러 춤꾼들의 공연을 보며 그냥 편하게 순위를 매기고, 누가 잘했고, 누가 자신의 취향이 아니었는지 마음 속으로 혹은 같이 보러 온 사람들과 지식의 공유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전통춤 공연에서는 이런 것을 입 밖으로 공공연하게 말하는 것이 예의가 아니라 생각하고, 경쟁적 구도는 만들지 않는 것이 그동안의 관례였다. 그렇지만 그것이 과하지 않은 모습이나 축제적 측면으로 혹은 가벼운 칭찬의 의미로 경쟁구도를 만든다는 것은 관객에게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TV에서 슈퍼스타K, 언프리티 랩스타, 복면가왕, 댄싱9 등에서 순위 매기는데 익숙한 대중에게 전통춤도 경쟁구도를 만든다는 것은 춤꾼들에게는 잔인하지는 모르겠지만 관객에게는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매력적 요소가 있는 것이다.
풍류사랑방 수요춤전 <남무전(男舞傳)․전(展)․전(戰)-전설을 춤추다>(2005년 11월 4일, 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는 그러한 흥미로움을 접합시킨 형태의 공연의 한 모습이었다. 이미 지난 6월 <여무(女舞) - Battle전(展) ‘류’(流)>에서 이러한 경쟁 구도를 스스로 만들어 본 국립국악원 무용단에서는 이번에 남자무용수들의 새로운 춤해석을 통해 이를 관객들이 즐기며 평가하는 공연을 펼친 것이다. 지난 여자무용수들의 공연이 전통춤을 류파별로 대칭하여 자웅을 겨루었다면 이번 무대는 전통춤의 재해석을 통한 무대였기에 춤꾼들의 실력과 작품의 새로운 해석 능력을 함께 바라볼 수 있었기에 더욱 흥미로웠다.
김서량의 <태평지무>는 태평무에 대한 재해석이다. 터벌림-엇모리-자진모리로 장단을 단순화시킨 구조는 흥을 돋우며 격조보다는 관객과 소통을 통해 몰아로 이끌었다. 이는 태평무의 특징인 발디딤의 강조와 더불어 한삼자락을 휘두르며 큰 동선의 공간 구성을 통해 이루어진 모습이었다.
박상주의 <번뇌의 춤>은 승무를 재구성한 작품으로 ‘번뇌의 춤’이라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의식의 흐름을 통한 서사구조로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그래서 북춤을 도입에서 보여주어 그 번뇌를 알려주고, 구음과 마지막 장면에서 시의 읊조림을 통해 안무자가 표현하고자한 ‘외로움, 그리움, 슬픔, 질투’를 하나의 흐름 속에서 이야기하고자 한 작품이다.
정현도의 <소리․춤 그리고 흥>은 말 그대로 설장고를 통해 흥을 돋운 무대였다. 가끔 설장구춤을 보게 되면 춤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아니면 장단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지 아니면 놀이구조에 중점을 두어야 하는지 고민될 때가 있는데 이날 공연은 이 세 가지가 무난하게 합을 이루어 관객의 추임새를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킨 무대였다.
안덕기의 <화담의 춤 ‘상사별곡’>과 김청우의 <벽계수의 춤 ‘풍류가’>는 하나의 이야기 구조에 바탕을 두지만 다른 모티프로 풀어내고 있다. 이는 황진이라는 매개적 기호를 통해 화담 서경덕과 벽계수를 주인공으로 최현의 <비상>의 변조 그리고 국수호의 <장한가>에 근원을 찾고 있기 때문이다. 안덕기의 작품은 산조의 그 날카로운 선율 속에서도 허허로움과 자유로움이 묻어났고, 장단에 비해서 절제된 모습을 보인 김청우의 춤사위에서도 넓은 의미로 새로운 한량무를 표현해 주었다.
박성호의 <입소리, 춤 풀이>는 이매방류 살풀이를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눈에 뜨이는 것은 세 명의 소리꾼이 무대에 등장하여 그 한의 풀이를 더욱 배가시킨다는 점이다. 이는 세 소리꾼의 다른 목소리가 춤꾼의 춤사위를 통해 합을 만들어 표현되었고 후반부에서 그 한의 풀림이 흥을 이끄는 구조로 나타나 이 작품이 지향하는 바를 잘 표현한 구성으로 표출되었다.
이렇게 6명의 무대는 경쟁 체제였지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나름의 또 다른 생산성을 가지고 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러한 경쟁의 구도가 전통춤 대중화의 한 방법론은 아닐까 화두를 던져준 것이기 때문이다. 언제까지 구태의연하게 문화정신을 운운하며 전승에만 신경 쓸 것인가? 무대공연예술로 대중성 그리고 소통을 가지고 전통춤이 대중과 함께 호흡하지 않는다면 그 전승의 의미도 퇴색되어 박제화된 모습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단국대교수)
사진_ 국립국악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