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의 서커스 <Ovo>를 안무한 최초의 여성안무가, 2016 브라질 올림픽 개막식 무용감독이라는 유명세로 더욱 우리에게 이름을 알린 데보라 콜커(Deborah Colker)의 <믹스(Mix)>공연이 10월 23~24일 엘지아트센터에서 있었다. 첫 내한공연을 가진 그녀의 작품 <믹스>는 1996년 리옹 댄스 비엔날레에서 초연한 것으로, 2001년 브라질인으로는 처음으로 영국 최고 권위 공연예술상인 올리비에상의 기쁨을 안겨주기도 했다. 늘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들을 선정해 그 안목을 인정받고 있는 엘지아트센터가 선택한 브라질의 대표적 안무가의 작품에 귀추가 주목되었고, 그 결과는 대중들에게는 놀라움을 그리고 무용가들에게는 다소 진부함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양분되는 이유는 아마도 그녀의 춤에 대한 기대와 춤에 대한 시각의 차이일 수 있다. 일반 관객들은 폭발적인 에너지와 신체가 만들어내는 다양하고 경이로운 움직임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것이고, 이미 컨템포러리댄스에 익숙해진 무용가들에게 94~95년도 작품은 지난 시대의 추억으로 수용된 때문이다.
짧은 7개의 작품을 엮어 1부와 2부로 나눈 전체 공연에서 그 첫 시작은 <Machines〉이었다. 백드롭에 걸린 대형의 남녀 누드 사진이 어색할 무렵 무대에 등장한 젊은 무용수들은 탄력 있는 몸과 움직임으로 누드 사진의 인물들과는 대조적으로 삶의 활력을 불태웠다. 제목처럼 근육으로 그 힘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 강인한 모습의 무용수들은 기계처럼 움직이며 고난도라기보다는 고강도의 테크닉을 강조하며 무대를 누볐다. 남녀의 구분없이 강렬한 그들의 이미지는 여성적 아름다움에 익숙한 우리들에게는 또 다른 자극을 주었다. 곧이어 연결된〈Fashion Show〉는 패션쇼 런웨이의 우아함과 그 이면의 우스꽝스러움을 패러디한작품이다. 대형 걸상들로 채워진 공간 안에서 유럽 여성들이 치마 속에서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 주는 지지대 역할을 하는 스커트 틀인 파팅게일(farthingale)만 착용한 여성들이 패션쇼를 하듯 움직이기도 하고 최소한의 의상을 입은 남성과 함께 남녀가 섞여 춤을 주기도 했다. 백인들의 유연하고 다소 유약한 느낌의 몸에 비해 생동감 넘치고 볼륨 있는 몸매를 강조하는 브라질 사람들의 특성을 작품에 담은 동시에 라틴 음악이 지닌 흥겨움을 살리며 자신들의 춤어휘로 춤추는 그들이 신선했다. 물론 움직임 자체는 현대무용에서 기존에 많이 보이던 것들이었지만 쇼를 위한 소모품으로 전시되는 신체를 반어적으로 강조한 점과 큰 키와 유연함, 정교함까지 지닌 한 남성의 기량이 눈에 띄었다. 다음 작품인 <Passion〉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 롤링스톤스 등의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남녀의 사랑을 23개의 2인무로 엮어서 선보였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지루하게 다가온 작품이었는데, 인간의 사랑과 이별을 열정이라는 주제 아래 다소는 발레틱하게 다소는 초창기 현대무용의 움직임으로 다룬 모습에서 그녀의 전체 작품 맥락과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아름답게 흐르는 음악과는 달리 격렬하게 달려들고, 엮이고, 분리되는 과정이 연속되는 공간 안에서 사랑의 감정에 대한 이입보다는 그들의 발레로 다듬어진 기본기와 현대무용의 역동성이 혼합된 모습만이 도드라져 보였다.
2부의〈Mechanics〉,〈Quotidian〉,〈Sonar〉는 그녀의 강인함을 요구하는 안무에 따라 무용수들이 이에 훌륭하게 흡수된 경우였다. 거대한 바람개비를 배경으로 몸의 다양한 실험을 실행해보는 공간에서 무용수들은 최대한의 역학적 가능성들을 보여주었다. 운동복 차림의 무용수들은 스포츠 경기를 관람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고, 대련의 과정에서 엿보이는 긴장감과 숨어있는 위트가 요소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공연의 백미는 전 세계 사람들을 그녀의 매력으로 끌어당긴 〈Mountaineering〉이었다. 수직으로 세워진 6.6m의 무대에서 안전장치 없이 움직이는 무용수들을 통해 신체의 아름다움과 강인함을 새삼 각인시켰다. 자칫 일장기를 연상시키는 강렬한 원색의 대형 벽면에 암벽타기를 위해 설치된 듯한 작은 발판들을 전혀 힘들지 않은 듯 유유하게 넘나드는 남녀 무용수들은 힘의 극한을 보여주었다. 마치 벽면이 우리가 걷는 바닥면인 것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그들은 벽면에 자신들의 사지를 뻗어서 닿는 한도 내에 규칙적이게 박혀있는 발판을 잡고, 오르고, 뛰어건너며 다시금 뛰어난 근력과 유연성을 과시했다. 앙줄랭 프렐조카주의 <백설공주>나 필립 드쿠플레의 <파노라마>가 보여주는 유사한 이미지나 서커스적인 요소와 비교해보았을 때도 확연하게 <Mountaineering〉은 위험에서 느껴지는 짜릿함과 극적인 요소 측면에서 탁월했다.
전반적으로 여러 다양한 작품들의 파노라마는 20년 전의 레퍼토리이기에 진부함을 커버하기에는 뭔가 아쉬운 점이 남아있었다. 초반부 전달되던 놀라운 유연성과 힘의 향연도 눈에 익숙해지면 그다지 대단해보이지 않는 우리들의 오만의 결과일 수도 있다. 더불어 연극, 서커스, 대중춤, 건축 등의 융합이 흔한 현대의 무용계는 더더욱 새로운 무엇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보라 콜커가 브라질의 독보적 스타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분명히 존재했다. 브라질이라는 국가적 색깔은 차치하고라도 양성성을 지닌 인간 육체가 표현할 수 있는 건강미와 역동성을 탁월하게 작품에 실었고, 서커스를 방불케 하는 아크로바틱하고 과감한 안무와 상상력을 뛰어넘으면서도 유머러스한 연출, 공간을 확장하면서도 오브제를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무대장치 등이 그녀가 인간의 심리를 꿰뚫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더불어 대중적 눈높이를 확실하게 파악하고 기대치를 뛰어 넘는 안무와 특별히 남미 특유의 화려한 색감과 리듬감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국적인 풍경을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국적인만큼 낯설게 받아들여 질수도 있는 양면성이 작품에 매력을 더하고 있지 않나 싶다. <믹스(Mix)>는 오늘날의 작품으로 지금 이 시대의 춤을 대변하는 데보라 콜커의 신작을 다시금 보고 싶게 만드는 전초전이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LG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