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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민속춤의 재현과 새로운 생산성 - 박기량의 <춤씻김>



 공연예술로 한국무용은 다양한 연원을 통해 지금에 이르렀다. 이는 궁중에서 추던 정재도 있고, 교방을 통해 들어오거나 민속에서 극장으로 이입되어 다듬어진 춤 등 여러 수용 양상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춤들은 그 원형을 간직하며 대중과 호흡하면서 절차탁마를 통해 무대 예술로 정제되었는데 특히 민속에 바탕을 둔 춤들은 희로애락을 담으며 민중의 생산적 참여를 통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히 무속에 바탕은 둔 춤은 종교적 신비성과 서사성, 즉흥성, 민중성을 바탕으로 물아일체(物我一體)를 만들어내며 독특한 특징을 전해준다. 이는 무속춤이 다듬어지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눈으로 느끼지 못하며 드러나지 않는 ‘그 무언가’가 춤에서도 그대로 표출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예인열전’ 박기량의 <춤씻김>(2015.12.22, 한국문화의 집 KOUS)은 민속춤, 무속춤의 전승과 현재 그리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고 그 문제를 표현하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공연이었다.




 박기량은 국립무용단 단원으로 있으면서 자신만의 춤세계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춤꾼 중 한명이다. 이 날 공연은 <굿청소지>, <넋올리기>, <복개춤>, <국화夜>, <추억>, <진도북춤>으로 이루어졌는데 이 중 앞의 세 가지가 굿의 서사구조 속에 바탕을 두었다면 뒤의 세 가지는 소리와 가무악에 연원을 둔 형태라 할 수 있다.


 여기서 그가 참여한 것은 <굿청소지>와 홀춤인 <복개춤>, <진도북춤>이었는데 주목할 춤은 아무래도 <복개춤>과 <진도북춤>이다. <복개춤>은 진도씻김굿의 제석굿에서 나온 춤이다. 제석굿은 망자의 원혼을 달래는 의미보다는 살아있는 자들의 안녕과 복락을 비는 시공간이기에 굿 전체로 보아 조금의 여유와 긴장감이 덜한 부분이다.


 여기서 제석춤에 이어 밥주발 뚜껑인 복개를 들고 추는 대목이 있는데, 이 부분만 뽑아내어 무대화 된 것이 ‘복개춤’이다. 복개춤은 굿판의 재현이지만 굿의 서사구조가 아니기에 시뮬라르크(Simulacres)로 나타난다. 그래서 여러 오브제를 통해 이러한 모습이 상징되는데 흰 고깔이나 흰 장삼 그리고 살아있는 자들의 풍요와 죽은 자의 안녕을 비는 기호인 복개를 통해 관객과 소통하고 있다. 이는 준비된 동작이지만 의식의 흐름이라기보다는 순간순간의 긴장과 이완을 통해 자연스럽게 나타날 수밖에 없는 무속춤 그대로의 모습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기량은 이 춤을 최적으로 표현하려 한다. 이는 현장성에 바탕을 둔 무속춤의 원형적 모습과 기승전결의 예술적 구조가 교집합을 이루며 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덤덤한 듯 표현되는 앞자락을 지나 떵떵이 장단에서 휘감아 맴도는 절정의 몰아(沒我)를 통해 춤꾼과 관객의 일치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진도북춤에서도 그대로이다. 진도북춤은 민속춤으로는 안정적이면서 관객에게 가장 인기 있는 무대공연예술로 정착된 춤 중 하나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진도북춤도 정형화되어 일정 틀 안에서 노는 민속춤이 된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든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흥이 자연스럽게 오르는 변화과정 속에서가 아닌 처음부터 끝까지 인위적 미소를 통해 순서대로 춤을 추는 기법적인 진도북춤이 자주 보이는 것도 그러한 모습이었다.


 그런데 박기량의 <진도북춤>은 박병천 선생의 춤을 바탕으로 하면서 선부리장단, 자진굿거리, 흘림, 푸너리 등을 수용하여 새로운 생산성을 열고 있다. 기법으로 춤을 추는 것이 아닌 열린 공간 속에서 원형과 창조라는 민속춤 정신을 실천하였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면모인 것이다. 그래서 매번 보아 온 것이 아닌 자연스러움과 그만의 아이덴티티가 보인 진도북춤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 날 공연은 전통춤 공연에서 흔히 보이는 승무, 태평무, 살풀이와 같은 정형화된 춤이 없었다는 점에서 낯설음과 새로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이는 그가 지향하는 바에 대한 독특한 색깔을 그대로 보이는 대목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도씻김굿의 무대공연으로 재현이나 새로운 구성의 창작은 앞으로 그에게 주어진 몫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 공연에서는 구성에 있어 치밀함을 보이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씻김에 주력한 부분과 뒷부분이 분리되어 있어 전체 내용의 완결성에서는 부족한 면모를 보였기 때문이다. 다음 공연에서 진도문화의 원형을 드러내는 전체 구성으로 해보는 것도 의미를 지니며 또 다른 생산성을 보이지 않을까 한다.


 이 공연은 정형화된 레퍼토리보다는 박기량 춤꾼만의 색깔을 보인 무대였다. <복개춤>, <진도북춤> 등이 그러할 것이다. 이것이 하나의 고정관념에서 출발하겠지만 그만의 색깔을 보인 무대이기에 다양한 비판이 들어갈 수 없는 부분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바탕은 구전심수에 의해 이루어진 춤이기에 자질구레한 부분에 대한 또 다른 시각의 조언과 고정된 것이 아닌 새로운 작품에 대한 창조변화는 남겨진 숙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기량은 자기만의 색깔을 가지고 진보할 춤꾼이라는 점에서 항상 눈여겨 볼만하다. 진도씻김굿을 몸으로 이해하고 이를 새로운 생산성을 가지고 머리로 풀 수 있고, 기법에서도 완성도를 이룬 몇 안 되는 춤꾼이기 때문이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단국대교수)
사진_ 한국문화의집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