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x2댄스 컴퍼니 대표, 네덜란드 에미오 그레코& PC무용단원, 댄싱9의 수혜자 등 많은 수식어를 지닌 무용가 이인수의 공연이 12월 18~20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무대에 <영원한 현재>라는 제목으로 올랐다. 그는 힙합과 현대무용의 조화로 국내외에서 다양한 활동을 하며 호평을 받아왔는데, 그의 EDx2 무용단은 2010년 설립된 이래로 힙합‧ 현대무용‧ 연극‧ 마임‧ 아크로바틱 등 탈경계를 통해 서사적 움직임과 예술적 감성이 살아있는 우수창작레퍼토리를 만들고자 했다. 이번 작품은 이를 반영해 제작된 2년 만의 신작으로 시간의 탐구를 주제로 자신의 취향을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지는 객관적 시간과 얼마나 가치 있게 보내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주관적 시간의 개념을 다루는 과정에서, 자신의 존재와 현재의 의미를 무용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이다.
이인수 외에 외인구단처럼 느껴지는 안 겸, 박정미, 김강산, 이강현, 공명진의 처절한 춤은 그들의 땀과 노력을 반영한 듯 했다. 독특하게 회당 객석 수를 50석으로 제한하고 객석을 무대 사면에 배치한 점은 프로시니엄 무대를 벗어나 관객과 밀접하게 호흡하고자 한 의도를 반영했다. 따라서 관객은 무대와 객석 사이에 존재하는 제 4의 벽을 허물고 때로는 너무 가까운 거리가 부담이 되기도 했지만 작품과 인물에 흡수되는 기회이기도 했다. 오디오 장비를 활용한 사운드 연출도 청각적 효과를 살렸다.
무대에는 무용수와 관객이 함께 앉아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호흡을 같이 하고, 이어서 메트로놈의 규칙적 박자에 중앙 탑조명 안에는 이인수가 메트로놈 박자에 맞춰 손을 흔들며 작품은 시작된다. 영어 내레이션과 동일하게 본인의 상황을 그는 영어로 말하며 “where am I"를 읊조린다. 그가 다양한 규칙적 움직임들을 보이면 객석에 있던 무용수들은 차례로 등장해 그를 밀치고 위협하면서 남성의 힘을 과시했고, 암전 후 5명의 군무진들은 동일하게 스피디하게 움직이면서 바닥을 누비기도 하고 전신을 사용해 에너지의 흐름을 보여주었다. 이인수의 메트로놈처럼 규칙적 박자에 맞춘 움직임, 반복되는 ‘똑똑똑’ 노크 소리와 짧은 클래식 음악의 모티브, 암전 상태와 밝아짐의 반복은 과거와 지금이라는 현재의 소용돌이 속에 그들을 위치시키며 혼란을 유도했다. 간간히 탑조명 속의 이인수를 무용수들이 여기저기로 이동시키고 그들은 다함께 강도 높게 움직였으며 시간의 흐름을 벗어나 자신의 기억 중 어느 한 시간에 머물러 있는 남자를 표현한 이인수의 벗어나고자 하는 몸부림이 동반된다. 또 하나의 반복적 움직임은 내레이션과 동일하게 손을 서로 옆으로 잡고 일렬로 기타 음악에 맞춰 인사하듯 상체를 숙이며 한걸음씩 뒤로 물러나는 동작이다. 방향을 전환하며 이어지지만 이것은 동일한 시간에 대한 개개인의 객관적 시간이며 위압적으로 지나가는 무용수들 역시 시간의 빠른 흐름을 의미하는 듯 했다.
늘 그 자리에 위치한 이인수를 시간은 할퀴고 가고 남성 둘이 그를 시계추처럼 아까보다 큰 동작으로 변형시키며 다채롭게 진행하는 모습에서 움직임을 다각도로 연구한 노력과 다양한 방향과 각도, 역학적 변이가 눈에 들어왔다. 인상적인 또 다른 장면은 그에게는 동일하게 흐르는 시간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느리게 흐르는 시간을 표현한 부분과 누워있는 그를 구둣발로 짓밟는 남성들의 위협적 발짓이 그를 짓누르는 다양한 상활들을 의미한다는 부분이었다. 그들의 규칙적인 발 구르는 소리가 이인수 신체 위를 이리저리로 오가며 청각적 자극을 주기도 했는데, 이 장면이야말로 합을 맞추는 많은 연습이 필요했을 것으로 보였다.
후반부로 갈수록 앞선 움직임 어휘들은 점층적으로 속도감을 더하며 새로운 내레이션에 맞춰 색다른 움직임들(잔뜩 웅크리고 서로 팔을 앞으로 껴서 뭉쳐가기도 하고, 손을 흔들며 흩어짐, 한쪽 팔을 꺽고 한팔은 나는 듯한 움직임 등)은 예상을 벗어나 자극제가 되었다. 이인수의 솔로는 이미 그 기량이 알려진 바 너무 규칙적이고 반복적이므로 없어도 흐름상 무난할 듯 했다. 그는 시간을 잡으려하나 시간은 뒤로 물러나고, 또 다시 존재론적 질문이 이어지며 무빙 라이트와 이동에 맞춰 발자국 소리가 이를 뒤따른다. 빛의 이동과 이를 반사하는 상화극의 연출은 그의 만화적 혹은 영화적 상상력이 추가되는 부분이었다. 마지막 온 몸을 던지는 그의 처절한 몸짓과 중앙에 위치시킨 문을 노크하고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시간 그 어느 쪽에도 속하지 못하는 자신의 존재의 표현은 무상하기도 했다.
안무가 이인수는 <영원한 현재>에서 객관적 시간의 흐름 위에 축적되는 주관적 경험과 기억, 우리를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추진력이 되기도 하지만 벗어날 수 없는 시간의 영원성을 진지하고 강렬하게 다뤘다 그러나 너무 많은 반복되는 장면신이 오히려 밀도를 떨어뜨렸고, 그의 명성에 비해서는 다소 진부한 면도 없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춤에 대한 노력과 열정, 집중력은 높이 인정해야 할 부분이었고 더불어 동일한 시간, 동일한 장소에 함께 한 관객과 소통하고자 하는 시도가 돋보였다. 특별히 무게감을 더한 내레이션과 연극적 연출, 다양한 춤 어휘의 구사, 서사적인 부분과 추상적 부분의 중첩되는 전개는 앞으로도 그가 새롭게 도전할 컨템포러리 댄스에 기대감을 더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EDx2 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