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과 <I’m so tired>는 비슷한 시기에 유사한 주제로 재공연을 올리며 같은 장르 아래 다른 색깔로 이 시대의 공감언어를 창출해 냈다. 이미 호평을 받은 작품이기도 하지만 연말연시에 어울리는 관객 공감형 공연이어서인지 반응은 뜨거웠다. 특히 <산행>은 컨템퍼러리라는 장르적 장애를 극복하며 불통의 시대를 기꺼이 몸으로서 관통했다. 무용공연이라기보다 신체극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연극적 특성이 풍부했으며 탄탄한 구성과 분명한 의도로 삶의 본질적 문제에 정면 돌파했다. <I’m so tired>는 행위 자체의 의미를 읽어내려 애쓰기보다는 움직임의 에너지가 오브제들과 어우러지고 분절되는 작품의 도안을 읽어내는 묘미가 있었는데, 컨템퍼러리 춤의 소통결여의 난항을 뛰어넘으려는 시도가 어느 정도는 성공적이었다. 두 작품 모두 일상용품을 활용한 아이디어의 릴레이가 돋보였고, 음악이 관심 포인트가 된 점이 인상적이다.
가구를 오르는 <산행>
첫 장면의 무대는 얼핏 보면 잘 정리된 가정집처럼 보이지만 가구는 모두 비어있다. 흡사 재활용 가구점을 떠올리게 한다. 공연이 진행되면서 가구들이 움직이고 뒤집히고 겹겹이 쌓이면서 무용수들은 가구를 오르내리며 그들이 체험한 산행을 무대 위에서 재현한다. 인생을 ‘산행’으로 비유하여 험난한 여정을 놀이처럼 자유로운 상상으로 풀어내는 것이다. 그러나 힘든 여정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현실임이 분명하다. 오르락내리락을 반복하는 힘든 일상을 서로 다독거리며 격려하며 지탱해 가야 한다. 이들이 던지는 메시지는 어렵지 않게 읽히지만 시간의 흐름을 타고 이어지는 끊임없는 장면 변화는 작업의 노고를 짐작케 한다. 특히 엇박자와 어긋남의 음악은 공연의 경쾌함이 결코 가볍게 흐르지 않도록 만들었다. 놀이성이 풍부하지만 가구와 몸이 엉키는 가운데 생기는 긴장감은 부지불식중에 닥치는 예측불허의 상황들만큼이나 진땀이 났다. 그러나 서사의 인과율이 명확하고 완결성이 있는 드라마가 되어버려서 관객이 채울 여백이 없음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플라스틱 상자의 이합집산, <I’m so tired>
우리의 피곤한 일상을 소도구와 몸으로서 낱낱이 풀어헤치는 무대에 플라스틱 술상자가 활용된다. 플라스틱이라는 재질과 상자의 용도가 지닌 본질적 의미도 이 소도구의 선택에서 간과되지 않은 부분이겠지만 다양한 모양으로 배열하고 쌓고, 여러 용도로 사용하는 가운데 특히 바구니처럼 뚫린 작은 구멍들에 빛이 투과되면서 생기는 효과는 상당히 컸다. 무대에 그려진 피로에 지친 세상의 모습이 빛과 그늘로 대비된다.
상자 배열의 발상이 좋고 밴드의 연주와 노래가 매력적이지만 소도구와 음악과 빛이 무용수의 몸을 압도한다는 느낌도 배제할 수 없다. 마지막 부분에 테이프로 온몸을 가두는 장면에서 몸의 제압이라는 설정이 작품 전체를 놓고 볼 때 의도된 것일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으나, 공연 전반에 걸쳐 무대 만들기에 급급한 무용수의 몸은 오브제를 형상화하는데 상당 부분을 할애했고, 무용수가 중심이 되지 못하고 오브제에 헌납하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 없었다. 장르의 특성상 각각의 요소들이 분산되고 분리될 수 있으나 구심점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피로에 지친 관객에게 위안과 위로를 준다는 의도에는 도달하지 못했고 우리의 고단한 일상을 보여주는 데 그쳤다.
두 작품은 각각 상반된 스타일로 우리의 일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불친절하고 제멋에 겨운 컨템퍼러리 춤이 아닌 관객과 진정 소통하고자 하는 공감의 예술이었다. 하나는 너무 넘치게 관객을 배려했고 다른 하나는 미처 배려할 여유가 없이 마무리되고 말았지만 그들의 시도는 모두 고단한 삶에 대한 위로였다. ‘공연 예술이 이 시대에 무엇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의 지점에서 이들이 답변을 주었다. 극적인 일들은 현실에서 너무나 많이 벌어지니 이제 극장은 안전한 곳이 되어서 관객을 위로해 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글_ 서지영(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기)
사진_ 이경은 무용단(photo by 옥상훈), 예효승 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