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무용단은 기존의 한국춤의 틀에서 벗어나 젊은 안무가들의 시선으로 본 한국춤을 제시하고자 ‘국립무용단, 젊은 시선을 품다’라는 주제로 국립극장 레퍼토리시즌 2015-2016을 가졌다. 국립무용단 신작인 <칼 위에서>는 몸으로 표현 가능한 몸짓은 현재의 세상에 유의미한 가치를 전달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류장현이 1월 20, 22일 국립극장 KB청소년하늘극장에서 가진 독특한 무대였다. 무용수들의 넘치는 에너지와 예측 불가능한 유머가 공존하는 가운데 특별히 국립무용단 무용수들의 열정이 공간을 가득 채웠고 세련된 검은 의상과 현대적인 음악과 한국적 가락의 조우도 눈길을 끄는 요소 중 하나였다.
공연이 시작되면 과거 60-70년대 대한뉴스 톤의 멘트가 흐르고 ‘황성옛터’를 부르며 얼굴 전체를 가린 코트 입은 무용수가 등장하고 다른 탑 조명 아래는 다른 인물이 등장해 둘의 다소 코믹한 만남이 이뤄진다. 이들은 ‘사공의 뱃노래’ 음악에 복고풍의 물방울무늬 조명이 돌아가는 상태에서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는 등 한국춤의 춤사위를 보이고, 무대와 객석 곳곳에서 무용수들이 등장해 12명(김은이, 이윤정, 전정아, 박기량, 박지은, 송지영, 박혜지, 이요음, 화용천, 김병조, 송설, 이석준)의 무용수는 무대를 가득 채웠다. 얼굴을 완전히 가려 존재를 감춘 그들은 현대인을 대변하고 있었고, 징소리에 휘청거리며 무척이나 가볍고 신속하게 움직이는 그들의 몸짓은 현대인들의 단면이었다. 시대를 관통하며 현대인들의 과거와 현재의 모습을 한국무용이지만 현대무용의 어휘로 다뤘고, 말끔히 차려입은 그들의 외양과 건들거리는 춤은 내면에 감춰진 응어리를 감추기 위한 위장의 모습일수도 있다. 벌들의 윙윙거리는 소리와 비슷한 음향과 무빙 라이트의 움직임에 반응하는 모습은 이인수의 <영원한 현재>와 오버랩 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탑 조명은 관객들을 훑고 한 사람씩 불러내 시사적 내용인 담긴 종이를 뜯어 들게 했는데, 관객들이 보게 되는 그 내용은 다양하면서도 날카로운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그러나 그 장면이 길다보니 밀도가 떨어지는 느낌도 없지 않았다.
굿의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붉은 색의 글씨와 그림이 그려진 긴 천을 사선 앞으로 길게 끌고나오는 모습이나 굿에서의 전율처럼 떨리는 신체는 한국적 정서를 더하고자 노력한 부분이었고, 흰 옷 입은 여인(정현숙)의 잔발걸음은 피나 바우쉬의 카페 뮐러의 여인을 연상시켰다. 검은 의상의 군무진들은 닌자들처럼 어둠 속에서 재빨리 움직였고, 이들에 의해 몸에서 몸으로 이동되는 여인은 응축된 에너지를 발산했으며 신내림 굿을 받은 듯 그로테스크한 그녀의 몸짓은 혼돈에 빠졌다. 그러나 곧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에 흥겹게 흔들리는 군무진들의 춤에 흰 옷 입은 여인의 감정은 증폭되었고, 서로의 어깨를 얼싸안고 발을 구를 때 그녀의 웅크림은 더 고립되어 보였다. 광적으로 음악에 반응하는 그들의 몸짓과 사이키 조명을 통해 무대는 더욱 난장(亂場)이 되었고, 바닥에 길게 깔린 흰 종이를 모두 미친 듯 찢어대는 행위에서 몰아(沒我)의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자신들을 감싸고 있던 검은 의상과 복면을 벗어던진 무용수들은 살색 의상을 통해 본연의 모습을 드러냈고, 국악 장단에 맞춰 각자의 움직임으로 미친 듯 춤추는 행위를 통해 최고조에 이르렀다. 뚝뚝 땀을 흘리며 절정으로 치닫는 무용수들은 뛰어난 기량과 체격조건을 갖추고 장단과 일체가 되었는데, 다분히 감정적이면서도 강렬했고 원시적 에너지로 가득 찼지만 관객들과의 괴리감을 극복할 수 없었다.
굿판의 몰입해가는 제의적 과정과 미친 듯 놀고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현실을 풍자하는 모습에서 칼 위에서 춤추는 무당의 위태로움과 접신의 경지, 카타르시스를 연관시켰고 한국인의 현재를 반영하는 것이 가장 한국적이라고 보고 한국적 삶의 맥락을 이해하고 춤으로 그려가는 과정에서 한국 컨템포러리댄스에 대한 그의 이해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결국 안무자 류장현의 눈을 통해 본 <칼 위에서>는 한국적 미의식에 대한 재해석과 굿의 세계가 지향하는 원시적 생명력을 나름대로 과감한 발상의 전환과 새로운 형식의 무대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다. 따라서 한국춤의 새로운 양식을 도모한 점은 그 취지를 파악할 수 있었으나 그 결과물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는데, 그 이유는 주제에 대한 다각도의 접근에도 불구하고 굿이 지니는 원시적 종교의식의 강렬함이나 카타르시스의 감성이 관객들에게 요원하게 느껴져 동화될 수 없었음에 기인한다. 앞으로 외형적 터치보다는 그 원류를 좀 더 깊게 파고들어 한국적인 동시에 현대적인 감성을 특유의 재치와 유머, 진솔함으로 풀어냈으면 한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국립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