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주의 발레의 백미이며 전 세계인에게 가장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 <백조의 호수>가 유니버설발레단에 의해 3.23(수) ~ 4.03(일) 약 10일간, 12번의 공연으로 유니버설아트센터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비슷한 시기에 국립발레단의 <라 바야데르>가 무대에 올랐기 때문에 양대 경쟁구도를 피해갈 수 없었는데, 각 단체의 특성을 살리며 성공적 공연을 이뤄냈다.
<백조의 호수>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호두까기 인형>과 함께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로 꼽히기에 그 부담감도 심하지만 이번 유니버설 발레단의 작품은 1992년 국내 초연 후 1998년 미국 뉴욕 링컨센터 공연, 일본·스페인·남아프리카공화국 등 13개국에서 주목을 받았다. 유니버설의 <백조의 호수>는 그 자체가 지닌 환상적 이미지 -주인공들의 뛰어난 기량과 표현력, 백조 군무의 심플하면서도 아름다운 동작, 스토리텔링을 통해 선악구도에서 선의 승리,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대장치와 의상, 디베르티스망에서의 다양함-를 통해 견고하면서도 완성도를 더해 빛을 발했다.
필자가 본 날은 오데트‧오딜 역에 중국의 예 페이페이, 지그프리드 역에 러시아의 막심 샤세고로프, 로트바르트 역에 동 지아디, 여왕 역에 김예나, 어릿광대 역에 리앙 시후아이가 활약했다. 서양무용수들이 많다보니 외국에서 공연을 보는 듯한 착각도 불러일으켰다. 전체적으로 이번 공연은 러시아 마린스키 극장에서 공연하는 키로프발레단의 버전을 충실히 지켜갔고, 32바퀴 훼떼를 흔들림 없이 힘차게 돌던 예 페이페이의 패기 있는 흑조와 가벼운 점프와 유머 가득한 움직임을 잘 소화한 리앙 시후아이의 어릿광대가 주목받는 춤이었다. 발레블랑으로 대표되는 백조군무에 흑조들을 더해 흑백의 조화를 이끌고, 비극적인 결말이 아니라 해피엔딩으로 끝맺음 한 부분도 연출의 묘미였다.
지그프리드 역의 막심 샤세고로프도 훌륭한 체격과 군더더기 없는 기량을 갖췄으나 섬세한 표현과 폭발적인 에너지가 다소 부족했다. 예 페이페이도 흑조에서의 힘있는 연기는 눈길을 끌었으나 백조의 가냘프고 애잔한 아름다움과 애절한 감정연기를 하기에는 상체 움직임이 다소 시원스럽지 못했기에 앞으로 연륜과 더 많은 훈련을 통해 발전할 가능성을 발견했다.
문훈숙 단장의 설명은 관객들의 이해를 도우며 그들에게 가까이 가는 입문의 시간이 되었고, 1막에서는 솔리스트들의 춤이 개성과 기량을 발휘했다. 그 풍성한 춤들 중에 왕궁 귀족들의 춤인 ‘왈츠’는 그 태생적 기원에 맞게 우아함과 화려함을 뽐냈고, 코메디에 패러디될 정도로 널리 알려진 ‘네마리 작은 백조’와 긴 라인을 과시한 ‘세마리 큰 백조’의 춤이 돋보였다.
2막에서의 화려한 파티장면과 각국의 춤은 각 나라 춤의 정서와 특징을 담았기에 인상적이었는데, 스페인‧헝가리‧폴란드‧나폴리의 민속춤들이 이국적인 공간으로 관객들을 이끌었다. 특히나 금빛으로 빛나는 궁궐과 로트바르트가 죽는 성 등의 무대장치, 정갈함과 화려함을 보여준 의상, 각각의 춤을 살려주는 소품들은 잘 조화를 이루었다. 이에 오케스트라 연주로 차이코프스키 음악이 주는 감동을 더욱 현장감 있게 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더해졌다.
<백조의 호수>는 프티파의 고전주의적 특성- 낭만주의적인 주제를 담고 있지만 논리적인 구조와 패턴으로 발레극을 구성-을 농후하게 드러내고 프리마 발레리나의 등용문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발레리나들은 흑조와 백조의 일인이역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뤄내느냐에 따라 그 성패가 갈린다. 유니버설 발레단은 그간 약간의 침체기도 있었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각자의 색깔과 기량을 선명하게 드러낼 5명의 프리마 발레리나와 발레리노를 갖추는 위엄을 보였고, 민간단체로서는 유일하게 세계무대 속에서 한국발레를 알리는 역할까지도 겸하고 있다. 따라서 유니버설 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각박한 현실 속에서 총체예술로서 발레가 주는 일루전을 통해 휴식과 미적체험을 향유하는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유니버설 발레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