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강남의 조용한 동네 골목길에 무용전용 소극장 M극장이 문을 연지 벌써 10년, 그동안 이곳을 다녀간 관객들의 열정도 공연을 올린 사람 못지않았음을 인정해 줘야할 것이다. 4월 2일부터 5월 29일까지 진행되는 M극장 개관 10주년 기획 공연은 그런 10년을 추억하는 동시에 앞으로의 비전을 제시하고자 하는 뜻 깊은 자리가 되고 있다. 이번 기획공연은 총 아홉 세트로 구성되었는데 필자는 4월 24일 공연(우리 춤의 길을 묻다Ⅱ-이영일, 김성용, 김진미, 정연수, 박근태)을 보게 되었다.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우연한 선택으로 이들의 공연을 만나게 되었는데 바로 그 ‘우연’이 특별한 인연이 아닐까 생각한다.
극장에 들어서면 흰색 무대 위에 매화나무 두 그루가 페인팅 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첫 번째 작품 <물들다>의 준비과정이다. 그림이 완성되면 남녀 한 쌍이 물감이 마르지 않은 그림 위에서 음악 없이 호흡만으로 마치 무조음 같은 리듬을 만들며 춤을 춘다. 수묵화 같은 그림과 동양적인 춤의 선이 조화를 이루며 시적인 이미지를 그려내는가 싶더니 이내 물감으로 뒤범벅된 그들의 몸은 움직임의 흔적을 거칠게 남기면서 상반된 이미지의 충돌로 역동성을 보인다. 그러나 전반적인 흐름은 단조로웠고 남녀의 사랑을 다루는 서정적 서사가 강하게 각인된다.
두 번째 은 무대 가운데 십자 모양의 표식을 두고 조명으로 두 개의 원이 만들어 진다. 무용수의 몸이 구심점에서 멀어졌다가 가까워지고 또 중심을 가로지르며 기하학적인 구도를 그린다. 시간을 소재로 자기 성찰의 표현을 시도한 개념적 구상이다. 깔끔한 안무가 인상적이었으나 연출적 의도를 확실하게 드러내고 싶다면 좀 더 특징적인 장치가 필요할 것 같다.
<세치 혀>는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간의 삶에서 ‘말’이 주는 폐해를 춤으로 형상화시키고 있다. 소문과 오해와 모함, 그밖에 말로 빚어지는 상처로 고통당하는 모습, 그리고 체념의 단계에 이르는 과정이다. 춤에서 신화나 종교적 색채가 느껴지는 작품이다. 첫 장면에 등장하는 사과의 이미지가 그랬고 이따금씩 접신을 하듯 무아지경으로 온몸을 흔들어 대는 장면들이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 머무는 신비스런 느낌을 주었다. 무용수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돋보였고 다양한 동선으로 무대를 장악하는 강렬함이 이 작품의 매력이었다.
<바다의 영혼들을 위해>는 클래식 음악을 사용하고 끊임없이 춤을 추는 작품으로, 동시대춤의 단절이나 파편성에 아랑곳하지 않는 과감한 소신을 보여준다. ‘바다의 영혼들을 위해’ 라는 제목을 보니 쿵푸를 변형한 것 같은 팔놀림은 아마도 파도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었는지,,,오로지 춤 안에서 그저 춤으로만 표현하려는 시도가 용기로서 돋보였다.
<정의>는 까뮈의 <이방인>의 ‘법정’ 장면을 춤과 언어로 표현했다. 서사가 있고 대사를 활용하지만 연극적 표현을 강조한 작품은 아니다. 여기서 언어는 단지 대사로서만이 아니라 춤과 언어가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실험이고자 했다. 그러나 각각의 개성 있는 캐릭터 구현, 재치 있는 몸짓, 의상, 무대 배치 등 연극적인 표현이 풍성하여 춤연극과 유사한 공연이 되었다. 순수하게 춤과 언어의 동행을 실험하고자 했다면 서사에 연연하는 설명적 표현을 좀 자제했어야 실험이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춤에 발화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은 작업이다.
다섯 작품 모두 각각 다른 형식과 주제로 개성이 뚜렷했다. 그들의 성실한 도전의 에너지가 극장 안에 충만했다. 이밖에 다른 공연들에서도 참신한 아이디어가 쏟아지는 열정적인 춤의 무대가 되었으리라 짐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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