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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춤의 또 다른 전형성을 위하여 - <예인열전 조갑녀 1주기 추모공연>


 한국 전통춤은 ‘만들어진 전통’(The Invention of Tradition)에 바탕을 둔다. 정재처럼 고래로부터 기록으로 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우리가 지금 공연에서 볼 수 있는 전통춤은 일제강점기 한성준에 의해 집대성되거나 그밖에 교방에서 내려오던 춤들이 구전심수로 혹은 공연으로 다듬어지면서 지금에 이른 것들이다. 이런 만들어진 전통은 에릭 홈스봄이 말한 ‘특정한 가치와 행위 규준을 반복적으로 주입함으로써 자동적으로 과거와의 연속성을 내포한다’는 말을 뒤집어 볼 때 왜곡된 문화 전승이 아닌 가장 핵심적인 DNA의 수용 양상인 것이다.

 이러한 대표적인 유형으로 무형문화재의 전통춤 전승을 들 수 있다. 승무, 살풀이, 태평무가 그러할텐데 이러한 춤들도 전통적 요소가 충분하지만 한성준 이후 그리고 문화재로 지정되고 한국의 전통으로 표징한다. 그런데 이런 춤들은 어느 순간부터 정형화되고 집중화되면서 그 외 춤들이 소외되고 도태되는 제로섬(zero-sum)의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러면서 소수의 지역 춤들이 공연으로 다듬어지지 못하다보니 공연무대에서 설 기회를 찾지 못하면서 대중에게는 점점 잊히게 되었다.

 그런데 각 지역에서 그 전통의 맥을 이으며 전통춤의 미미한 움직임에 관심을 가지고 이를 무대에서 재생시키는 활동들이 꾸준히 이루어지면서 익숙한 것에 대한 새로움이 나타나게 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로 조갑녀의 춤을 들 수 있다.

 조갑녀는 남원권번에서 춤과 음악 등을 익히고, 1931년 제1회 춘향제 때 9살의 예기(藝妓)로 춤을 춘 이후 매년 화무, 승무, 살풀이를 추며 ‘춤은 조갑녀’라는 말을 들으며 전설적인 인물로 대중에 전해졌다. 수십년 활동을 접고 자신을 숨기고 살던 그는 1985년 정범태의 『한국의 명무』에서 존재확인을 한 이후 간헐적으로 활동을 하며 그녀의 춤을 대중에게 알리다가 2015년 4월 91세를 일기(一期)로 별세하였다.

 그런 조갑녀 춤꾼을 기리고 1주기를 추모하는 공연 <예인열전 조갑녀 1주기 추모공연>(한국문화의 집, 2016.4.5.)이 펼쳐졌다. 이날 공연은 김경란의 교방굿거리춤, 박월산의 학춤, 이정희의 입춤, 진유림의 허튼법고춤, 변인자의 장고춤, 그리고 정연희, 김미선, 서정숙, 이계영의 승무와 조갑녀 선생의 딸인 정명희의 민살풀이가 관객과 소통하였다. 여기서 논의할 수 있는 춤은 아무래도 조갑녀류 승무와 민살풀이춤이다.


 조갑녀류 승무는 다른 승무와 조금은 다르게 종교적이거나 심오한 진리도 내재하고 있지만 타령장단과 흥겨운 서사구조의 구성이 특징적 요소를 지닌다. 이 공연에서도 ‘상대하대’와 ‘사방치기’를 넣어 복원한 완성본을 헌정하는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고, 그동안 이 춤을 연마하던 세 명의 춤꾼이 하나로 합을 이루지만 서로의 기량을 뽐내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수 있었다.


 또한 민살풀이춤은 살풀이춤이지만 수건 없이 한다하여 민살풀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에서 보듯, 흔히 말하는 손춤의 대표적인 춤이다. 게다가 그 동작이나 공간 활용이 적어 관객들도 긴장감 속에서 춤에 집중하여 긴 호흡을 갖게 하는 춤이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흔히 이춤을 할머니춤이라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동작이 적은데다가 내공이 있은 연유에 할 수 있는 춤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게다가 대중은 가장 잘 추었던 조갑녀의 춤을 말년에 보았기에 그리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공연에서는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춤을 익히고 보았던 정명희에 의한 살풀이가 펼쳐졌다. 조갑녀 춤꾼보다는 신장에서나 동작에서 차이가 있어 그런 점이 오히려 생경할 수 있지만 민살풀이춤도 원형이 있고, 개개인의 개성에 맞게 변용되듯 정명희 춤꾼에게서도 또 다른 춤의 매력과 긴장감이 보인다. 그래서 이 춤의 생명은 지금부터 전승한 춤꾼들의 노력과 구전심수에 달려있을 듯 하다. 조갑녀 춤을 그대로 따라하기보다는 ‘만들어진 전통’처럼 가장 중요한 DNA의 전승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정형화된 춤에서 벗어나 여러 개성들이 있는 지역춤들이 모일 때 한국 문화전통의 다양성은 확대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갑녀 춤의 전승은 갑작스럽게 나온 것이 아닌 누대에 걸쳐 원형이 확보되었고, 거대한 춤꾼에 의해 단번에 폭발하였듯 이 춤의 생명은 여러 파생적인 활동으로 또 다른 생산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조갑녀 춤의 문화전통 맥이 어떻게 흐르는지 기대를 가져본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사진_ 박상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