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의 춤 역사를 쌓아온 현대무용단 탐의 <길 위에서>가 레파토리 공연으로서 4월 7일 이화여대 삼성홀에서 있었다. ‘길’이라는 단어가 주는 상징과 은유의 서사는 신체라는 가장 본질적이며 원초적인 매체와 만나 다수의 함의를 담아냈다. 안무자(조은미)가 의도한 바, 시공간 안에서 자신의 길 혹은 삶을 살아가는 인간들이 부수적인 것들을 제외하고 본체만 남은 나뭇가지로 대표되기도 하고, 길게 늘어선 내재된 DNA로 표현되기도 하면서 추상적이지만 숙고의 시간을 갖게 했다.
러시아 곡 <초상화>가 낮게 깔리며 시작된 공연은 강렬한 음악, 현대를 나타내는 느낌을 주는 조명기의 고저가 입체적 공간을 완성했기에 효과적인 장치로 활용되었다. 이후 조양희는 장신과 길고 가는 팔다리를 과시하며 조각 같은 움직임으로 비장미를 보여주었고 바닥에 놓여있는 나뭇가지는 삶이라는 길을 시작하고 그곳에 뿌리를 내리는 시초를 암시했다. 더불어 정은주는 메탈 느낌을 주는 비닐 원피스를 입고 나뭇가지를 들고 중앙으로 등장하는데 철제 바톤과 비닐 옷은 차가운 현실과 누적되어지는 삶의 흔적을 의미했다. 그들이 나뭇가지를 웅장한 음악에 위로 높이 들고 움직이는 모습은 원시성까지 담고 있으며 무척 이국적이었다. 빠른 음악의 전환에 모든 군무진(마승연, 어수정, 최윤영, 유서영, 황희상, 방민정, 허은금, 김민주, 김다인, 김희연, 신민경, 양유정, 최효련)들이 출연하는데 이는 원시에서 현재로의 진화과정처럼 보이기도 했고, 중앙 군무진들이 팔을 반원으로 들고 다함께 움직이는 모습은 흡사 앨빈 애일리의 <계시>를 연상시켰다. 중앙 푸른 조명 어두움 속에서 아마존의 여전사 같은 조양희의 카리스마 있는 솔로, 피아노곡에 아이보리 원피스 의상으로 바꿔 입은 무용수들의 팀별 듀엣과 솔로, 트리오 등이 구성의 묘미를 보였다.
음악적 전환에 따른 칼 같은 군무와 역동적인 움직임은 시간을 더하며 분위기를 최고조로 끌어올렸고, 속도감이 붙은 음악에 세 원형 속 각각의 춤들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었다. 전체가 일렬 앞으로 모이고 곳곳에 등장하는 조양희와 정은주의 듀엣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했다. 차후에 조양희, 정은주, 윤경, 마승연의 4인무는 새벽을 밝히는 듯 했고, 옆으로 누워있는 사람들은 또 하나의 뿌리이며 후에 뒤에 있는 사람들과 연결고리이기도 하고 이들이 다시 뒷사람이 되는 환원의 과정이며 흔적이기도 했다. 나뭇가지 하나를 가지고 이어지는 서정적 6인무, 곳곳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솔로와 5인무 등이 안무의 다양성을 입증했고, 어수정의 앞선 길과 DNA로의 관계, 서로 나뭇가지를 펼쳐 바닥에 깔고 목가적이면서도 아스라이 연출된 환상적 이미지 등이 돋보였다. 포그로 완성된 시공을 넘나드는 듯한 느낌, 뒷면 길 조명 속에서 정은주와 조양희가 앞과의 연속성을 주기 위해 사용한 동일한 장면의 반복, 다시금 뿌리를 내리는 군무진들의 누워있는 신체, 앞으로의 미래를 기약하는 조양희의 뒷모습 등이 마지막 묘미로 작용했다.
우리가 개개의 나무를 통해 숲을 보듯 무용수들 개개인의 신체 움직임을 통해 완성된 작품의 감상은 안무자의 의도와 그 속에 담긴 무언의 메시지를 보는 과정일 것이다. 특히 <길 위에서>에는 많은 상징과 의미가 보물찾기처럼 곳곳에 숨겨져 있다. 이것을 찾는 재미가 크다. 나뭇가지는 사람 혹은 인생에서 단촐하게 비우고 본질만 남은 것, 또 다른 잉태와 살면서 사람의 소리를 듣는 것, 또 아침에 비로 쓸면서 인간의 세상을 다시 만들고 쓰는 것, 자신 혹은 완성도가 높은 길 위에서 그것을 따르는 것을 의미했다. 더불어 생떽쥐베리의 <어린 왕자>에 나타나는 은유, 세상을 살아감과 인간관계를 더해가는 상징적 동작에 뿌리와 흔적으로 연결되는 상징, 수평으로 흐르는 시간의 흐름과 수직으로 흐르는 군무 등이 존재의 궤적을 만들며 또 다른 미래의 길을 다져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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