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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단련된 신체의 기술이 주는 감동 - 제 35회 국제현대무용제 모다페 2016 〈Dreamers〉, 〈Process Day〉


 제 35회 국제현대무용제 모다페 2016이(International Modern Dance Festival) 5월 18일부터 5월 29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개최되었다. ‘감각을 일깨우는 춤의 꼴라주’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이번 행사는 한동안 컨셉에 집착해온 현대무용의 현주소에서 탈피하여 ‘몸’이 주도하는 강렬한 춤의 무대를 개막작에서부터 보여주었다. 스코틀랜드 국립현대무용단의 라는 두 작품이 연이어 공연되었는데, 안톤 라키와 샤론 에얄이 각각 안무를 맡아 색깔이 완연히 다른 두 안무가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이 무용단은 고정 안무가를 두지 않고 유수의 안무가들에게 의뢰하여 매번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까지 초대된 안무가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그 특성이 아주 다양한데, 이렇듯 다양한 성향과 콜라보를 감당해내는 무용단의 기본기에 우선 감탄한다. 이번 개막작은 바로 이들이 지닌 중심 색깔과 콜라보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기량을 보여주는 무대였다.


 첫 작품 는 고전 음악의 선율을 바탕으로 무용수의 몸이 악기가 되어 연주하듯 아주 민첩하게 리듬을 지배하며 출발한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그들의 섬세한 움직임은 소름이 돋을 정도로 격렬하면서 리드미컬하다. 몸의 외연적 움직임은 말할 것 없고 신체의 내부에 있는 성대나 혀의 근육도 놓치지 않는다. 혀를 내두르며 다양한 소리를 내는 장면은 소리가 언어로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근육의 움직임을 확인시켜주는 기능이었다. 제목의 의미가 “잠들지 않은 채 꿈꾸려 하는 사람들”이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현실과 꿈의 경계를 허물어 일종의 ‘낮 꿈’을 꾸는 현상으로 설명될 수 있다. 현실에서도 꿈에서와 같이 자유자재로 잠재적 충동을 실현함으로써 의식과 무의식이 결합하여 내면적 현실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욕망 충족을 그려가는 과정이다. 이때 무용수의 신체는 초현실주의자들의 자동기술 방식처럼 자유롭고 거침없이 폭발하면서 리듬 위에서 그 강도를 조절하며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게 될 것이다. 솔로, 듀엣, 트리오, 군무로 다양하게 편성된 열정적인 움직임 속에서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위트와 유머는 꿈이라는 설정의 환상성과 함께 동화적인 느낌도 불러온다.


 는 주제 면에서는 앞 작품 의 연장이라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표현의 양상은 대조적이다. 가 음악적 선율, 즉 소리로서 그들의 신체를 맘껏 조작한다면 는 신체를 시각적으로 극대화시킨다. 상체를 활용하여 저변에 깔린 하의식, 성적 욕망이나 야성적인 본능을 신체의 집합과 분산의 효과를 통해 상당히 공격적이고 도발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현대적이면서도 원시적인 리듬을 바탕으로 다소 원색적인 장면이 연출되는데 이때 음악이 소리로서 분리되기 보다는 시각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충동으로 작용하면서 관객에게 은근한 충격을 던진다. 신체들의 뒤엉킴, 개별적이기 보다는 덩어리가 되어 꿈틀거리는 설정은 조명과 분장이 가세하여 야성적이고 문명화되지 않은 거친 분위기를 품어내며 금속성이 강한 사운드와 상충된다. 그러나 이렇게 흥분과 도취의 상태로 만들어진 그들의 야생성은 “어두운 쾌감”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명에 대한 조롱으로 읽히기도 한다. 선전이나 선동성이 없는 차분한 도발은 오히려 더 섬뜩함을 주기도 했다.


 신체성이 강조된 이 공연들은 작품의 완성도나 작품성을 따질 여유가 없을 정도로 강렬하면서도 섬세한 움직임에 압도된다. 유연한 몸과 강한 에너지를 동시에 보유한 이들은 신체의 물질성으로 관객의 정념을 부활시키고 있었다. 감각을 일깨우는 것의 바탕은 기술이다. 미디어의 정교함만큼이나 신체의 기교와 기술이 주는 감동은 그 어떤 서사와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무대 보다 더 강렬하게 와 닿았다. 최근 감각의 문제가 대두되며 다시금 관객에게 새로운 감동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과거의 공감과는 다른 차원의 것으로 철저한 기술과 계산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

 최근 10여년 한국 현대무용의 무대를 돌아봄에 해외초청작이든 국내 창작물이든 서사에 대한 관심이 지나치게 고조되면서 텍스트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무용수의 몸이 텍스트의 부산물이 되어버리는 상황에 이르곤 했다. 이것을 단지 전통적 관습의 전복이며 춤의 개념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라고만 단정할 수 있을까? 춤이 아닌 외적인 요소에 의지하여 무대를 꾸려가려는 안일함과 무력감이 만들어낸 어긋난 열정은 아닐까? 이러한 질문이 촉발시킨 춤의 치열함에 대한 재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즈음에 세계적으로 호평을 받고 있는 또 다른 양상의 공연은 우리에게 두 가지 과제를 던져준다. 하나는 이들이 과연 어떤 과정을 겪으며 매번 다른 안무가들에게 적응하고 그 효과를 얻는지에 대한 상세한 절차를 알아보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들의 기본기에 대한 그리고 다양한 토론 속에서 고민하고 구성해 나가는 디바이징의 성과들에 대한 좀 더 심층적인 접근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어쩌면 이 두 가지 질문의 답은 하나일 수 있다.


글_ 서지영(공연평론가, 드라마투르기)
사진_ ⓒBrian Hart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