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포스트코리아
지난자료보기

로고

무용리뷰

공연비평

예술적 환상의 완성 - 필립 드쿠플레 〈콘택트(Contact)〉


 프랑스의 혁신적인 아티스트이자 컨템포러리 댄스의 선두주자, 프랑스 감성을 담아 유쾌함과 재미를 동시에 담아내는 매력을 지닌 안무가 필립 드쿠플레의 <콘택트>가 LG아트센터에서 11월 11~13일 있었다. 이제는 세계적인 예술가로 우뚝 선 그는 춤, 마임, 서커스 등의 신체적 요소에 연극, 캬바레 쇼, 비디오, 그래픽, 건축, 패션 등 다채로운 장르를 과감히 접목시킨 융복합예술의 공연을 선보여 왔다. 또한 공연 외에도 단편 영화, 광고, 뮤직비디오 등 다방면에서 기발한 상상력으로 세계 관객들을 매료시켜 왔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코덱스>, 태양의 서커스 <아이리스>, 프랑스의 대표 캬바레 쇼 <크레이지 호스 파리> 등이 있고 1992년 알베르빌 동계올림픽 개막식으로 더욱 명성을 높였다. 이 개막식은 기존의 진부한 방식에서 벗어나 예술적인 축제의 장을 열었고 역대 동계올림픽 사상 가장 아름다운 무대 중 하나로 기억된다. 그는 이 개막식을 통해 31세 젊은 나이에 일약 스타덤에 올랐고, 자신만의 상상력과 예측 불가한 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초현실적인 감각,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충만한 스타일, 다채로운 장르와 요소들을 하나의 ‘쇼’로 만드는 연출 방식은 독보적이었기에 드쿠플레만의 연출 방식을 일컫는 ‘드쿠플러리(Decoufleries: 드쿠플레 방식의)’ 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낼 정도였다. 이번 공연된 <콘택트>는 그의 이러한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 작품이었다.


 작품 <콘택트>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모티브로 전개되는데, 인종과 나이 그리고 개성이 모두 다른 10여명의 출연진들이 뮤지컬 파우스트를 리허설하며 벌어지는 다양한 해프닝을 그리고 있다. 특이한 것은 뮤지컬 제작 과정을 ‘쇼 안의 쇼’ 로 그리는데 있다. 드쿠플러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가운데 서커스, 마술, 뮤지컬, 그림자극 등의 다양한 요소가 조화롭게 버무려져 흥미진진한 퍼포먼스와 개성 넘치는 의상, 감각적 영상을 통해 보다 풍부해졌다. 공연은 괴테의 원작에 대한 논리성, 텍스트의 정직한 해석이나 설명을 불허하며 단편적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콜라쥬를 이뤘다. 새로운 사물과 움직임, 음악의 조화로 예측불허의 상황을 연출했고, 곳곳에 자신이 존경했던 안무가이자 현대무용의 거장 피나바우쉬의 <콘탁트호프>를 오마주하고 있다. 피나 바우쉬의 <콘탁트호프>를 알지 못하는 관객들은 눈치챌 수 없겠지만 영화 ‘피나’를 본 사람은 직선과 사선의 라인을 유지하며 걷거나 춤을 추는 동선에서 피나바우쉬가 중첩되었다. 그렇지만 이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드쿠플레는 그러한 연상을 곧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환해 춤과 무대를 완성했다. 공연에서는 음악도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데, 무용수들과 소통하며 다양한 악기 연주와 노래를 선보인 노스펠과 삐에르 르 브르주아의 역할은 무용수에 버금갔다.


 <콘택트>의 뛰어난 연출력은 무대사용에서도 빛났다. 여러 형태로 변형되는 구조물 외에도 드쿠플레는 단순한 배경으로서 건물 외벽에 LED 조명을 비춰 영상을 표현하는 기법인 미디어 파사드나 스크린이나 샤막에 투사하는 단순한 영상기법을 벗어났다. 무대 공간 전체를 활용해 바닥을 포함해 사방에 투사되는 영상은 공간의 확장을 도모했다. 이는 오늘날 컨템포러리댄스의 전반적 특징이기도 하지만 그는 이 영역의 선두주자라 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더불어 화려하고 독특한 의상도 프랑스인의 패션감각을 뽐내는 듯 했고, 정형화 할 수 없는 그의 색다른 시선은 우리를 미지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었다. 즐거움의 추구를 목적으로 하고 있는 그에게 무대는 호모루덴스의 명확한 종착지였다.

 결론적으로 <콘택트>에서는 앞서 언급했듯이 드쿠플레의 주특기인 멀티미디어의 사용이 돋보였고, 무대 뒤쪽에 영화 스크린처럼 펼쳐지는 영상은 무대 위의 무용과 이질감 없이 어우러지며 마법과도 같은 감각적인 연출을 극대화했다. 또한 라이브 음악 역시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 프랑스 음악가 노스펠과 피에르 르 부르주아의 기타, 첼로, 피아노, 퍼커션 등 다양한 악기를 활용과 록과 팝을 넘나드는 보컬리스트 노스펠의 천사와 악마의 양날 같은 목소리가 청각적 자극이 되었다. 더불어 그는 거울을 이용한 만화경 효과로 무대 위 출연자들의 이미지를 증폭해 환상적인 비주얼을 만들어냈는데 이는 그만의 흡입력 있는 시각적 환영인 것이다. 기대에 비해 휴식도 없이 너무나 많은 것들을 한 무대에 보여주는 그의 방식이 초반부의 긴장과 재미를 감소시키면서 중간 중간 밀도가 떨어지는 부분도 없지 않았다. 장시간 공연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들도 문제이지만 효율적인 시간배분도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독창성과 융복합에 대한 높은 이해도로 명성을 실감케 한 이번 공연은 <파노라마>와 더불어 한국관객들에게 무용에 대한 환상을 증폭시키는 계기가 되기에 충분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_ LG아트센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