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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어머니의 존재에 대한 해석 - 리을무용단 이희자의 〈MEM〉


 80~90년대 현대성을 바탕으로 기존 한국춤의 영역을 확장시켜 온 리을무용단은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 가장 아름다운 춤을 출 수 있으며 춤은 춤으로만 승부한다는 정신을 모토로 삼고 있다. 올해로 31회를 맞이한 리을무용단은 매년 다양한 안무작을 선보이며 오은희, 김수현, 이희자, 홍은주 등 한국 창작무용계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안무가들을 배출했고, 이후 젊은 무용수들이 그 맥을 이어나가고 있는데 이번 2016년 정기공연인 (12월 10~11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은 상임안무자 이희자의 전작과 신작을 한자리에서 볼 수 있던 무대였다. 밝음보다는 어두운 심연에 탐닉하던 그녀의 안무색과 더불어 어머니라는 공통 주제가 관객들에게 또 다른 감성으로 다가왔다.

 엄마를 의미하는 “맘(mom)” 과 “모방 등 비유전적 방법으로 전달된다고 생각되는 문화의 요소”인 “밈(meme)”의 합성이미지 “MEM”으로 꾸며진 이번 공연의 시작은 2014년 실종된 딸을 그리는 어머니의 심정을 그린 <귀신이야기 ll>로, 당시 한국 창작무용계에서는 드문 사회적 소재를 다뤘다. <귀신이야기 ll>는 특유의 강렬한 움직임과 그로테스크한 분위기 속에 각자의 아픔과 고통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의 다양한 모습에 대한 투영, 한국인의 일상 속에서 때로는 친숙하나 때로는 공포의 대상인 ‘귀신’이라는 독특한 소재, 상처와 상실감으로 우리 주위를 맴도는 영혼들에 대한 조명, 진정한 삶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 억압된 여성의 삶에 대한 주목 등의 주제로 꽉 차 있었다. 철제 탁자의 차가운 느낌, 붉은색과 검은색의 강렬한 색감은 주제를 더욱 선명하게 부각시키는데 기여했고 무용가 김수현과 최희원의 열연은 무거운 소재를 움직임의 관계성 속에서 빛나게 만들었다. 실종된 딸아이의 붉은 신발과 처절한 목소리를 연상시키는 가락은 귀신과의 공존을 통해 공포감을 확대했고, 서로의 머리카락을 매만지기도 하고 껴안기도 하는 여성들간의 감정의 교류는 이중적 함축의 표현이었다. 마지막 엔딩신이 다소 설득력 부족으로 다가오긴 했지만 작품 전반에 흐르는 진솔함, 열정적인 춤어휘, 소재에 접근하는 새로운 시각이 <귀신이야기 Ⅰ>과 마찬가지로 이희자의 색깔을 완성시켰다.


 신작 <내딸내미들>은 안무자의 고민, 즉, 전통의 현대화라는 문제에서 출발해 가장 원초적인 그리움의 대상인 “어머니”와 공포의 대상인 “죽음”을 연결고리로 삼고 있다. 이는 삶의 가장 큰 이별에 직면한 딸의 모습을 통해서 엄마에 대한 그리움과 엄마와 연결된 삶의 연속성에 대해 적절한 오브제의 사용과 장면구성으로 섬세하게 그려냈다. 특히 <내딸내미들>은 제36회 서울무용제 경연대상 부분에 참가하여 그 가능성을 선보였고, 1장 이별‧ 2장 파편‧ 3장 분노‧ 4장 눈물‧ 5장 다시를 통해 인간 무의식속에 내재되어 있는 죽음과 삶의 연속성에 대한 오랜 관습적 행동양식의 패턴과 변형을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엄마에게서 딸로, 또 다시 그 딸로 이어지는 환원의 고리는 사랑과 생명, 전통과 문화의 밝음의 측면도 있으나 일종의 업(業)으로서 끊을 수 없는 고통의 순간일 수도 있다. 이 부분에 대해 안무자는 따듯한 시선으로 그녀의 일반적 작품에서 보이지 않았던 유머와 포근함을 담아 한국적 호흡으로 완성했다. 어머니 역의 오은희 선생은 잠시의 등장으로도 엄마의 존재를 각인시켰고, 이주영‧ 김정민‧ 최희원‧ 이주희‧ 김지민‧ 김현지‧ 조은시는 작품에 활력을 더하며 기량을 과시했다. <내딸내미들>에서 가장 주목 받은 것은 누비이불 같기도 하고 옛날 누비옷을 연상시키기도 하는 커다란 외투였다.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포대기로, 분노와 눈물을 닦을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마지막 가는 길로 다각도로 변용되는 가운데 관객들로 하여금 웃음과 눈물을 자극하는 도구였다. 움직임의 측면에 있어서는 외투를 사용해 주제를 강조하는 반복적인 춤사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꿈틀거림과 실룩거림에서는 웃음을, 난장과 도약에서는 응축된 에너지의 표출로 강약을 조절하고 있었다.

 때로는 너무 높은 밀도감이 해방의 카타르시스를 요구하긴 했지만 리을무용단만이 가지고 있는 강렬한 에너지를 분출한 두 작품은 안무가 이희자의 개성이 뚜렷했고 오브제를 활용할 줄 아는 연출력, 소재에 대한 진지하고 뛰어난 분석력, 현대적 감성으로 풀어내는 작품 구성, 전통과 현대가 혼용된 세련된 안무로 앞으로의 무대를 기대하도록 만들었다. 더불어 춤으로만 승부한다는 리을무용단의 근성이 확연하게 드러난 순간이기도 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_ 리을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