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발레단은 2015년부터 ‘KNB Movement Series’라는 타이틀 아래 안무 작업을 희망하는 단원들에게 기회를 주고 우리나라의 발레 안무가를 육성하는 기틀을 다진다는 의미에서
박일의 <흔적>은 추억읽기의 내용으로 사진 속 흔적을 따라간다는 의미의 움직임을 남녀무용수가 무대에서 펼쳤다. 화려한 동작과 함께 진행된 작품은 ‘발레는 참! 힘겹다’라는 생각을 하게 했고 조명의 한계를 느끼며 허무함을 안겨준 무대였다.
이영철의 <빈집>은 기형도 시인의 <빈집>을 주제로 한 작품으로 2015년 이후 이번이 세 번째 무대다. 사랑을 잃어버린 상황, 장님처럼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자포자기의 상태를 표현한 무대는 모던 발레의 분위기를 자아내기 위한 움직임과 무음의 시도로 차별화 작업을 준비한 것으로 보이나 경직된 상태의 연속된 움직임과 전개 없이 시도된 갑작스런 무음 속 장면은 관객으로서 당황스러웠고 발레의 한계성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강효형의 <빛을 가르다>는 무용수들이 겪는 특별한 느낌과 춤추는 자체, 무용수들이 느끼는 또 다른 세계를 내용으로 한 작품이다. 국악과의 연결을 강조한 이 작품은 10명의 무용수들이 펼치는 움직임의 향연으로 강한 에너지를 전달받은 무대였다. 그러나 강한 에너지만을 강조했을 뿐 동작의 파워 조절의 미흡으로 긴장감만을 안겨준 작품이었다. 또한 작품과의 부조화를 이룬 조명과 한국춤의 창작공연장에서 많이 본 듯한 장면들은 작품의 몰입을 방해하였다.
신무섭의 <카르멘>은 사회적 편견 속에 살아가는 트랜스젠더의 삶을 표현한 작품으로 원작 <카르멘>의 캐릭터를 재설정하였다. 마츠 에크(MATS EK)의 <백조의 호수> 무대를 연상케 한 <카르멘>은 코믹한 분위기로 음악을 움직임으로 풀어내었고 남녀무용수들의 움직임은 어색하지 않은 가운데 진행되었다. 무엇보다도 후반부에 등장한 수석무용수 김지영의 출연은 한마디로 ‘발레리나의 몸이 진정한 발레를 말해준다’라고 표현할 수 있다. 화려한 동작으로 힘겹게 보여주는 과도한 테크닉 보다 때로는 가장 기본적인 무용수의 몸이 전하는 메시지가 더 강렬하게 다가올 때가 있다. 신무섭의 작품은 음악과 동작, 조명, 소품, 무대장치가 조화롭게 이루어지면서 드라마틱한 무대였다. 단지 작품 후반부에서 보여준 갈등 구조에서 클라이맥스(climax)의 부재(不在)가 아쉬움으로 남았다.
글_ 전주현(발레전문 리뷰어)
사진_ 국립발레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