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이기(利器)로 존재할 것인가 아니면 얼마지 않은 미래에 지각 능력이 더해져 인간을 지배하게 될 것인가. 이러한 기우 아닌 기우는 영화적 상상력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알파고를 통해 현실적인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게다가 로봇의 등장으로 일자리가 점점 줄어드는 문제가 나타나면서 이는 사회적 쟁점으로 다가서고 있다.
팀 덜럽(Tim Dunlop)이 쓴 『노동 없는 미래(Why The Future Is Workless, 2016)』에서는 노동이 점점 자동화되는 세상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논하는데, 로봇의 등장으로도 지속될 수 있는 직업을 간략하게 이야기하면서 패션디자이너, 작업치료사, 특수교육교사 그리고 안무가 등을 언급하였다. 춤은 몸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이제는 무대에서 로봇이 서서히 등장한다는 점에서 여러 시사점을 던져준다. 2017 셀스테이지 기획공연도 ‘예술과 기술의 만남’이라는 주제로 타이완 출신의 안무가이자 무용수 황이(黃翊, Huang Yi)와 로봇 KUKA(keller Und Knappich Augsburg)가 함께 이야기를 풀어놓기에 주목해 볼 수 있다.(, 셀스테이지, 2017.2.14.-18)
어둠 속에서 Huang yi와 KUKA는 조우를 한다. 첫 만남은 서로 어색한 듯 조심스럽다. 그렇지만 둘은 조금씩 움직임을 통해 서로를 인지하기 시작한다. 이는 감정 없이 지시한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호흡 대신 들리는 기계음만 제외한다면 그 움직임이 서정적으로 조화롭게 표현된다. 이러한 느낌은 무용수이자 안무가이며 프로그래머로 참여하는 Huang Yi의 생각에서 출발하기에 가능할 듯 하다. 그는 어린 시절의 감정, 외로움을 풀 수 있는 대상으로 로봇을 생각하였고, 산업용 로봇의 기계 팔에 그 의미를 부여하여 움직이게 만들어내고 있다.
또한 이러한 흐름은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등 고전 음악이 이들의 움직임과 함께 흐름을 이어가기에 가능하였다. 기계음이나 현대음악으로 배경음악을 삼았다면 이러한 느낌이 반감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피아노 등의 악기를 통한 서정적인 음계와 잔잔한 정조는 인간과 로봇이 마음으로 교감하여 움직이는 충분한 장치였다.
그러다 KUKA의 팔에 비디오카메라를 설치하여 렌즈의 시각에서 바라본 모습을 스크린에 비추며 Huang yi, 무대 그리고 관객의 모습까지 담아내고 있다. 그저 움직이는 대상이 아닌 무대에 서로를 바라보며 함께 하는 존재로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세 번째 장은 Huang Yi와 KUKA가 더욱 조화를 이루며 파드되를 만들어낸다. KUKA의 팔을 잡고 움직인 아라베스크는 자연스러움으로 이어지며 KUKA가 기계음으로 가득하지만 인간과 교감하며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감정선을 이어가게 한다.
마지막 장에서는 두 명의 무용수가 의자에 앉아있고, 로봇이 지시하는 불빛에 따라 움직인다. 분절된 몸짓 속에서 서로가 조화를 이루어내지만 결국 로봇이 가르치는 방향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표출한다. 그것은 클래식 음악에 따른 장중한 느낌의 음률로 수용되어 KUKA의 360도 회전하는 역동적인 동작으로 무대를 지배하며 확장의 폭으로 다가온다.
Huang Yi와 KUKA는 인간과 로봇이 보여줄 수 있는 여러 모습을 서정적인 정조에 기초한다. 그러다보니 생경함이나 신선함이 아닌 익숙함으로 몰입시키고, 로봇의 인간 형태화가 아닌 인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는 대상으로 만든다. 이러한 분위기는 Huang Yi의 철학 그대로이다. 그는 앞서 이야기했듯 무용수이자 프로그래머이며 안무가라는 위치에서 출발한다. 그래서 『노동 없는 미래』에서 로봇의 발달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직업으로 무용수가 아닌 안무가를 말한 것은 감정이 살아 숨 쉬는 지금 이 순간을 창조해낼 수 있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며 로봇의 쓰임새는 부지불식간에 늘어나고 있다. 모든 사회에서 편리성과 더불어 부정적 이미지를 통한 두려움도 잔존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무용은 먼 미래에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태초에 말씀도 있었지만 인간의 움직임이 있었고, 그건 단순한 움직임을 넘어서 여러 의미를 담아내어 예술적 가치를 만들어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공연은 로봇의 도전이나 인간처럼 움직이는 로봇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인간의 의지에 따라 무용의 본질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지침으로 고민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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