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6년 이화여대 김명숙 교수를 주축으로 창단해 타예술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한국춤을 시도해오던 늘휘무용단이 21년의 시간을 담아 봄신작을 가졌다. 3월 19일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에서 <봄.나.들.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공연은 촉망받는 젊은 작가들이 푸르고 서글픈 봄날의 순간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구성했다. 이 공연 역시 공연의 축을 이루는 춤, 그림, 의상, 음악 등 각 분야의 젊은 작가들이 한 공간에서 만나 나를, 서로를 들여다봄으로서 이 시대의 감성을 교류하는 아트워크 공연이었다. 특히 내 안의 침묵에 집중해 자신을 끊임없이 관찰하고 주시해 진정한 자아를 마주하는 찰나를 포착하는 여정이다. 그래서인지 단순한 미적 아름다움보다는 무게감을 갖고 진지한 성찰의 시간을 담아냈다. 로비에 마련된 먹으로 그린 무용수들의 움직임도 또 다른 볼거리였다.
첫 작품은 남선희 안무의 <생생지도(生生之道>였다. 장삼처럼 길게 늘어뜨린 흰 의상을 입고 정재음악에 맞춰 단아한 모습으로 무대 중앙에 위치한 남선희는 정갈했다. 주제는 매순간이 새로운 이 세상 속에서 낯선 나를 마주하며, 내 앞의 나를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지, 부단히도 새로운 이 세상 속에서 그럼에도 익숙하고도 뜨거운 나와 마주하는 자신을 표현했다. 자신이 앉아있는 사각의 투명 아크릴판과 희게 칠한 얼굴은 나를 감추기도 혹은 나를 비추기도 하는 수단이었다. 뒤로 허리를 90도로 꺽기도 하고, 느리게 움직이는 에너지의 흐름을 통해 정제된 느낌을 주다가 일어나서는 빠른 가락에 겉옷은 벗어 중앙에 놓고는 여성 구음에 계속 사각 구도를 유지하며 이동하는 구조를 보였다. 그녀가 움직이며 그려내는 동선과 춤사위가 도를 찾기 위한 구도(求道)의 과정을 연상시켰는데, 그래서인지 깨끗하고 고운 선이 아름다웠다. 다만 큰 임팩트가 없는 것이 다소 아쉬웠다.
최시원의 <관(官)>은 ‘관(官)을 관(觀)’하다라는 것이 주제로, 시대상황에 대한 스스로의 관찰을 담아 작품을 완성했다. 관(官)을 쓰고자 스스로를 채찍질 하고 그러한 상황이 나를 잃게 하는 과정에서 관을 벗어던지고 진정한 나를 찾는 부분이 현재 이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인간의 모습을 반영한 듯해서 더욱 집중되는 무대였다. 2층에서는 국악 라이브 연주가, 1층 중앙에는 과거 관직을 상징하는 머리에 쓴 관을 은유적으로 다룬 사각물체가 놓여있다. 주황색 의상을 입은 안무자는 바닥면에 밀착해 누르는 느낌의 움직임으로 시작해 음악의 강약에 따라 완급을 조절했다. 잔발걸음으로 등장한 김민지가 안무자와 공간을 아우르고 중앙에 있던 사각물체를 나눠가지며 머리에 관처럼 올리기도 했고, 이후 등장한 세사람(이은정, 이예은, 조다솜)도 사각물체를 사용해 그 물체를 통해 관객석을 살피기도 하고 곱기보다는 강렬한 이미지의 춤사위로 전체 작품들에 다양성을 더했다. 오브제를 잘 활용했고 독특한 음악, 탄탄한 기량의 무용수들이 안무에 힘을 더하며 개성이 돋보였다.
배진일은 <하얀 그림자>와 마지막 작품 두 안무작을 내놓았다. 가장 안정적인 무대진행과 탄탄한 춤기량이 연륜을 말해주는 듯 했고 그것이 장점이자 기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한 인상을 주는 단점으로도 작용했다. <하얀 그림자>는 영겁의 시간 위에 존재의 무게를 실어 그림자를 만들고, 존재로서 존재하는 하얀 그림자는 어둠을 밟고 빛을 쫓아 뒤척인 곳에 남는다. 이와 같은 추상적인 주제를 다룸에 있어서 남성 구음에 감정을 실어 그 정취(情趣)를 살렸는데, 솔로로서 본인의 응집된 내면의 에너지를 비교적 자연스럽게 표출했다. 는 코드화 된 자신과 0의 불확실한 불안을 피하고자 하지만 결국은 0으로, 본연의 자신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세련된 조명과 미니멀한 움직임, 먹으로 그려진 그림 느낌의 의상 등으로 살려냈다. 안무자를 포함해 4명(이은정, 이미지, 남선희, 이예은)이 보여주는 각각 다른 춤사위들은 무용수들 하나하나가 코드로, 전체가 하나로 합쳐지는 완성의 순간을 시각적으로 그려냈다. 수평과 수직을 넘나들며 박자와 각도를 달리해 변화를 주면서 반복되는 동일 음악의 규칙적 박자와 비슷한 유형의 춤사위들이 바뀌는 과정들을 역력히 드러냈다.
민희정 안무의 <토르소>는 여성적 이미지가 두드러진 솔로 작품이었다. 베일 속에 감춰진 자신의 신체와 감정들, 치마 겹겹이 흘러나오는 두려움들이 자유롭게 흐를 수 있도록 거리를 좁히고자 했던 안무자는 제목에 맞게 의도적으로 상체의 움직임을 제한한 듯 한국춤 특유의 부드러운 상체의 쓰임을 볼 수 없었다. 바닥면에 독특한 문양의 조명들이 분위기를 살렸고, 맨발의 발끝을 보이며 움직인다든지 부풀려 있던 치마를 풀어 무대를 가로질러 커튼처럼 치고 그 뒤에서 가려진 사이로 발만 보인다든지 하는 방식이 익숙했다.
이번 봄신작은 늘휘무용단의 기존 작품들이 한국적 아름다움이나 전통에 기반한 춤사위들이 많이 사용되었던 반면에 각각의 개성을 담아 나름의 춤어휘들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조금 더 보강된 무대였다. 시대와 호흡하는 컨템포러리 댄스란 개인적 존재와 사회적 환경이 맞물려 관객과의 소통이라는 측면이 중요시된다고 볼 때 이를 바탕으로 창작춤의 가능성이 확장되었으면 하는 바램도 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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