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 예술가가 자신의 전언을 드러내고자 고민하고 주춤하며 망설일 때, 김남진은 이 사회의 문제점을 예리하게 짚어 내어 신랄하게 고발해 왔다. 그의 공연은 이 시대에 대한 거침없는 독설로서 예술가의 사회적 책무가 무엇인지를 성찰하게 했다.
지난해 공연되어 찬사를 받고 재공연을 올린 <씻김>도 예외는 아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을 위한 ‘사부곡’이라고 밝히며, 중년이 된 자신의 신체를 삶의 질곡이 드러나는 무대 언어로 헌납했다. 검은 정장 차림에 불룩한 배로 이 땅의 아버지의 모습을 여과 없이 대표했다. 날렵하고 매끈한 무용수의 신체 대신 울퉁불퉁한 일상의 몸으로 뒹굴뒹굴 장면을 만들어 냈다. 그런 중에도 유연한 신체의 민첩한 움직임은 이야기를 매끄럽게 이어가면서 무용수로서의 전력을 확인시켜 주기도 했다.
<씻김>은 김남진의 자기 고백적 무대이기도 하다. 자신이 아버지가 되어 감내해야 할 무게를 짊어지니 비로소 자신의 아버지를 진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는 개인적 회한이 작품의 중심에 있다. 더불어 이 사회의 고독사 문제, 누군가의 아버지였으나 홀로 버려진 노인들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가치 부여와 이해를 대신하여, ‘씻김’이라는 전통적인 의식으로서 보답하고자 했다.
<씻김>은 2부작으로 구성된 이번 공연(길, 걷다)의 2부로서 1부 <무게>와 별개의 작품처럼 공연되지만 실상 1부가 받쳐주는 힘을 간과할 수 없다. 1부 <무게>에서는 제한된 틀에서 돌파구 없이 버텨내야 하는 이 시대 젊은이들의 처절한 일면을 보여주는데, 젊은이들이 그토록 호된 삶을 버텨내고 결국 얻는 것은 아버지라는 이름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렇듯 1, 2부는 자연스럽게 연결이 되며 1부에서 제기된 사회 문제가 확장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중년이 되면 누구나 부모와 닮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부모의 모습을 그대로 닮으며 나이 들어가는 자신을 보면서 내 안에서 진정으로 내 부모를 만나게 된다. 이 작품은 어느 지점에선가 자신의 아버지와 아버지가 된 자신을 동일시했고, 그럼으로써 아버지의 죽음을 성스럽게 묘사하지 않았다. 염하는 장면, 유골을 뿌리는 장면은 엄숙한 의식 대신 연극적 표현을 빌렸다.
인류의 역사를 보건대 아버지는 그렇게 한 세대를 짊어지고 소멸함으로써 새로운 세대를 등극케 했다. 그들을 보내야만 다음 세대가 오를 수 있는 게 아버지의 자리이기도 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골을 시원하게 뿌리지도 못하고 질질 흘리며 사라지는 남자의 모습은 ‘씻김’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모든 걸 깨끗이 씻어 버리지는 못하는 듯하다. 완연한 씻김이 아닌 돌고 도는 숙명 같은 그리고 반복되는 것을 향한 시위적 행위로도 보였다.
김남진의 작품은 역동적인 안무의 질감과는 다르게 모호한 여운을 남긴다. 여전히 많은 문제가 산재한 세상에 어떻게 명료한 결말이 있겠는가. <씻김>은 지금 이 시기를 넘고 있는 우리를 향한 위로의 의식이며, 그저 사부곡으로만 읽을 수 없는 여러 겹의 메타포로 응축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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