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2개월간의 심의와 쇼케이스, 4개월의 준비 기간을 거쳐 엄선한 9개의 작품들이 ‘2014 무용창작산실 우수작품 공연’이라는 큰 타이틀로 12월 12~31일까지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 무대에 올려졌다. 한국 무용계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다양한 창작 무용 작품의 생산이라는 측면에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선발된 작품들에 대한 기대와 호응은 꽤나 높았다. 필자는 12월 21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 김선미 무용단의 <천(千)>을 관람했다.
<천>은 김선미 안무, 이희수 원작, 이재환 연출․대본, 김재철 음악으로 이뤄졌다. 김선미는 그동안 창무회의 주축으로 진지하고 깊이 있는 공연을 통해 대중성보다는 작품성에 주안점을 둔 안무가였는데 이번 작품에서도 그러한 성향은 여실히 드러났다. 비교적 스토리텔링이 가능한 주제였지만 단순한 내용전달이 아니라 여기에 의식적 춤을 더함으로서 한번 더 생각하는 기회를 제공한 것이다. 작품은 영산재의 큰 틀 속에서 천 년 전, 그 시간에 일어났던 신화 속의 역사 혹은 역사 속의 신화로 접근하고 있다.
쿠쉬나메는 고대 페르시아의 구전 서사시로 1108년과 1111년 사이에 쓰여진 신화 역사의 일부이다. 안무자는 쿠쉬나메를 통해 전해지는 천년 전 페르시아 왕자와 신라 공주의 사랑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와, 이를 바탕으로 그 속에 결국 돌아오지 못하고 머나먼 이국의 땅에 묻혀 역사 속에서 잊혀져버린 공주를 위한 넋들임과 위로를 춤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이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사용한 것이 바로 영산재이다.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없었던 영산재는 조선시대 불교의식 행사로 불교 천도의례 중 대표적인 제사인 일명 '영산작법' 이라고도 한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50호로 지정되어 있다. 즉, 종교의식인 49재의 한 형태를 사용해 한국 창작 춤 공연으로 제작한 것으로 넋들과 위로의 춤을 그 의미에 맞게 해석한 것이다.
만신, 아버지와 공주(딸), 바라춤이 가장 핵심을 이루는데, 전통춤의 색깔로 채색된 공연에서 도입부분의 김선미가 붉은색이 선명한 의상을 입고 감각적인 영상 속에서 느린 춤사위로 분위기를 압도한 부분과 바라춤 의상을 변형한 의상을 입은 군무진들의 제의적 느낌의 군무가 인상적이었다. 또한 공주의 사랑보다는 그리워했던 아버지를 중점적으로 보여주었고, 바라춤은 복합적인 요소로 다수 사용되며 애잔함과 진한 그리움이 묻어나는 작품으로 승화되었다. 공주역의 최지연은 탄탄하고 기량이 뛰어난 춤으로 눈길을 끌었고 김선미, 최지연 이하 이재준, 최태현, 김성의, 임지애, 윤지예, 박동찬, 송원선, 박세훈, 백상하의 진솔한 움직임도 작품에 기여했다. 더불어 음악과 영상, 무대가 조화를 이뤄 전체적으로 안정된 이미지를 제공하며 신화를 오늘날의 춤으로 아름답게 표현했다. 다소 아쉬운 점이 있다면 창무회 특유의 현대적인 움직임과 영산재를 다룬 전통적 춤이 다뤄지는 과정에서 후반부로 갈수록 다소 밀도감이 떨어졌다는 점이다. 이는 아마도 내용표현이 아니라 추상적 춤에 집중하는 과정에도 나타난 현상으로 보였다.
안무자 김선미는 힘든 일이 있을수록 더 굳건해지고 심원해지는 인물이다. 이번 공연에서도 건강상의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강한 정신력으로, 감정으로 대중들과 소통하는 무대를 꿈꿨다. 영산재의 큰 틀 속에서 오랜 시간 역사 속의 신화로 접근하여 무대화 한 공연에서 고대와 현대의 조화를 나름의 춤사위로 구현했다. 얼마전 동일한 내용을 가지고 공연했던 최지연무브먼트의 <그 사람 쿠쉬 - 천년의 사랑 ‘쿠쉬나메’>가 서사극이라는 형태로 연극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총체극의 형식을 지녔다면 김선미무용단의 <천(千)>은 넋들에 대한 페이소스를 가지고 서정적이고 표현적인 춤에 집중한 무대였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한국춤문화자료원 공동대표)
사진_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