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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愚公移山) 우보만리(牛步萬里), 기나긴 춤꾼의 여정 - 〈오철주의 춤, 춤의 맥을 짚다〉

 봄 계수나무에 왜 봄 빛 가득한 때 꽃이 없는가 물으니 ‘봄꽃이 그 얼마나 오래 갈꼬, 바람서리 휘몰아쳐 잎 지는 가을에, 나 홀로 빼어나 꽃피움을 그대 아나 모르나?’ 하더라

 『고문진보(古文眞寶)』에 왕유(王維)가 쓴 ‘춘계문답이(春桂問答二)’의 선문답과 같은 한 대목이다. 우리네 춤꾼, 한국 전통춤을 익히는 이들의 그 수련 과정은 지난(至難)하다. 젊은 시절, 무언가 잘하는 듯 보이지만 그것이 잘하는 것이 아니고, 장년이 되어서야 스스로 그제야 춤을 조금 아는 것 같지만 한참 지난 후 스승으로부터 이젠 춤을 출줄 안다고 인정받으니 말이다. 그만큼 전통춤을 익히는 것은 기법을 배우는 것이 아닌 수행(修行)하며 그 진리를 얻는 구도자(求道者)처럼 우공이산(愚公移山) 우보만리(牛步萬里)를 행하는 길이다.

 이러한 선문답 같은 화두에서 모티브를 얻은 <오철주의 춤, 춤의 맥을 짚다.>(국립국악원 풍류사랑방, 2017.5.10.)는 하나의 서사구조 속에서 오철주와 그의 제자들이 우리 전통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놓는다.


 이 공연의 특징은 다른 전통춤 공연과 달리 분절되지 않고 하나의 흐름으로 이으며 크게 네 개의 이야기로 기승전결을 만든다. ‘새싹이 움트고, 입춤’을 시작으로 ‘봉오리를 맺으며, 한량무’, ‘꽃을 피우니, 승무’ 그리고 마지막으로 ‘바람에 흩어져 다시 땅에 묻히더라, 살풀이춤’으로 이어지는 스토리텔링에서 알 수 있듯 춤을 배우고 익히는 하나하나의 단계와 인생을 상치(相値)하여 보여준다.

 ‘새싹이 움트고, 입춤’에서는 춤을 익힐 때 가장 먼저 배우는 입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서두는 김소월의 시 <엄마야 누나야>의 음률에 맞추어 한 순수한 아이가 춤으로 인도되어 가는 모습을 상징적으로 그리고 있다. 이어 자연스럽게 입춤으로 이어지는데, 입춤은 한자로 서서(立) 추는 춤을 말하지만 입문(入門) 과정에서 처음 배우는 기본 춤이다. 그래서 모든 춤의 요소들이 여기 담겨있다. 기본춤이라 지루할 수 있었지만 여성 제자들의 화려하면서도 정갈한 부채입춤 군무를 통해 봄꽃 같은 향내를 불러일으켰다.


 이어진 ‘봉오리를 맺으며, 한량무’는 이제 춤을 조금 알기에 오히려 몸이 앞서, 힘의 조절을 배우는 시기에 대한 이야기로 한량무를 중심에 놓는다. 홀춤 한량무는 남성춤을 상징하는 신명성과 절제미가 함께 공유된 춤이다. 서사구조 속 한량무는 회상을 통한 풀이가 중심이지만 이 무대에서는 오철주와 남자 제자들에 의해 절도 있는 한량무가 추어진다. 오철주의 한량무에서 가장 두드러진 점은 풀고 맺는 동작에서 절제미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모든 춤이 다 그렇지만 춤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듯 과할 수 있는 한량무의 기운을 균정(均整)하여 춤꾼의 성정(性情)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이어 ‘꽃을 피우니, 승무’에서는 이제 어느 정도 몸에 춤이 익어 그 인식 과정을 그린 것으로 승무에 비추어 이야기한다. 이 무대에서는 승무를 역순으로 하여 북치는 과장을 먼저 놓고, 염불과장을 나중으로 구성하였는데, 법고 대신 윤영숙, 손수미의 진도북춤으로 흥을 이끌고 오철주의 승무로 이어졌다. 오철주 승무는 분절된 움직임 속에서 몸, 굴신과 특히 근육의 미세한 흐름까지도 하나하나 체득하여 몸으로 표출되는 유장미(流長美)에서 그 매력을 찾을 수 있다. 이 무대에서 역순으로 춘 것도 법고의 카타르시스도 중요하지만 이를 이끄는 과장의 중요성을 다시 일깨우는 풀이라 할 것이다.


 이 춤판은 ‘바람에 흩어져 다시 땅에 묻히더라, 살풀이춤’에서 지전춤 등 진도씻김굿의 춤과 함께 살풀이춤으로 마무리한다. 이매방은 춤의 수련 과정을 ‘입춤-승무-살풀이’의 순으로 말한 바 있다. 이는 승무가 춤꾼에겐 기법적인 측면에서 가장 어려운 춤이고, 살풀이가 춤의 감정 몰입에 가장 힘든 춤이라는 해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살풀이춤이 그 이면적 주제에서 살을 풀면서 이승과 저승 모두 안녕을 비는 통과의례 의미를 지니는 춤이기에 여기서도 마지막을 장식한다. 여기서 오철주의 살풀이춤은 살풀이춤이 가지는 유려미(流麗美)를 드러내며 부드러움을 유동적으로 살피고 있다.

 이렇게 이 마당은 문학평론가 노드롭 프라이(Northrop Frye)의 원형 비평적 시각에서 이야기한 봄은 희극, 여름은 로만스(낭만성), 가을은 비극, 겨울은 아이러니와 풍자로 풀이한 것처럼 춤꾼과 인간의 일생을 중첩하여 관객에게 춤을 전해준다. 그래서 이 공연은 전통춤의 기나긴 여정과 한 춤꾼의 일생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오철주는 춤꾼으로도 일가를 이루었지만 수많은 제자들을 올곧이 키운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 자리가 두드러진 독무보다는 제자들과 함께 한 것도 그의 춤에 흐르는 균정미(均整美)가 그대로 전승되어 자기 색깔에 맞게 체화되기를 바라는 바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전통춤은 결국 우직하게 한 길을 함께 가며 구전심수에 의해 전승과 소통이 이루어짐을 이 공연을 통해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사진_ 오철주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