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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명성을 되살려 본 무대 - 2017 모다페(MODAFE) 中 ‘현대무용 불후의 명작’

 한국 현대무용계의 대표적 축제인 MODAFE(국제현대무용제)가 올해로 36회를 맞이했다. 그동안 수많은 안무가와 작품들로 컨템포러리댄스의 영역을 확장시켜 온 축제의 이번 모토는 ‘헬로, 마이, 라이프’로, 지금의 순간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존재론적 질문인 동시에 가장 현실적인 안부의 인사이기도 했다. 5월 17~31일에 걸쳐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에서 펼쳐진 공연에서 해외공연 뿐만 아니라 한국의 대표적인 안무가들의 공연이 5월 21일 아르코대극장에서 있었다. 한국 현대무용이 급격히 발전하던 시기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던 세 안무자의 10~20여 년 전 창작물을 다시 재구성한 무대는 ‘현대무용 불후의 명작’ 시리즈이다. 그 구성은 최청자 툇마루무용단의 <해변의 남자>, 전미숙의 <가지마세요>, 이숙재 밀물현대무용단의 <(신)찬기파랑가>였다.


 최청자 총예술감독이 1995년 초연한 <해변의 남자>는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 속에서 현대 남성들의 이야기를 코믹하고 이색적으로 다뤘는데, ‘사계’의 연작 시리즈 중 여름을 표현하고 있다. 김형남의 재안무로, 우리가 흔히 해변이라면 연상되는 시원한 옷차림의 여성의 이미지가 아니라 남자무용수들이 여장을 하고 해변에서의 일상 탈출을 꿈꾸는 모습을 다양하게 처리했다. 유머러스한 상황과 다소 과장된 움직임은 예상치 못한 쾌감을 선사하기도 하지만 각 해프닝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만은 않다. 남성 무용수들(김형남, 류장현, 김환희, 이동하, 최우석, 장선국, 최지훈, 신원민, 박영상, 양승관, 심재호)이 록과 재즈 음악을 배경으로 속도감 넘치는 움직임을 선보이는 가운데 파격을 추구하는 안무자의 시도와 유머감각이 해변 영상과 더불어 역동적이면서도 때로는 농염하고 유연하게 펼쳐졌다. 화려한 색감의 한국적 이미지의 의상과 후반부 깔끔하게 양복을 갖춰 입은 모습도 효과적인 변화였고 경쾌한 뮤지컬을 보듯 대중적인 감각을 잘 실어냈다.


 2006년 서울무용제 대상을 수상한 전미숙 교수의 작품 <가지마세요>는 맹목성이 가지는 폭력적 언어에 집중하면서 안무자는 떠나가기를 희망하는 자를 위한 비망록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가지마세요’라는 언어적 의미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되어지는 일상에서 양육된 육체가 떠나가길 희망한다면 떠나보내고자 하는 이중적 함의를 지녔다. 감정에 호소하기보다는 이성에 충실하고자 하는 그녀의 생각은 절제된 움직임의 어법과 차가운 느낌의 블루조명, 금속성 테이블이 미장센으로 위치하며 추상적이면서도 진지했다. 초반부 남녀 듀엣은 힘없이 남성의 힘에 내맡겨진 여성과 떠나보내지 않으려는 듯 결연한 남성의 움직임이 긴장감을 고조시켰다. 9명의 무용수들(임샛별, 김영채, 노정우, 송승욱, 윤승민, 이홍, 한 대교, 고동훈, 정하늘)이 초연과 달리 타악앙상블 ‘단’이 연주하는 라이브 음악에 맞춰 격렬하게 움직이며 역동성을 강조했다. 수학과 논리를 장착했으나 신체 언어가 만들어내는 표현성은 이성적인 동시에 감성을 역습하고 있었다. 이별과 죽음, 만남부터 이별까지의 과정 중간에 있는 삶의 치열함이란 육체의 언어가 더욱 극명하게 표현 가능하기에…


 고매한 화랑을 찬미한 <(신)찬기파랑가>는 과거 이숙재 선생의 2005년 작품을 이해준이 재안무한 작품으로 신라 화랑의 신념·용기를 지녔던 기파랑을 우리 시대에 되살리고픈 염원을 담았다. 현대무용의 어휘로 풀어낸 한국적 주제는 서사무용극의 구조가 아니라 의미와 상징을 세계의 이미지 군으로 다루며 과거와 현재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특히 춤으로 한글의 맥과 옛사람의 고매한 정신을 표현한 39편의 한글과 관련된 작품을 내놓았듯 그녀의 한국적 정서에 대한 사랑은 이 작품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1장에서는 구국의 신념을 지닌 화랑들의 의지와 정신이 신라를 구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시선을 사로잡는 강한 에너지의 여성무용수의 제의적 움직임을 시작으로 이후 2, 3장을 통해 기파랑의 드높은 정신을 현대적 시점에서 재해석하기도 하고 마음의 눈으로 바라본 아름다운 세상의 이야기를 무용언어로 표현하기도 했다. 군무와 듀엣을 바탕으로 형상화된 이야기 구조는 많은 훈련량을 보여주는 군무진들의 일체된 움직임과 류석훈과 이윤경을 연상시키는 여성무용수의 서정적 듀엣에서 큰 힘을 받으며 완성되었다.

 세계무용계에 한국의 현대무용을 알리는 교류의 장으로서 그 역할을 충실히 해 온 모다페가 연륜과 자신의 선명한 예술관으로 관록이 붙은 세 안무가의 작품을 다시금 재조명한 것은 현대와 현재를 잇는 교량으로서의 그들의 노고를 치하함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 제자들이 오늘날 현대무용계에서 훌륭히 성장한 시점에 자신의 스승들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했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_ 툇마루무용단, 최영모, 밀물현대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