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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정서와 남도의 정서를 통한 잘 짜인(well-made) 소리극 - 소리극 〈권번 꽃다이〉


 소리극 <권번 꽃다이>(남산골 한옥마을 남산국악당, 2017.6.13-16)는 한 권번 출신의 예인의 일생을 되짚어 보며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소리극으로 풀어낸다. 이 극은 소리극이라 장르적 명칭을 붙이고 있는데, 극 중간 중간 나오는 남도소리와 여러 음악들이 극 형식을 원활하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데서 비롯된다.

 이야기는 무진권번 출신으로 대중에 인기 높다 어느 순간 잊힌 최소도의 장례식 공간으로 시작한다. 그는 혼령이 되어 장례식에 머물고, 문상을 오는 옛 권번 친구들을 통해 옛 추억을 되새긴다. 권번에서 소리와 춤을 배우는 기생들 그리고 또래에서 가장 앞서며 인기를 얻지만 한국전쟁으로 모든 걸 잃고 잊힌 최소도 그리고 그의 친우인 서남풍, 심난주, 박채선의 살아온 나날에 대한 이야기가 이 극의 서사구조다.



 이 소리극은 20여년 광주, 전남 지역을 중심으로 마당극을 해온 배우들로 이루어진 마당여우 프로젝트가 풀어놓는 이야기이다. 1970년대 전통문화의 계승과 사회적 의식을 담아 실천의지를 보여준 마당극은 열린 공간 속에서 탈춤, 판소리, 재담, 풍물 등 다양한 요소가 결합되어 민중과 함께 호흡하였다. 1980년대 광장으로 나가 대동(大同)을 지향하거나 ‘어두운 시대의 광야에서 울리는 진실을 외치는 외로운 목소리’(정지창, 「서사극 마당극 민족극」, 76쪽)란 말처럼 변혁의 선봉을 자임하던 마당극은 내용과 형식에서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쇠퇴하여 갔다. 이에 마당극의 주체나 내용은 해소를 통해 변화하였는데, 이 작품도 그런 범주에서 논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이 선택한 소재는 왜 권번일까? 기생하면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근대 기생은 여러 사회의식의 변혁에 참여한 주체였다. 이 작품의 시퀀스 모티브인 자선대회 장면도 1900년대 초부터 꾸준히 일어난 운동으로 기생들의 자선무대는 사회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이는 결국 이들이 단순하게 섹슈얼리티의 대상이 아닌 근대 의지를 대중에 알린 대상으로의 표현을 미시적이지만 계기적 사건으로 둔다.

 또 이러한 요소는 남도의 권번이라는 상징성을 두며 이들이 표현하고자 하는 방법을 배가시킨다. 호남은 예향임을 자부한다. 시나위권이라 하여 무가가 하나의 토대가 되며, 이매방 등으로 대표되는 호남 교방춤의 원형성, 게다가 소리는 두말할 것 없는 대상이다. 이런 지역 정서(로컬리티) 하나하나가 DNA로 흐르며 자연스럽게 이 극에서는 표출되는데, 이러한 모습도 마당극이 지향하는 전통의 재현에 의식을 둔다.


 이 극이 대중과 호흡하는 것은 집단적 신명성이나 현장성의 소통도 보이지만 더욱 두드러진 것은 보편적 정서와 대중성에 기인한다. 이는 이 작품에서 악극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중요한 주제곡 중 하나는 <화류춘몽>(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이다. 가수 이화자가 1940년 오케레코드에서 발표한 이 노래는 ‘청춘이 버스러진 낙화 신세 마음마저 기생이라 이름이 원수다’라는 가사처럼 <권번 꽃다이>의 최소도 삶 그대로를 이 노래 하나로 전체적 분위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또한 신파적 분위기도 이 작품이 대중과 호흡할 수 있는 요소이다. 악극과 신파성은 한 궤를 같이 간다 할 것인데, 이 작품은 퇴영적이거나 화류비극이 아닌 한 인간의 삶에 대한 고착으로 표현하기에 관찰자적 카타르시스가 아닌 인간 본연의 모습으로 승화되어 관객과 공유하고 있다. 이는 흥타령의 “꿈이로다 꿈이로다 너도 나도 꿈 속이요 꿈 깨이니 또 꿈이로다”라는 말처럼 호접몽의 우리네 인생사를 전해준다.

 이 작품에서 무용은 단순 모티브이지만 의미를 보인다. 권번에서 춤을 입문하는 모습이나 강함 속 부드러움이 공존하는 검무 장면은 분위기 전환의 의미지만 사실적 묘사와 표현이라는 점에서 이 극이 잘 짜인 극임을 예증한다.

 그런 의미에서 소리극 <권번 꽃다이>은 예향 남도의 원형성 표현임과 동시에 노래라는 보편적 정서의 안정적 표현 그리고 투박하지만 사람을 움직이는 마당극의 표현 방식이 조화를 이룬 극이라 할 것이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사진_ 마당여우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