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푸름프로젝트그룹의 <보다>가 지난 6월 23일과 24일 양일간 서강대학교 메리홀에서 올려졌다. 2015년 국립현대무용단의 안무가 초청프로젝트로 선보인 <17cm> 이후 오랜만의 공연, 줄곧 여성의 시선과 관계에 대해 이야기하던 그가 펼쳐낼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다. 비가 부슬거리는 주말 오후, 부지런을 떨며 외출 준비를 한 건 그가 윤푸름이었기 때문이었다. 순전히.
제목의 ‘보다’에 대해 윤푸름은 안무노트에서 다큐 사이언스 ‘뇌의 착각’에 소개된 다음의 글을 인용해 설명한다. “우리 뇌의 30%는 시각에 충당되어 신체가 보이는 것을 믿을지 다른 감각이 말해주는 것을 믿을지를 선택할 때 절대적으로 눈을 믿는다.” 그리고 윤푸름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언어들인 ‘먹어보다’나 ‘들어보다’ 등과 같이 시도의 의미가 가미된 언어표현에서조차 ‘보다’라는 보조동사가 사용되고 있음을 지적하는데, 그가 ‘보는 것’에 치중되어 있는 기억을 불러내어 꾸민 무대를 관객들 역시 ‘보기’를 통해 받아들임으로써 이 ‘보다’는 안무자가 본 것을 다시 관객들이 보는, 이중적인 감각으로 재탄생했다.
윤푸름은 이번 공연 <보다>에서 바닥의 깊이를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는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를 활용해 감각적인 공간 연출을 보여주었던 <17cm>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마스킹 테이프라는 도구를 이용해 메리홀 소극장의 평면적인 공간을 재구성한다. 무용수들이 마스킹 테이프를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공간은 새롭게 재구성되고 무용수들은 그 새로운 공간에 맞춰 몸을 움직인다.
작품은 시간에 대한 기억을 불러내는 1부와 공간을 왜곡해 착시를 일으키는 2부로 나뉘는데, 관객들이 보고 있는 앞에서 무용수들이 붙이는 마스킹 테이프는 마술처럼 공간을 확장하거나 편평한 벽과 바닥에 새로운 입체감을 부여한다. 공간이 조금씩 확장되는 동안 무용수들은 똑같은 어릴 적 기억을 환기하고 똑같은 놀이를 반복하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전과 같지 않다. 확장된 공간에서 무용수들의 움직임이 펼쳐지는 동안 관객들의 시야는 점점 넓어지며, 점점 넓은 것을 바라보는 관객들의 눈은 이미 같은 것을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무대 위를 구획하는 테이프의 선은 관객들의 시선의 폭을 제약하는 힘을 갖는다. 시선은 공간의 크기에 붙들린다.
공간이 새롭게 구성되는 2부에 이르면 무용수들의 신체는 마스킹 테이프가 빚어내는 공간의 착시에 가담해 관객들의 눈을 속이는 데 동참한다. 관객들은 시종일관 눈을 크게 뜨고 무대에 집중하지만 무용수들이 왜곡된 공간에서 천연덕스럽게 몸을 움직이는 덕에 ‘보는’ 감각은 어느새 관객들의 눈을 속이는 무용수들의 신체 움직임에 말려들고야 만다. 무용수들은 마스킹 테이프가 만든 물웅덩이에 머리카락을 담그기도 하고 구름다리를 위태롭게 건너가기도 한다. 천장에 닿지 않도록 머리를 숙이기도 하고 낮은 보폭으로 계단을 뛰어넘기도 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관객들은 벽과 바닥이 원래는 평면이었다는 사실을 잊는다. 눈으로 보고 있지만 뇌는 눈으로 보고 있는 것을 왜곡해 받아들이는 셈이다. 윤푸름이 안무노트에서 말한, 눈이라는 감각에 대한 절대적인 의존이다.
대표작인 <길 위의 여자>, <존재의 전이> 등에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담는 데 주력했던 윤푸름의 관심은 <17cm>에서부터 ‘보는 것’과 ‘보이는 것’의 문제로 옮겨간 듯하다. 나를 보아달라던 외침이 내가 본 것이 무엇인가 하는 고요한 질문으로 바뀐 인상이랄까. <17cm>에서 시지각으로 포착되지 않는 것을 포착해내려 했던 윤푸름의 노력은 <보다>에 와서 시지각을 통해 인지한 것을 착시를 통해 다시 뒤집는다. 그렇다면 그의 다음 작업에서 그는 ‘보이는’ 것을 어떻게 ‘보는’ 것으로 만들어낼까. 그리고 그가 ‘보여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보게’ 될까. 다음번 ‘보기’가 궁금해지는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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