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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구치는 생명력 - 아프리카 남수단의 도약춤


 2014년 12월 방송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아프리카 북동부의 남수단 공화국에 다녀왔다. 남수단은 故 이태석 신부님의 헌신적인 선교활동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진 나라. 딘카, 뉴어 족 등으로 이뤄진 남수단 흑인들은 수단의 아랍계 이슬람 정권에 맞서 50여 년간의 피비린내 나는 내전을 치뤘다. 그 와중에 2백여만 명이 죽고 4백여만 명이 난민 생활을 해야 했다. 독립투쟁을 이끈 반군세력은 2005년 UN과 국제사회의 중재로 수단정부와 평화협정을 맺었고, 2011년 7월 수단으로부터 독립했다. 남수단은 유엔에 193번째로 가입한 지구상에서 가장 어린 나라다. 북부유전지대에서 원유를 채굴하는 산유국이지만, 아직 1인당 국민소득이 200만원이 채 안 된다. 인구는 1천만 정도고 주요 산업은 목축과 농업이다.


 남수단의 인구는 60여 개 이상의 부족으로 분류된다. 언어와 풍습도 서로 다르다. 20세기 초 영국의 식민통치 영향으로 교육받은 이들은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지만, 교통이 안 좋은  지방으로 가면 말이 안 통할 정도다. 각 부족 별로 축제나 행사 때 추는 춤도 다양하다. 하지만 남수단의 전통춤에 대한 연구는 거의 없는 실정이다. 구글 검색을 해봐도 문헌을 찾기 힘들다. 대신 YouTube에 수많은 춤 영상이 올라와 있다. 스마트폰을 쓰는 이들이 행사나 의식의 춤을 촬영해서 올리기 때문이다. 신생국이라 유선통신 기반 시설이 수도 주바를 제외하고는 전무한 터라, 대신 무선이동통신이 발달했다. 시골 촌부들도 다 단말기를 들고 다닌다.




 보름 남짓 남수단에 머무는 동안 취재를 하면서 그곳의 춤을 서너 번 촬영할 기회가 생겼다. 성탄절을 준비하는 교회 행사, 부족 간의 씨름 경기, 북수단과의 평화를 기원하는 공연장에서 다양한 춤을 봤다. 제일 눈에 띄는 동작은 선 자리에서 두 발을 굴러 솟구치는 도약(jumping)이었다. 쿠르트 작스(Curt Sachs)가 『춤의 세계사(World History of the Dance』(1937)에서 “아프리카는 도약 춤(leaping dance)의 대륙이다”라고 한 말이 틀리지 않음을 눈으로 확인했다.




 필자는 가장 인상적인 도약 춤을 딘카 족의 전통 씨름 경기장에서 볼 수 있었다. 서로 맞붙은 마을의 여성응원자들이 줄을 맞춰 나와 노래를 한다. 그리고 두 발로 동시에 지면을 내차면서 껑충 뛰어오르며 앞으로 나아간다. 한발은 땅을 딛고 한발은 공중으로 뛰어올라 전진하는 스킵(skip)과는 완전히 달랐다. 험한 사바나에서 유목을 하며 사는 딘카 족의 강인함, 적을 위협하는 용맹함이 느껴지는 강력한 춤이었다. 응원단은 총 경기장을 돌면서 자기 마을의 출전 선수를 격려하고 관객들의 분위기를 한껏 돋웠다. 출전한 씨름 선수 또한 뒤질세라 도약 춤을 췄다. 경기를 시작하기 전에 상대의 기선을 제압하려는 듯, 몇 번씩 발을 구르며 뛰어 올랐다. 중요 부분만 가리고 벌거벗은 몸에는 소똥을 태우고 나온 흰 재를 허옇게 발랐다. 2미터는 됨직해 보이는, 상아처럼 번들거리는 몸뚱이의 선수가 공중으로 솟구치는 모습은 우주선 발사대에서 로켓이 치솟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릴 때부터 늘 우유를 마시고 자란 탓인지, 딘카 족은 남녀 가리지 않고 키가 크다. 평균 신장이 1미터 80은 돼보였다.




 북수단과의 평화로운 공존을 기원하는 공연장에도 남녀 춤꾼들이 짝 맞춰 상하체를 전후좌우로 격렬하게 흔들어대는 춤을 춘다. 여기에도 도약이 빠지지 않는다. 성탄절을 맞아 예수의 탄생을 찬양하는 교회 축하 공연에도 학생들은 자주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장신의 춤꾼들이 발바닥에 용수철을 단것처럼 탄성 있게 튀어 오르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다. 야생동물들이 뛰노는 국립공원 사파리보다 아프리카의 생명력이 더 강렬하게 살아있는 현장이었다.



글, 사진_ 손현철(KBS다큐멘터리 프로듀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