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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새로운 감각의 무용극 도전과 앞으로의 과제 - 국립무용단 〈리진〉


 국립무용단은 우리나라 최고의 무용수들이 모여 있으며 최고의 공연을 위한 인프라가 갖추어진 곳이다. 이러한 점은 국립이라는 이름이 의미하는 독보적 존재를 말함이다. 그래서 국립무용단에 거는 기대치는 굳이 기준점을 두자면 100%가 아니라 120%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2016-2017에 공연된 <리진>(국립극장 해오름, 2017.6.28.-7.1)은 국립무용단 시즌 레퍼토리 중 유일한 신작이며 몇 해 예술감독 부재 이후 취임한 김상덕 예술감독의 첫 번째 안무였다는 점에서 관심을 더욱 불러일으켰다.

 리진은 이폴리트 프랑뎅이 쓴 에 언급된 궁중 무희의 이름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프랑스 외교관이던 콜랭 드 플랑시를 만나 사랑을 나누고 파리에 살다 다시 조선에 돌아와 기생으로 전락하며 자살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면서도 있을 법한 이야기라는 매력적인 소재를 지녔기에 김탁환과 신경숙 소설의 소재가 되어 관심을 모았고, 이번에는 이 이야기를 모티브로 무용극이 만들어진 것이다.

 <리진>은 1막 고전, 2막 신세계로 나뉜다. 1막은 궁중 무희인 리진이 프랑스 공사 플랑시와 조우하면서 사랑하고 이 나라와 친우인 도화와 멀어질 것에 갈등을 느끼지만 그녀는 플랑시와 행복을 꿈꾸며 조선을 떠난다는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2막 신세계는 새로운 세계에 도착한 두 사람이 편안한 나날을 보내지만 고전세계 집단에 의해 침략을 받고 그들에 의해 리진은 죽음을 맞이하는 이야기이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이항 대립을 표면에 내세운다. 배경은 고전/신세계, 조선/서양, 전근대/근대 등이 내재되어 있고, 그 문턱에서 여러 대립이 나타난다. 그래서 서두의 흐름은 고전의 이야기지만 현대적이고 서정적인 감각을 주어 전체적 분위기를 잡아간다. 인물군도 한복을 입은 무희들의 움직임이 국악을 배경으로 고전적이지만 단발한 남성들의 군무는 강한 음악 속에서 강렬함을 드러내며 대립적 의미를 보인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이러한 양가적 토대에 몇몇 인물을 추가함으로써 무용극으로 완성도를 높이려 한다. 이전에 인식되고 표현된 총체적 인물 리진과 사회적 갈등이 아닌 도화와 원우라는 인물의 생성을 통해 대립적 양상을 보이려 한 것이다. 이러한 구도는 현대극에서의 기본적 인물 구조인 4각 갈등, 주체와 객체 그리고 반대자의 충돌을 이 작품도 적용시킨다.

 그렇지만 <리진>에서 이 두 인물의 캐릭터 극대화는 명확하지 못하였다. 도화의 경우 극 초반 반대자와 조력자의 경계에서 뚜렷한 성격 창조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고, 원우가 전통을 수호하려는 인물의 상징인지 주변인에 불과한 것인지 등 인물 설정이 모호하였다. 왜 이 두 인물이 리진과 갈등을 벌여야 하는지에 대한 의미 부여가 부족하다 보니 결말이 극적이지 못한 예상된 구도였고, 예상되더라도 무언가 여러 충돌 속에서 배태된 절정이 아니기에 감동의 폭이 그리 깊게 나타나지는 못하였다. 리진은 전근대와 근대의 상징적 구조의 충돌에서 중간자적 인물의 패배라는 의미 부여가 주어질텐데 이러한 요소가 두 창조적 인물의 성격 창조를 통해 제대로 표출되지 못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 작품은 ‘조선/프랑스’나 ‘전근대/근대’라는 직접적 묘사보다는 ‘고전/신세계’라는 이항대립으로 풀고 있다. 그래서 고정화된 춤이나 의상 등의 묘사가 아닌 전통의 전형성과 현대적 감각으로 표현하려 한다. 1부 남녀 무용수들의 교차적 춤과 2부 꿈 속의 춤, 군무를 통한 긴장감의 고조 등은 이러한 요소를 조화롭게 풀어내려한 부분이다. 또한 이 작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LED 화면이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 기다란 LED화면이 처음부터 끝까지 상황 설명이나 상징적 의미를 함께 전달하고 있다. 그렇지만 이 시도가 새로운 감각과 시대에 맞는 무용극을 포현하려는 의도였는지 모르겠지만 전체적인 모습을 담기에는 제한되었고, 뚜렷하게 남는 요소는 드물었다.


 첫날(6.28) 공연에서 리진과 도화를 맡은 이의영과 장윤나는 주어진 역할에서 성격을 잘 풀어내었다. 리진에 대한 무채색의 해석과 2부에서 도화의 팜므파탈 모습은 관객에게 잔상을 주었다.

 국립무용단은 한국 문화전통에 기반을 두면서 전형성을 창조하는 단체이다. 시대마다 다양한 작품을 통해 한국문화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표출하려 노력 하였고, 이를 대중에게 전달하려 하였다. 그래서 작품마다 그 시대성을 논할 수 있고, 관객도 작품을 통해 전통의 창조적 현대화를 이해하려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작품은 그 높은 기대치인 120%를 충족하지는 못하였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한 작품으로 국립무용단의 모든 걸 평가하는 것은 무리다. 예술감독 부재 시공간의 몇몇 작품도 호불호가 갈리었고 여러 비판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상식적인 화두이고 또 다른 의미에서 국립무용단의 무용극의 창조적 행위가 기대되고, 앞으로 행보에 관심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사진_ 국립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