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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이라는 감옥, 혹은 폭력 - 유빈댄스 〈시선의 온도〉

 안무가 이나현이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지원사업 선정작으로 지난 8월 26일(토)과 27일(일) 양일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신작 <시선의 온도>를 선보였다. 총 3장으로 구성된 이번 작품은 지난 4월 있었던 SAC아트홀 개관 기념공연 <언리미티드 우먼-충돌의 에너지>에서 3장 ‘결혼’ 파트가 선공개 되었고 4개월 만에 60분짜리 전막으로 다시 관객들과 만났다.

 제목의 ‘시선’은 타인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내가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에서 타인의 시선이란 상식이나 규범 이상의 커다란 힘을 발휘하는 것인데, 그 시선을 기준점으로 삼고 내 삶을 맞출 정도로 그 힘은 매우 강력하다. 그 시선의 ‘온도’가 어떠냐에 따라 삶 자체가 천당과 지옥을 오가기도 한다.




 1장 ‘암흑 에너지’는 소제목 그대로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나쁜 에너지에 대한 이야기다. 타인의 시선은 때로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나 가고자 하는 방향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한다. 그 시선은 내가 가려는 길에 장벽으로 놓여 전진을 방해하기도 하고 내 뒤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며 불안을 심어 발걸음을 주춤거리게 만든다. 나는 그 시선들에서 도망치려 하지만 어디로도 도망칠 수 없다. 타인의 시선은 도처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를 가든 그 시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뱃속의 태아이든 땅 속에 묻힌 주검이든 마찬가지다.

 타인의 시선을 의미하는 군무진은 솔로 무용수인 ‘나’의 가는 방향을 가로막거나 뒤를 따라다니고 또는 나를 들어 옮기며 내가 자유의지로 행동하는 것을 방해한다. 무용수들은 가면을 쓴 얼굴 없는 마네킹 뒤에 숨어 벌거벗겨진 몸뚱아리를 차갑게 관조하는데, 이나현은 시선들에 의해 쫓기는 ‘나’를 여성으로 설정하고 시선의 대상을 태아를 품은 여체로까지 확장해 작품에 여성주의 시각을 부여한다. 이로써 타자에 의해 늘 평가대상이 되고 그로 인해 다시 타자화․객체화되는 여성의 현실을 환기시킨다.


 시선이라는 억압 속에 놓인 여성이라는 존재는 3장 ‘결혼’에 이르러 더욱 분명해진다. 흰색과 검은색 정장 차림으로 팔짱을 끼고 등장한 이나현과 강요섭의 듀엣은 결혼식과 결혼의 축소판이다. 둘의 결혼생활은 평탄하지 않다. 이나현은 강요섭이 휘두르는 대로 휘둘리며 그의 보폭에 맞추느라 휘청거린다. 강요섭은 파트너인 그녀를 배려하지 않고 제 보폭에 맞추어 제 속도대로 움직인다. 관계 내의 강자는 관계의 법칙을 결정할 수 있으며 약자는 그 결정에 따라야 한다. 결혼은 그 대표적인 불평등한 관계다.

 붉은 테이프가 둘러진 사각 공간 안에서 강요섭에게 이리저리 끌려다니던 이나현은 작품 말미에 이르러 붉은 테이프를 뜯어내고 자신의 공간을 다시 테이핑한다. 불평등한 결혼생활을 파기하고 자신만의 공간을 새롭게 만든 것이다. 결혼생활을 하는 동안 사방이 닫혀 있던 사각 공간은 결혼에서 벗어나자 한 면이 뚫린 열린 공간이 된다. 그리고 이나현은 자신의 공간을 갖게 된 다음에야 강요섭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자신의 시선을 되찾은 것이다.

 각각 단편으로서의 완성도를 갖는 1장과 3장에 비해 타인의 시선에 저항하고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2장 ‘나는 아닙니다’는 조금 길고 지루했는데, 장마다 독립된 메시지를 발신하는 옴니버스식 구성에서 2장의 메시지는 나머지 두 장에 비해 덜 다듬어진 듯한 인상을 주었고 무용수들의 움직임 역시 다소 산만했다. 1장과 3장을 관통하는 주제인 시선의 억압에 대해 좀 더 힘 있게 밀어붙였더라면 작품의 밀도가 더 높아지지 않았을까. 주제와 움직임의 어울림에 비해 작품의 허리 부분에서 힘이 빠진 데에는 다소 아쉬움이 남았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_ 유빈댄스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