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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으로 읽는 인류의 역사 -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위대한 조련사〉


 2017년 SPAF의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의 <위대한 조련사>가 9월 28~30일에 걸쳐 기립박수를 받으며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리스 출신 연출가 디미트리스 파파이오아누는 55세라는 중견의 나이에도 젊은이의 감각과 나이에 걸맞은 심오함으로 관객들의 의식 저 너머를 관통해 섬광 같은 자극을 주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그가 아시아에서 첫선을 보인 <위대한 조련사>는 은유와 상징, 추상과 구상이 조화를 이룬 일종의 그림이며 시(詩)였고 한편의 역사서이기도 했다.

 공연연출을 하기 전에 그림을 그렸던 전적을 보여주듯 시각적인 완성도를 갖춘 그의 공연은 검은 판자가 조각조각 짜맞춰진 무대에 누워있던 남자가 일어나 신발끈을 매고 관객을 관찰하듯 응시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알몸으로 누워있는 남성무용수에게 다른 남성무용수는 하얀 천을 덮어주고, 또 다른 남성무용수는 판자가 쓰러지며 생기는 바람을 이용해 천을 걷어내는 장면은 거듭되는 반복과 순환의 삶과 닮아있다. 한 무용수는 신발을 신고 앞으로 발을 내딛지만 신발 바닥에 깊이 박힌 뿌리 때문에 진전이 불가능한데 이 역시 역사에 근간을 둔 인간의 모습을 은유하는 듯 했고, 결국 물구나무서기를 통해 그는 다른 세계로의 이행을 가능케 했다.



 이밖에도 인상적인 장면들은 우주 탐사선이 달에 착륙한 듯 우주복을 입고  유영하는 움직임, 분할된 신체와 의족을 착용한 듯한 남성에 대한 인체 탐구, 한편에서는 옷을 입고 한편에서는 옷을 벗는 행위의 반복을 통한 인류의 반복되는 삶의 표현, 책을 읽으며 지식을 추구하는 인간의 모습, 그림자를 통해 전쟁을 표현하는 나무 칼싸움, 붕대 같은 석고 갑옷을 입고 떼어내는 부분, 곳곳의 판자를 들어 흙을 퍼내거나 물체를 꺼내고 갖가지 인체부위, 지구본의 등장, 그네 타듯 공중을 날아다니고 인간의 몸에서 내장기관을 꺼내는 그로테스크한 행위, 무대 위 물이 출렁이는 장소에서 태초의 아담처럼 몸을 씻기도 하고 마치 날아가는 화살처럼 씨를 뿌려 곡식의 성장과 재배를 보여주는 부분, 남녀의 뒤섞임, 미이라가 신발을 신은 것처럼 보이는 착시현상과 뼛가루가 무너져 내리는 허망함, 해골을 앞에 놓여있던 책 위에 올려놓고 다른 남성은 얇은 종이를 입으로 불어 계속해서 공중으로 날리는 행위의 반복 등이었다.

 이 모든 것들을 나열한 이유는 그 하나하나에 의미심장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해골은 인간의 소멸을 나타내지만 인간의 역사를 기록한 책은 영원하며 파피루스 같은 얇은 종이를 공중에 계속 날리는 행위는 연속되어질 역사를 암시했다. 특히 그는 이 전반을 통해 삶을 ‘끊임없는 발굴의 여정’, ‘숨겨진 보물 탐사’, ‘파헤침을 통한 인간의 발굴’로 파악했고, 그 속에 현세 속 성스러움을 조명하고자 하는 목적을 담았다. 10명의 출연자들은 무용수와 연기자의 역할을 겸하며 예술적 표현과 탄탄한 기량으로 인간 문화의 발상지를 형상화했다.


 경사무대를 이용한 입체적 공간, 요한 스트라우스의 왈츠와 미니멀한 기계음의 조화를 통한 청각적 자극, 칸칸이 맞물려 이뤄낸 무채색의 색감, 장면을 효과적으로 암시하는 미장센은 그의 뛰어난 예술적 감각을 인정하기에 충분했다. 특히나 무채색 공간에서 빛나는 인간의 나신(裸身)은 외설적이지 않고 인간 본연의 모습과 인류의 시작을 효과적으로 표현했으며 전체적으로는 여성의 몸통과 남성의 다리가 분할되어 뒤섞인 신체 이미지는 피카소 그림이나 신화속의 인물, 명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결국 화려한 디지털 영상으로 가득 찬 무용공연이 아니라 담백한 아날로그적 터치로 인류의 감성을 담아낸 그의 전략은 성공적이었다. 더불어 스토리텔링이 아니라 삶과 죽음·밤과 낮·무거움과 가벼움이라는 대비되는 요소를 꼴라쥬 식으로 풀어내면서 어두운 공간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탐사, 발굴, 재건하는 인간의 모습은 다양한 해석과 찡한 감동으로 관객을 매혹시켰다.


글_ 장지원(무용평론가)
사진_ SPAF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