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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누구를, 무엇을 위한 금기인가 -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을 다룬 〈Don’t do〉와 〈빨간 구두〉

 지난 2015년 창설되어 이제 4회째를 맞이한 경기공연예술 페스타가 올해는 경기문화재단과 안산문화재단의 협업으로 안산문화예술의전당에서 열렸다. 이 행사는 경기지역 문화예술회관과 상주예술단체 간 파트너십을 통해 공연의 유통과 보급을 활성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출발한 아트마켓형 축제로, 의정부예술의전당에서 첫 번째 행사를 치른 이후 2016년 안양아트센터, 2017년 구리아트홀 그리고 올해는 안산문화예술의전당으로 장소를 옮겨 진행되었다.

 공연과 아트마켓, 전시로 구성된 축제의 핵심은 베스트 컬렉션 시리즈로, 축제 원년에 설문을 통해 상주예술단체가 가장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그 요구를 반영했다. 작품을 만들고 나서 다양한 공연장에서 공연을 올릴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길 바라는 상주단체들을 위해 우수 작품들을 레퍼토리화해 유통을 촉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평론가, 연출가, 공연기획자 등으로 구성된 선정위원회가 지난해 공연된 작품들 중에 몇 편을 엄선해 선정한다. 공연은 무용과 연극, 인형극과 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다. 무용은 그동안 안은미컴퍼니의 <심포카 바리>,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의 <예술을 위한 조화>, <얼토당토>, 서울발레시어터의 <한여름밤의 꿈> 등이 공연되었고 올해도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서울발레시어터가 참여했다. 이들은 각각 안산과 과천에 근거를 두고 수년간 견실한 공연활동을 해온 단체들이다.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는 김보람이 지난해 11월 PDPC 안무가 안영준과 공동안무로 선보인 신작 를, 서울발레시어터는 현대무용가 차진엽이 안무를 맡고 TIMF앙상블을 이끄는 작곡가 최우정이 음악감독으로 제작에 참여한 <빨간 구두>를 선보였다. 지난해 앰비규어스댄스컴퍼니와 협연했던 군포프라임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올해는 파트너를 바꾸어 서울발레시어터의 작품에 함께했다.

 움직임을 구성하는 방식이나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향은 달랐지만 두 작품을 관통하는 공통된 주제는 바로 금지된 것에 대한 도전이다. 는 제목 그대로 사회가 하지 말라고 정해놓은 것들, 우리를 구속하거나 제약하는 그 보이지 않는 힘과의 싸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빨간 구두>는 안데르센 원작의 주인공에게 형벌로 주어진 춤의 의미를 되물으며 욕망하는 개인에게 징벌을 가하는 사회를 돌아보게 한다.



 의 전반부에서 무용수들은 바닥을 이리저리 굴러다니지만 그들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끝까지 전진하지 못하고 장애물에 걸려 되돌아와야 한다. 인간이 이족 보행을 하는 것은 사회적 약속이므로 애초에 바닥에 길게 누운 채 몸을 굴려 이동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은 움직임이다. 무대 위를 굴러다니는 무용수들은 끝내 어디로도 가지 못한다.

 작품 전반에 사용되는 주요 소품이 안전콘이라는 점 역시 매우 의미심장하다. 우리의 일상에서 안전콘은 흔히 보행자의 안전을 위해 위험구역과 격리시켜야 할 때 사용된다. 그러나 무대 위에서 안전콘을 뒤집어쓴 채 움직이는 무용수들은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고 주춤거린다. 무대의 안전콘은 더 이상 인간의 안전을 지켜주는 표지가 아니다. 무용수들은 안전콘을 벗어 던진 뒤에야 자신이 원하는 대로 움직일 수 있다. 몸을 제약하는 안전콘이 사라지고 나면 자유롭게 춤출 수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후반의 싸움과도 같은 2인무는 움직임을 제약하는 것이 안전콘으로 상징되는 눈에 보이는 표상이 아니라 몸에 내재된 보이지 않는 힘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김보람과 안영준은 무용가로 걸어온 길도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방식이나 작품 스타일에 있어서도 전혀 다른 개성을 보여주는 안무가들이지만 이렇듯 각자 서로 다른 방식으로 작업해오던 안무가들이 만났음에도 김보람의 위트와 안영준의 꾸미지 않는 움직임은 모나지 않게 어우러지며 조화를 이뤄냈다.

 백 년 전 현대무용은 인간의 몸을 관습으로부터 해방시킨다는 취지로 탄생했지만 ‘춤’이 아닌 ‘무용’의 관점에서 한국의 무용은 그 어떤 것보다 자유로워야 할 몸을 구속하는 방식으로 전수되어 왔다. 몸의 구속은 필연적으로 사고의 구속으로 이어지는데, 이에 따라 무용가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예술세계에서 가장 자유롭지 않은 도구로 작업하는 가장 자유롭지 않은 이들이 되었다. 는 개성 강한 두 안무가가 금지를 통해 개인들을 몰개성화하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인 한편 무용계에서 억압하고 있는 무용인들의 ‘몸’에 대한 알레고리로도 읽힌다.



 춤추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빨간 구두>는 춤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공연이 시작되면 무대 뒤쪽의 거대한 구조물에서는 컨베이어 벨트에 실린 빨간 구두가 줄을 지어 올라가고 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춤을 춘 이들이 마지막으로 향하는 곳, 그곳은 처형대다. 빨간 구두는 금기가 된 욕망을 상징하며 금기를 욕망한 자에게 기다리는 것은 죽음이다. 작품은 빨간 구두 이미지를 구두라는 소품 외에도 무용수들의 붉은 장갑과 조명 등을 효과적으로 사용하며 발레의 정형화된 동작에서 벗어난 다양한 움직임을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지난해 두 차례에 걸친 쇼케이스를 통해 관객들의 의견을 수용해 장편 안무를 완성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이 방식은 대중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열린 제작 방식으로도, 창작자가 스스로 작품을 완결하지 않고 대중의 의견에 따라가는 것으로도 볼 수 있는데, 주인공이 광장에서 빨간 구두를 발견하고 자신의 욕망에 눈을 뜨는 전반부나 금지된 욕망을 상징하는 빨간 드레스 여인과 화해하는 후반부의 인상적인 장면들에 비해 사형집행인과 목사의 솔로, 욕망을 거리낌없이 드러내는 여성 또는 적극적인 유혹자 역할로 기능적으로 소비되는 여성무용수들의 앙상블은 병렬적으로 나열되어 극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했다. 상반기로 예정된 대한민국발레축제 무대에서는 매끄럽지 못했던 부분들을 어떻게 해결할지 안무가와 무용수들에게 숙제를 안겼다.

 1995년 서울발레시어터의 창단은 그 자체로 클래식발레에만 익숙해 있던 발레관객들에게 춤에 대해 던지는 새로운 질문이었다. 동화 <빨간 구두>는 금지된 욕망에 대한 질문을 다루고 있지만 무대 위의 춤으로 옮겨진 <빨간 구두>는 창단 20년이 지난 뒤 서울발레시어터가 스스로에게 다시 던지는 질문으로도 읽을 수 있다. 찢어진 청바지를 입고 오토바이를 탄 무용수들을 발레무대에 올리며 금기에 도전했던 서울발레시어터의 춤은 현대무용가와 만난 <빨간 구두>를 통해 또 한 번 새로워질 수 있을까. 다음 한 걸음을 지켜볼 일이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_ (재)안산문화재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