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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탈춤을 통한 셰익스피어 비극의 이미지 표현 - 〈오셀로와 이아고〉



 탈춤 혹은 가면극(假面劇)은 탈을 쓰고 추는 춤, 가면을 쓰고 연행(演行)하는 극으로 다분히 한국적 예술 장르이다. 이를 흔히 연희(演戲)라는 큰 범주에 포함시키는데 대사와 재담이 있고, 이야기 구조를 지닌 몸의 표현으로 조선 후기의 여러 담론과 원형적 요소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민중의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한국적 내음이 짙은 이 예술 형태가 셰익스피어와 만남을 가졌다. <오셀로와 이아고>(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2018.1.12.-14)는 셰익스피어의 비극 <오셀로>의 서사구조를 해체하고 무대 공연예술로 재창조한 탈춤이다. 이 작품은 탈춤과 셰익스피어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신선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두 요소가 불협화음을 일으키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공존하는 것이 기대 지평일 것이다.



 이 작품에 대해 오셀로 역을 맡은 이주원은 ‘셰익스피어의 비극이 가지고 있는 무게를 탈춤의 거뜬함으로 다이어트 시키는 과정’이라고 설명하였다. 우선 다이어트라는 표면적 표현에만 초점을 맞추어 본다면 인물 구성이나 이야기 구성의 간소화를 들 수 있다. 등장인물은 오셀로, 이아고, 데스데모나 3명의 인물로 제한하였고 이야기도 이 세 인물의 갈등에 집중하여 이 이야기를 모르는 관객에게도 쉽게 다가서는 장점을 가진다.

 첫 장면은 오셀로가 데스데모나를 살해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결론을 먼저 이야기하는 두괄식 구성을 통해 왜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되었는지 하나하나 밝히며 극을 전개해 나간다. 오셀로의 부하 이아고는 오셀로가 자신을 보임할 것이란 예상을 저버리자 그를 모함에 빠뜨려 복수하고자 한다. 그런 과정에서 오셀로는 데스데모나와 사랑에 빠지지만 이아고는 오셀로를 나락으로 떨어뜨리기 위해 이 둘의 사랑을 파괴시키려 한다. 그 방법은 세치의 혀로 미움, 의심, 질투를 만들어내는 것이고, 오셀로도 이러한 허상을 그대로 믿고 데스데모나를 죽이며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이 작품은 최소한의 서사구조이지만 작품의 본질적 주제의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본심을 외면한 채 잘못된 인식만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기식대로 판단하는 인간의 우매함은 오셀로를 통해 표현하고, 간교한 인간의 본능적 충동은 이아고 그리고 순백의 아름다움을 드러내지만 힘에 의해 굴복당하는 전형은 데스데모나를 통해 잘 묘사되었다. 이는 세 인물에만 집중한 결과이며 표현에서도 움직임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부분은 이아고의 내레이션으로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여기서 대사는 이아고만으로 이루어진다. 그는 서술자이면서 세치 혀의 간교함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으로 언술을 이어간다. 그러면서 오셀로는 시종일관 침묵을 지키지만 이아고에 현혹된 이후 탈을 깨고 분노에 찬 인간이 되면서 목소리를 내고 그의 세치의 혀로 데스데모나를 죽음으로 이끈다. 오셀로가 끝까지 목소리를 내지 않는 것이 어떠하였을까 찰나의 생각이 들지만 외마디에서 언술로 이어지는 오셀로의 전환이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오셀로와 이아고>의 표현 기저는 탈춤이다. 탈춤의 표현 방식은 상징적이면서도 사회의식의 외면적 표출에 바탕을 둔다.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모습이 그대로 스며든다. 특히 무채색일 수 있는 데스데모나 역을 맡은 박인선이 주목된다. 오셀로와 이아고는 강한 역할이기에 그에 충분한 요소가 드러나지만 데스데모나는 2인무에서 약간의 지루함에서 벗어나 후반부에서 그만의 몸짓을 보여준다. 무게감이 있으면서도 유려한 손짓과 발짓에서 화려하지는 않지만 생동감을 표현하였고, 흰색을 통해 투영된 담백한 이미지는 절제된 움직임에서 표출되었다.

 탈춤에서는 탈이 모든 걸 말하는데 세 명의 탈은 인물의 개성 그대로이다. 오셀로는 인간의 이중성이 각도의 변화와 몸짓에 따라 다르게 감정을 이입시켰고, 이아고와 데스데모나는 인물 그대로를 직시하지만 그렇기에 몸짓에 따라 인물을 반영하였다.



 무대 구성은 흰색 소금이 공감각적 이미지를 주는데 효과적이었다. 걸음걸음에서 나오는 약간은 거친 소리와 광기나 혼돈에 따라 드러난 바닥의 빨간색이 심리적 변화를 주는데 도움을 주었다. 또한 몸짓의 상징적 표현을 통한 빈 공간은 변화무쌍한 음악 표현으로 보(補)하였고, 한국적 음률, 구음과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감정 그대로의 중첩이었다. 

 이 작품의 중심인 허창열, 이주원은 천하제일탈공작소라는 집단을 통해 전통을 보존하며 탈춤의 동시대적 의미를 연구하여 그동안 마당이나 무대에서 원형의 전형성을 밀도 있게 그려낸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이번 무대에서는 그들의 끼와 신명은 많이 자제하고 그 기를 눌렀다. 작품이 비극이기에 중간 중간 그들이 미소 짓게 만드는 현대적 동작은 잠시 삽입되는 정도에 그치고 흥, 골계미 혹은 탈춤이 가지는 사회적 비판의식은 배제되었다. 아무래도 셰익스피어가 표현하고자 한 본질적 의미를 탈춤으로 수용하여 표출하는데 중점을 두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오셀로>는 수없이 많은 변용을 가지고 왔다. 한국에서도 많은 연극을 통해 구현되었고, 판소리까지 창작되었다. 수세기에 걸쳐 원전으로 새롭게 재창작된다는 것은 그만큼 고전의 의미와 현대적으로도 항상 새롭게 창작할 수 있는 본질적이면서도 열린 공간이 있음에 기인한다.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탈춤으로 표현하여 이미지적인 측면에서 새로운 의미를 던져준다. 또한 새로운 주제의식을 전달해주기 보다는 표현을 통한 기호적 전달로 인해 이 작품은 타자, 셰익스피어 연극에 익숙한 인물에게 오히려 새로운 지평을 열 작품일 것이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사진_ 천하제일탈공작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