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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적이면서도 원초적 보편성의 울림 - 최상철무용단의 〈혼돈〉



 한국적이란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국의 특성을 보여주는 혹은 한국의 모습을 걸맞게 드러내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이는 여러 형태로 투영될 수 있다. 다른 문화를 수용하여 한국의 현실에 맞게 적용하는 것도 있고, 한국 문화 본연의 표상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우도 해당된다.

 그럼 무용에서 한국적이란 말은 무엇일까? 이도 앞서 이야기한 것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에서 춘앵무를 선보인 것도 가장 한국적인 이미지를 드러내는 한 방법이고, 프랑스 안무가가 한국문화를 수용하여 이를 펼쳐놓은 국립무용단의 <시간의 나이>도 한국적이라 논의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의존명사인 한자어 ‘적(的)’이다. 한국적이란 것은 한국의 본질이나 알맹이의 드러냄보다는 이미지를 차용하는 협의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의도하였건 의도하지 않건 간에 그 이미지는 표상과 의미가 결합된 기호로 상징적인 한국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논의를 차치하고 최상철 현대무용단의 <혼돈(Chaos)>(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17.12.14-15)는 다분히 한국적인 작품이다. 이 작품은 선지식이 없는, 즉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라는 삼분법의 구분이 없는 관객에게 어디에 기반을 두는지 알기 힘들다. 이런 구분이 수용자에게 큰 의미가 없을 수 있고, 흔히 한국창작무용과 전통의 현대적 수용에서 그 경계를 구획하는 것이 의미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혹은 타자가 보아도 한국의 표현 방식과 의식을 자연스럽게 전달해주고 있다.

 그런 표상은 오브제를 통해 두드러지게 드러난다. 징소리로 시작하여 부포상모나 상투머리를 한 무용수 등에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고 한국 전통 그대로다. 게다가 앉은 자세의 연풍돌기와 같은 춤사위를 수용한 것은 전통성을 전면에 풀어놓으려는 해석이다. 그렇지만 이 작품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카오스, 텅 빈 공간에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과정이다. 혼돈이기에 새로운 것이 창조될 수 있고, 이것이 예측 불가능하지만 이룬 것이 없기에 파괴될 것도 없는 것이다. 이는 신화적 의미의 원초성으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러한 행위는 무용수의 움직임에서 잘 드러난다.

 그래서 첫 장면은 기구를 타고 바짝 엎드려 한 방향으로 움직이며 고요하지만 그 행로가 첫 발자욱이 되어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한 처음으로 귀착된다. 이는 부포상모가 원초적 탄생을 의미하는 꽃으로 상징되어 보편적 창조 이미지로 전이되고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이행과정을 그려낸다. 이와 함께 창조에서 가장 두드러진 색감인 빨간색을 표징한 절대성은 역동적 생산성의 군무와 대비되어 또 다른 미지의 세계를 표현한다.


 후반부에서 <혼돈>은 이러한 경계를 넘어 현대사회에 남아있는 원초적 본능의 DNA로 치환되어 진행한다. 제 자리 걸음으로 규칙에 의한 몸짓은 본능적이지만 관계에 의해 일정 범위에서 움직이는 현대인의 전형성이고, 스케이트 타는 듯 한 동작은 인간이 여러 해 만든 질서 안에서 경쟁을 펼치는 사회적 단면을 묘사한다. 이들은 얼굴은 가렸지만 몸을 드러낸 익명성을 통해 현실을 피하려하지만 어지러운 조명 불빛을 통해 그 혼란은 더욱 가중된다.

 그러면서 주문 같은 반복적인 음악은 이 작품의 의도하는 인간 본연의 현대적 원초성과 제의성을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타악과 주술적 외침은 무용수들의 열정적인 동작과 어우러지며 엑스타시를 이끄는데 최근 일련의 작업에서 나름의 색깔을 보인 김재덕의 음악에 힘입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은 한국적이란 말 속엔 문화원형의 전통성도 있지만 동시대 일상의 현재성을 드러난 한국인의 DNA의 합집합으로 이야기될 수 있다. 이는 굳이 한국적이다 규정짓지 않더라도 드러나는 원형질이고, ‘한국→/이상적 사회/←현대’라는 패러다임 속에서 논의될 수 있는 작품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상철 안무의 <혼돈>은 한국의 수직적 질서와 수평적 보편성에서 합을 이루어 전형의 원형성을 이룬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사진_ 최상철 현대무용단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