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KO가 주목하는 젊은 예술가 시리즈’의 전효인과 그의 작품 <B.C.(Before Christ)>은 주목받을 만 했다. ‘21세기의 원시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세운 이 작품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고민해 보았을 삶의 방식에 관한 문제를 독특한 리듬과 익살로 재미있게 구성했다. ‘익숙한 것과 낯선 것의 만남’이라는 안무가의 소박한 의도는 뜻밖에도 제법 중량감 있는 메시지를 생성해 냈다. 논리적으로는 모색할 수 없는 현대인의 출구를 원시인을 등장시킴으로써 유쾌하게 고민해 볼 수 있었다. 과거의 히피들처럼 저항성이 느껴지는 거친 탈출은 아니지만, 이들의 일탈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이들이 구상한 21세기 원시인의 형상은 야만스럽기보다는 동화적이다. 동화나 만화의 주인공들처럼 동심의 세계와 통했다. 도시에 등장한 ‘부시맨’이 연상되기도 했다.
첫 번째 이야기
무대는 텅 비어있고, 천정에는 크기가 다른 직육면체들이 붙어있다. 두 명의 남자 무용수가 등장하여 강렬하면서도 단순하고 희극적인, 마치 놀이 동작과 같은 춤을 보여준다. 무대 한쪽에서 빛이 새 들어온다, 그곳에서 긴 파이프 악기가 등장하는데 악기는 소리를 내는 것뿐 아니라 무대 소도구로서 다양한 기능을 하게 된다. 호랑이의 가죽을 연상시키는 호랑이 머리가 달린 천으로 여러 가지 표현을 한다. 동물과 소통하는 현대인의 고독이라든가 반인반수의 모습 등을 떠올릴 수 있다. 한 사람이 벽에 붙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바나나를 먹는다. 현대인의 모습과 원시인의 태도는 낯설게 만나는 것 같지만 인간 본성에 가까이 가는 자연스러운 결합이다.
두 번째 이야기
연출되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연출된 텅 빈 무대는 빛과 소리가 큰 몫을 한다. 두 번째 이야기에는 한 명의 여자와 세 남자가 등장하는데 의상이 독특하다. 현대와 원시를 융합한 독특한 민속풍을 창출해 냈다. 춤과 노래도 마찬가지다. 원시 부족의 춤과 노래를 응용하여 현대적 노래와 잘 어우러지게 조합했다. 선이 굵으면서도 섬세한 동작 안무는 관객의 몰입도를 높였다. 원시인들 특유의 동작을 현대적으로 변형시켜 현대인의 우울한 자화상을 익살스럽게 표현했다. 문명과 야만의 상반성이 대치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공존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어느새 네 사람은 전면의 벽에 벽화처럼 붙어있다. 무대 중앙엔 손바닥 크기의 작은 비행체가 빛을 발하며 둥둥 떠다닌다. 파이프 악기는 어느새 총기가 되어 위협하고 지구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를 몇 편의 슬라이드에 담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밝은 색채로 표현하는 현대인의 비애, 고통을 위트로 표현한 연출적 기술은 그것을 읽어낼 수 있는 사람들에겐 아픔을 배가시킬 수 있는 요소다. 지루할 틈 없이 이어가는 장면 장면에 빠져들다 보니 이 공연의 문제점을 발견할 틈이 없을 정도였다. 이들의 원시인 놀이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현대인의 피폐한 삶의 대안적 모색으로서 인간들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상해 왔다. 도시와 기계와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시스템을 떠나고 싶어 하며 녹색혁명을 꿈꿔왔다. 진화 대신 퇴화, 진보 대신 퇴보를 즐기는 이들을 녹색의 대열로 끌고 가는 것은 작품의 매력을 감소시키는 짓일까? ‘Goblin Party’멤버들은 도깨비처럼 “비상한 재주로 사람들을 홀렸다.”
글_ 서지영(공연평론가)
사진_ 전효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