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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2018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 우리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인가 - 전미숙무용단 〈톡 투 이고르(Talk to Igor) - 결혼, 그에게 말하다〉

인간이 거쳐야 할 최종 통과의례로서의 결혼

 클래식발레에서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가장 중요한 동력은 결혼에서 나온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조의 호수>나 <지젤>, <라 실피드> 같은 작품은 결혼에 대한 약속과 배신이 주인공들을 어떤 비극으로 몰아넣는지 보여주는 작품들이며, <돈키호테>나 <고집쟁이 딸>은 결혼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을 결혼식으로 마무리한다. 클래식발레에서 가장 완성된 형식미를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잠자는 숲속의 미녀>는 작품 전체가 거대한 결혼식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혼이라는 모티브 없이는 클래식발레라는 장르가 불가능할 정도다. 이때의 결혼은 성장을, 사랑을, 인생 전체를 완성시키는 최종 통과의례 같은 것이다.

 1923년 니진스카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사용해 안무하고 파리에서 발레뤼스에 의해 초연된 <결혼>은 이 같은 결혼의 상을 뒤집는다. 스트라빈스키는 <결혼>을 작곡하며 결혼식의 극화나 결혼식 장면의 무대화가 아닌 러시아 시골 결혼식과 관련된 민속자료들에서 추출한 함의를 음악에 담아내고자 했다. 그에 따라 작품에는 당대 러시아의 결혼관, 결혼이 개인 간에 이루어지는 계약이 아니라 집안 대 집안 간의 사업적인 거래라는 점, 따라서 여성은 자손 생산의 능력은 물론 일꾼으로서의 능력으로 가치를 인정받고 어린 나이에 신부로 선택되는 사회구조가 반영되어 있다. 니진스카의 안무에는 결혼에 임하는 신부의 슬픔과 복종이 다양한 제스처로 녹아 있으며, 결혼은 공동체의 의무로 제시된다. 폭력에 가까운 공동체의 냉혹한 질서는 결혼의식에 참여하는 개인들을 지워버린다.


결혼 안에서, 결혼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독립적인가

 안무가 전미숙은 <톡 투 이고르(Talk to Igor)>에서 스트라빈스키가 음악을 작곡했을 당시 노동과 생산의 의미가 강했던 결혼이 독립된 개인 간의 선택적 결합으로 변화한 현대사회에서 어떤 의미인지 다시 묻는다.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을 사용하되, <톡 투 이고르>라는 제목으로 스트라빈스키에게 결혼의 의미를 질문하는 형식을 꾀했다.




 <톡 투 이고르>는 2012년 국립현대무용단의 국내안무가 초청공연으로 초연되었을 때 현대무용가 안은미의 깜짝 출연으로도 화제를 모은 바 있는데, 지난 7월 14일과 15일 양일간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6년 만에 재연되며 40분여의 공연 러닝타임을 90분으로 늘리고 출연 무용수들을 절반 이상 바꾸어 새로워진 모습으로 선보였다. 결혼이 현대에 이르러 독립된 개인 간의 결합이자 애정의 결속으로 받아들여지면서도 그 낭만화된 애정이 결혼 안에서 휘발되는 모순과 개인 간 결합이라는 인식 바깥에서 결혼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의 무게를 함께 이야기한다.




 제목에서 작곡가인 스트라빈스키에게 대화를 청하는 공연의 주요 소품이 스탠드 마이크인 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스탠드 마이크는 그 자체로 무대세트의 역할을 하는 동시에 무용수들은 마이크에 대고 끊임없이 결혼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이야기한다. 무용수들의 목소리는 결혼에 대해 작품이 발신하는 메시지이자 공연의 음악이나 음향효과처럼 청각을 자극하는 기능을 하고 있다.


 김형민이 아직 돌이 되지 않은 듯한 아기를 안고 허밍을 하며 객석에서부터 무대로 입장하는 것으로 시작한 공연은 차진엽이 양옆에 스탠드 마이크를 끼고 힘겹게 걸어가는 동안 마이크가 차례차례 쓰러지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아기는 사랑스럽지만 육아는 아기의 사랑스러움만으로 상쇄되지 않는 고단한 노동이며, 결혼이라는 관계 안에서 개인의 목소리는 쉽게 삼켜진다. 

 무용수들의 목소리 역시 애정관계의 종착지로서 결혼에 대한 낭만적인 기대와 비혼 생활이 주는 불안함의 상쇄, 사회적 성공의 바로미터로서의 예식과 신혼집에 대한 과시, 다른 개인들 간의 결합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결혼 내의 갈등과 피할 수 없는 책임의 무게를 고루 건드리는데, 이 목소리들은 결국 우리에게 결혼이란 무엇이며, 결혼의 무게를 감당한다는 것은 또한 무엇인지를 함께 묻는다. 

 



 



 단순하고 아름다운 무대세트와 마이크와 의자 등 소품의 적절한 활용, 무엇보다 한예종 무용원 출신으로 국내외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며 각자 일가를 이룬 걸출한 무용수들의 움직임은 현대무용에서 기대하는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안무가 전미숙의 미학을 다시금 확인시킨다. 전미숙은 안무적으로 ‘춤과 음악의 종속적인 관계성을 해체’해 움직임이 음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스트라빈스키의 작곡 모티브처럼 독자적인 리듬을 가지고 음악과 동등한 매체로 움직임을 전달하고자 했는데, 후반부에 집중적으로 쏟아진 대사가 움직임에 대한 객석의 몰입을 방해한 것은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글_ 윤단우 무용칼럼니스트 
사진_ ⓒ BA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