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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비평

동시대 일상적 관점의 결혼에 대한 담론 - 전미숙무용단의 〈톡 투 이고르(Talk to Igor) - 결혼, 그에게 말하다〉

 10여년 전 88만원 세대라는 말이 나왔다. 20대 중 정규직에서 일하는 인원은 극소수로 대부분 비정규직으로 일하며 그도 월평균 88만원 정도 밖에 급여를 받지 못하는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말이다. 이에 따라 혼인 연령은 점점 늦어지거나 비혼 인구가 늘어났는데 이는 현재도 진행형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이 출산율이 가장 낮은 나라라는 파생적 의미까지 자연스럽게 발생되며 사회적 문제로 등장하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결혼은 어떤 의미로 현재 받아들여지고 있는가? 전미숙 무용단은 2012년 초연한 를 6년이 지난 현재, 어떠한 인식으로 존재하는지 고민하며 그 질문을 대중에게 하나의 화두로 던지고 있다.(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18.7.14.-15)

 이 작품의 제목은 ‘Talk to Igor’이다. 여기서 Igor(이고르)는 작곡가인 이고르 스트라빈스키(Igor Stravinsky)에서 나온 것이고, 또한 ‘결혼, 그에게 말하다’는 ‘그’가 작곡한 ‘결혼’에 여러 토대를 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다. ‘결혼’은 1923년 브로니슬라바 니진스카가 안무한 발레로 프랑스 파리에서 디아길레프발레단에 의해 초연된 작품이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결혼’은 러시아의 결혼과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에 놓인다. 음악의 시작은 높은 소프라노의 목소리가 중심에 흐르며 리드미컬하면서도 복잡하게 얽힌 남녀 합창의 반복적 프레이즈가 결혼의 역동적 통과의례를 담아내고 있다. 이는 남성보다는 사회적 제도에 의해 여러 힘듦이 배가 되는 여성의 심리적 요소를 그려내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여성주의적인 관점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에서도 이러한 모티브는 그대로 수용되는데 첫 장면도 아기를 안은 엄마가 노래를 읊조리며 객석을 가로질러 등장하고 무대에서 아이를 돌보는 장면에서 여성으로 삶, 엄마로서의 삶 등의 상징적인 서두를 이끌고 있다. 그러면서 스탠드 마이크가 여럿 놓이고 백색의상을 입은 남녀의 각각 움직임 속에서 다르지만 같은 모양새의 인간의 삶에 대한 군상(群像)을 표현하고자 한다. 여기서 남녀 무용수는 결혼에 대한 현실적이면서도 관념적인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그들은 결혼이 남녀의 사랑이 합치된 이상향인지 현명한 선택 속 미친 짓에 대한 고민을 넋두리처럼 말하며 지금 이 순간의 일상을 드러낸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도 결혼에 대한 정답 없음을 내포하며 현실적인 갈등을 몸짓으로 표현한다. 이는 단순하게 결혼이라는 의식을 통한 표현이라기보다는 이 시대의 삶에 대한 자존적 충돌로 격정을 드러낸다. 이런 모습은 편협하게 한정된 페미니즘이 아닌 진정한 여성주의적 시각에서 논의된 결혼,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한 솔직한 대화로 반영된다. 페미니즘이 그동안 제도적 장치나 정치적 모토에만 집중한 감이 없지 않지만 오히려 일상 속에 혹은 관습으로 남아있는 미시적인 측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오히려 더디게 나타났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에서는 일상적 담론의 전달과 그 이야기를 몸소 겪고 있는 무용수들의 표현이기에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래서 이 작품의 움직임은 역동적이다. 남녀 무용수로 조화를 이루지만 여성 무용수가 중심을 이루며 움직임도 강하고, 부드러움보다는 한 인간으로 생존하려는 강한 의지가 몸짓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관념적 중심을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의 출현을 예고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음악과 합을 이루며 실존적 저항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현학적인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이를 표현하고자 한 아쉬움이 있다. 물론 결혼은 수많은 넋두리와 같이 원론적 고민이 가득한 인류 대대로 이어온 숙제이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막연한 이야기가 존재하고 누구나 그 이후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문제지만 현상만 던지고 열린 맺음을 통하다보니 주제의식은 약해지고, 순간적 표현에만 집중시킨 감이 없지 않다. 물론 최고의 무용수들이었기에 움직임 등에서 흠 잡을 것을 없고 그것만으로도 이 작품은 완성도가 있겠지만 조금 더 현실적인 서브 모티브를 가지고 이를 화두로 던졌다면 6년 만에 재창작된 것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사진_ ⓒ BAK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