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앞에 항상 파격과 도발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해온 안은미가 올해로 자신의 이름을 딴 무용단 안은미컴퍼니의 창단 30주년을 맞이했다. 그는 시그니처가 된 원색의 화려한 의상과 ‘빡빡머리’ 헤어스타일 못지않게 격식과 형식을 거부하고 예측불허의 상상력을 보여주는 무대로 ‘안은미’라는 이름 석 자를 고유하고 특별한 스타일로 만들어왔다.
안은미컴퍼니가 30주년을 기념해 9월 28일부터 30일까지 3일 간 CKL스테이지에서 <슈퍼바이러스>를 올렸다. 안은미컴퍼니에서 10년 이상 활동해온 중견무용수들인 남현우, 김혜경, 박시한, 하지혜 네 명이 각자의 솔로를 통해 안은미컴퍼니가 30년 동안 걸어온 길을 압축해 보여주는 일종의 아카이브 퍼포먼스다. ‘슈퍼바이러스’라는 제목부터가 서양 현대무용의 사조와 기법을 따라하느라 경직되어 있던 한국무용계에서 이단아처럼 존재해온 안은미를 연상시킨다.
비트가 강한 라이브음악, 특이한 분장과 알록달록한 총천연색 의상, 기발한 무대연출 등은 안은미컴퍼니 공연에 따라붙는 특징들인데, 이를 한마디로 아우르는 단어는 ‘신명’이다. “무용은 이래야 한다”라는 교조적인 틀이나 “현대무용은 동시대를 담아내야 한다”라거나 “현대무용은 실험적 예술이어야 한다” 같은 담론적 가치에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가지고 있는 본연의 생기발랄한 에너지를 끄집어내 즐기는 것이다.
<슈퍼바이러스>는 공연에 출연한 무용수들 네 명의 움직임과 더불어 그동안 안은미컴퍼니가 해왔던 공연을 영상으로 편집해 함께 보여주는데, 이때 영상 속 공연들은 안은미컴퍼니의 색깔을 만들어온 역사로 존재하는 동시에 이 공연들이 무용수들의 개별적인 움직임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보여주는 예고편이 되며 또한 공연 중반부에 이르면 위트 있는 그래픽 디자인과 함께 작품의 일부가 된다. 무용수들은 지난 공연들에서 사용했던 의상과 소품들을 자유롭게 갈아입으며 각자의 신명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남현우는 능청스럽게 객석과 무대를 쥐락펴락하고, 김혜경은 한국무용과 발레와 막춤 사이에서 다이내믹하게 움직이며, 박시한은 움직임의 범위와 동작의 크기를 조절하며 거듭 반전을 보여주고, 하지혜는 큰 움직임으로 무대를 휘젓고 다니며 객석에까지 에너지를 전달한다.
안은미는 최근 몇 년간 할머니들과 아저씨들, 청소년들, 군피해자 어머니들과 장애인들을 무대로 불러올리며 중요한 것은 몸을 움직이는 기술이 아니라 몸에 축적된 기억임을 말하는 인류학적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리고 <슈퍼바이러스>는 네 무용수들의 몸에 쌓인 안은미컴퍼니의 오늘을 구축한 지난 공연들이 해당 무용수들의 몸 위에서 어떻게 해체되고 재구성되는지 보여주는 컴퍼니의 몸인류학 작업이라 부를 만하다.
무용수들의 신나는 움직임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재미에 더해 안은미컴퍼니의 공연 색깔을 재확인하고 그 역사를 자연스럽게 일별하게 되는 구성의 묘, 공연 마지막에 안은미가 등장해 네 무용수에게 메달을 수여하고 트로피에 소주를 부어 마시며 한바탕 축제로 마무리하는 특유의 피날레까지, <슈퍼바이러스>는 경직된 한국무용계에 안은미라는 슈퍼바이러스의 존재감을 재확인시켜주는, 60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모를 신명나는 도깨비 난장 같은 무대였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안은미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