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공연은 와이즈발레단의 〈인터메조(Intermezzo)〉, 보스턴발레단의 〈PAS/Parts〉, 광주시립발레단의 〈라 실피드〉가 트리플 빌로 한 무대에 올려졌다.
〈인터메조〉는 컴플렉션발레단에서 무용수로 활동하다 지금은 부예술감독 겸 상임안무가로 안무에 주력하고 있는 주재만이 와이즈발레단을 위해 안무한 작품으로, 지난해 와이즈발레단의 기획공연 ‘Play’에 객원 안무가로 초청되어 국내 관객들 앞에 처음 선보였다. 주재만은 안무의도를 ‘꿈과 현실 사이에 갇혀 있는 인간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는데, 무용수들은 몸과 몸이 밀착되어 자신의 공간을 충분히 부여받지 못한 채 선형을 이룬 구도 속에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 좁은 공간에서 무용수들은 쉼 없이 움직이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넓은 공간으로 멀리 뻗어가지 못한다. 갇혀 있기 때문이다.
주재만의 안무는 네오클래식에 기반한 깔끔하고 세련된 움직임을 보여주면서도 그 움직임을 수행하는 무용수들의 에너지가 터져나오는 클라이맥스를 곳곳에 숨겨두고 있다. 무용수들은 빈틈없는 군무를 수행하지만 와이즈 무용수들의 다양한 체형에서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자칫 기계적으로 보일 수 있는 군무에 생동감을 불어 넣으며 작품의 인상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PAS/Parts〉는 윌리엄 포사이드가 1999년 파리오페라발레단을 위해 안무한 작품으로, 이번 무대에서는 보스턴발레단의 무용수들 여덟 명에 의해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추출한 15분 버전으로 공연되었다. 공동주최 공연으로 올려진 ‘한국을 빛내는 해외무용스타 스페셜 갈라’의 주역들인 한서혜와 채지영을 주축으로 이소정, 패트릭 요컴, 존 램, 리아 씨리오, 데렉 던, 이힐란 실바가 긴장감 넘치는 금속성의 음악과 어두운 조명 아래서 포사이드 특유의 날카로운 예각을 만들어내는 곡예적인 움직임을 유연하면서도 절도 있게 펼쳐냈다.
순간순간 분절되거나 순간적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포사이드의 정교하고도 까다로운 움직임을 구현해내기 위해 무용수들은 힘과 민첩성, 균형감을 두루 요구받는데, 무용수들은 강도 높은 동작을 빠른 속도로 수행하며 발레 움직임의 날카로운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보스턴발레단 〈PAS/Parts〉 중 한서혜와 채지영 ⓒRachel Neville
광주시립발레단이 〈라 실피드〉로 발레축제에 참가함으로써 이번 축제 무대는 낭만발레의 대표작인 〈지젤〉과 〈라 실피드〉를 한 자리에서 감상한다는 의미를 한 겹 더하게 됐다.
트리플 빌이라는 구성에 따라 전막이 아닌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재구성한 버전을 보게 된 것은 다소 아쉬웠고, 앞서 공연된 〈인터메조〉나
하지만 광주시립발레단이 2012년 〈성웅 이순신〉 이후 7년 만에 서울 관객들과 만난 것이나, 지난 4월 22년 만의 재공연(광주시립발레단은 초연, 1997년 유니버설발레단 공연)으로 화제를 모으며 크게 호평받았던 〈라 실피드〉를 서울에서도 보게 된 것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대한민국’의 발레축제를 표방하면서도 서울과 수도권에 대다수의 단체가 몰려 있어 지방도시에 기반을 둔 발레단이 축제에 참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웠는데, 지자체 산하에 설치된 유일한 발레단인 광주시립발레단의 참여로 축제의 외연을 조금이나마 넓히는 의미가 됐다.
광주시립발레단 〈라 실피드〉 ⓒBAKi
광주시립발레단은 부르농빌 버전을 바탕으로 부부 무용가인 배주윤과 볼로틴 안드레이에게 재안무를 맡겼는데, 이들의 손길을 거치며 고아하고 소박하다는 평가를 받는 부르농빌의 안무는 보다 현대적이고 테크니컬하게 바뀌었다. 배주윤은 볼쇼이발레단 단원이자 러시아 마리엘공화국 공훈무용수이고, 볼로틴 안드레이는 볼쇼이발레단에서 수석무용수 겸 발레마스터로 활동하고 있다.
광주시립발레단 〈라 실피드〉 ⓒBAKi
서울 공연의 〈라 실피드〉는 에피와 제임스, 그리고 에피의 친구들이 함께하는 6인무, 실피다를 저주하는 마지의 귀기 서린 춤, 실피다와 제임스, 공기의 요정들이 함께하는 백색 군무, 이렇게 세 개의 파트로 구성되었다. 서울 관객들을 만나기 위한 발레단의 캐스팅에도 세심한 배려가 엿보였다. 실피다는 광주 공연의 퍼스트 캐스트였던 강은혜가 원 캐스팅으로 2회의 공연에 모두 출연했지만 제임스는 광주 공연의 두 주역이었던 이기행과 우건희가 더블 캐스팅되어 한 무대에 두 명의 제임스가 오르는 진풍경을 보여주었다. 에피와 마지 역의 무용수들 역시 더블 캐스팅으로 전진미와 조희원, 김희준과 김주현을 함께 데려왔는데, 최대한 많은 무용수에게 관객들과 만날 기회를 주려 한 의도로 보인다.
에피와 제임스, 친구들의 6인무는 매우 사랑스러웠고, 마지가 뿜어내는 어두운 기운 역시 위기감을 주며 다음 장면에서 전개될 드라마를 기대하게 만들었지만 전막을 보지 못한 관객들에게 이야기의 흐름이 온전히 전달되지 않는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이미 작품의 하이라이트를 발췌한 버전이긴 하지만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실피다와 제임스가 요정들과 함께하는 백색 군무였다. 국내 무대에서 자주 공연되는 백색 군무 작품들인 〈백조의 호수〉나 〈지젤〉, 〈라 바야데르〉가 밤을 배경으로 하는 창백하고 처연한 군무를 보여주는 것과 달리 〈라 실피드〉의 군무는 봄날의 숲으로 순간이동한 듯한 화사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객석에도 온기를 전달했다.
이번 무대가 좋은 기회가 되어 광주시립발레단의 다음 번 서울 공연은 전막 작품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글_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대한민국발레축제 조직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