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가을 국립극장레퍼토리시즌이 시작된 것은 국립극장 전속단체들에 혁신의 엔진을 달게 된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이 혁신은 보다 나은 내일을 꿈꾸는 희망으로 가득 찬 여유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한국 전통예술을 기반으로 한 역사가 오래된 전속단체를 거느리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차차 멀어지며 존폐 기로에 선 낡은 극장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 가까웠다.
전속단체들이 나름의 혁신 전략을 통해 젊어지고 새로워진 모습으로 관객들을 향해 다가가는 노력을 하는 동안, 국립무용단은 많은 인원이 출연하는 대극장 무용극 형식에서 탈피해 새로운 안무 실험을 하며 한국춤의 컨템포러리에 대한 화두를 제시하는 단체로 우뚝 섰다. 국립무용단의 이번 시즌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현대무용가 김설진 안무의 〈더 룸〉이나 단원들의 안무창작 프로젝트인 ‘넥스트 스텝’을 통해 정식 레퍼토리로 선정된 이재화 안무의 〈가무악칠채〉는 단체가 그동안 선보여온 한국춤의 컨템포러리 실험에서 뾰족하게 솟아오른 젊은 결과물이다.
한국춤, 한국인의 춤, 현대한국인의 춤, 그리고 한국적인 것
국립무용단은 레퍼토리시즌 출범 후 안성수, 류장현, 신창호 등의 현대무용가를 초청해 현대무용 안무가와 한국무용의 춤꾼이 만났을 때 어떤 움직임의 결과물이 나타나는지 꾸준히 실험해왔다. 김설진 안무의 〈더 룸〉은 그러한 움직임 실험의 연장선상에 있는 작품이다. 테로 사리넨이나 조세 몽탈보 등 해외안무가를 초청해 한국무용의 경계를 넓히는 작업을 해왔던 국립무용단이 젊은 현대무용가와의 작업을 통해 한국춤의 컨템포러리가 어디까지 와 있고 또 현 시점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묻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신창호가 ‘글리치’라는 주제로 한국무용의 미래를 질문했다면 김설진은 한국무용 신작이 늘 직면하는 질문, ‘한국무용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고 되묻는다.
‘방’은 김설진이 꾸준히 관심을 가져온 소재다. 그는 방이 품고 있는 정서에 관심을 두고 방에서 일어나는 해프닝을 작품으로 옮기는 일련의 작업들을 해왔다. 이번 국립무용단의 <더 룸>은 그가 그동안 해온 방에 관한 이야기들 중에서 가장 복잡한 정서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같은 공간을 공유하지만 제각각 다른 기억과 삶을 펼쳐 보이는 무용수들의 몸짓에는 그리움과 아련함, 슬픔, 따분함, 단조로움, 설렘, 기대 등과 같은 여러 가지 감정들이 혼재해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들이 부딪치는 순간들은 실소를 자아내는 우스꽝스러움이 함께한다. “인생은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다”라는 찰리 채플린의 말은 방 안에서 각자의 기억과 감정들을 움직임으로 풀어내는 무용수들과 그 무용수들을 지켜보는 관객들 사이를 설명하는 가장 적절한 문장이다.
방에 심어진 각자의 기억은 엇갈린다. 어떤 여인은 아기의 신발을 보며 죽은 아이를 그리워하고, 또 다른 여인은 연인과의 미래를 꿈꾸며 언젠가 만나게 될 아기를 설렘과 함께 기다린다. 어떤 남자는 과거의 여자와 현재의 여자 사이에서 과거를 잊지도 현재에 충실하지도 못한 채 괴로워한다. 둘만의 공간이 필요한 젊은 연인들에겐 밀회에 방해가 되는 타인의 존재가 성가시고, 중년 남자에게도 한때는 그와 같은 뜨거운 시간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휴식이 필요한 공간을 내주어야 하는 것이 민망할 터다. 늙은 어머니를 모시는 아들은 어머니를 바라보느라 아내의 고단함을 보지 못하고, 아내에게 남편은 밉지만 같이 살아야 하는 애증의 대상이다.
누군가는 방에 잠시 머물렀다 떠나고, 누군가의 삶이 흔적으로 남아 있는 그 자리에 또 다른 누군가가 들어와 다른 삶을 이어간다. 공간에는 삶이 쌓이고 겹쳐진다. 출연진 중에서 최고령자인 김현숙의 춤을 김미애, 김은영, 문지애, 박소영 등 젊은 무용수들이 이어받아 추는 장면은 작품 안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이다.
김현숙의 춤 외에는 한국무용의 춤사위도, 국악의 가락도 찾을 수 없는 이 작품을 과연 한국무용으로 보아야 하는가 하는 질문은 유효하다. 김설진은 이 질문에 대해 ‘한국무용이건 현대무용이건 춤이면 다 똑같지’라는 대답 대신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한국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돌려주는 것으로 대신한다. 우리 고유의 복식인 한복은 이제 명절에도, 결혼식이나 돌잔치에서도 찾기 어려운 의복이 되어가고 있고 고궁에 입장할 때 대여해 입는 한복에 대해서는 전통복식이 아니라는 비판의 소리가 나온다. 국악을 클래식보다 듣기 어려워하는 현대인들이 즐겨 듣는 것은 K팝이며, K팝 안무의 커버댄스를 추는 현대인들을 만나기는 쉬워도 한국 전통춤의 춤사위를 구사할 줄 아는 현대인들을 만나는 것은 어렵다.
젊은 시도, 젊은 안무가, 젊은 한국춤, 그리고 전통의 현대화
한국무용 공연에서 ‘한국춤의 컨템포러리’나 ‘동시대적 한국춤’만큼 자주 볼 수 있는 표현이 있다. ‘전통의 현대화’가 바로 그것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경험한 나라에 살고 있는 탓인지, 이렇듯 일방향적이고 직선적인 변화를 추구하는 것에는 폭력이 동반되기 쉽다는 인식이 없다시피하며, 이에 대한 예술가들의 무감각 역시 놀랍기 짝이 없다. ‘전통의 현대화’ 역시 전통이 왜 현대화되어야 하며 현대화란 무엇인지, 그리고 ‘현대적인 모습으로 변모시키다’ 혹은 ‘현대인의 삶에 다가가다’ 같은 표현이 아니라 굳이 산업화 시대의 언어를 빌려다 쓴 듯한 ‘현대화’라는 표현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고민이 생략된 채 무분별하게 남발되고 있다. (이와 비슷한 용례로 ‘대중화’가 있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지만 공연이 보여주는 ‘전통의 현대화’는 그 정도의 차이는 있으되 대개 ‘오늘날의 시선으로는 낡고 촌스러워 보이는 전통 춤사위를 무대나 의상을 세련되고 미니멀하게 꾸미는 것’ 정도로 구현되기 마련인데, 그러한 시도는 또한 ‘전통의 현대화’라기보다는 ‘전통의 도로 전통화’ 정도로 명명해야 할 결과물에 그치기 십상이다.
이재화 안무의 〈가무악칠채〉는 단원들에게 안무 실험의 기회를 주는 프로젝트로 지난 시즌 선보인 ‘넥스트스텝’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이번 시즌 정기공연 라인업에서 길이가 두 배가량 늘어난 장편으로 일신해 재공연 되었다. 농악의 칠채 장단을 바탕으로 제목은 한국무용을 압축적으로 설명하는 표현인 ‘가무악일체’에서 따왔다. 원래 표현이 의미하는 바대로 노래와 춤과 악기 연주를 한 사람이 다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출연진이 각각의 파트를 나눠서 수행하는 형식이지만 쉽지 않은 조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냈다.
칠채는 길군악칠채나 마당칠채를 줄여서 부르는 말로 농악에서 행진에 쓰이는 쇠가락의 일종이다. 주로 행진할 때 치기 때문에 길군악, 한 장단에 징을 일곱 번 쳐서 칠채라고 이른다. 이재화는 박자가 복잡하고 변화가 잦기 때문에 무용에서는 거의 이용되지 않는 장단인 칠채를 춤과 결합하고, 여기에 소리꾼을 끌어들여 가무악을 완성했다.
칠채에서 연상되는 여러 가지 아이디어들을 춤과 음악, 노래와 대사로 자유롭게 풀어내며 몸짓과 무대 구성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이 작품을 무용단에서 내놓은 보도자료에서는 ‘칠채-볼레로’라고 명명하고 있는데, 장단을 가지고 노는 무용수들의 몸짓과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맞춰 익살스러운 재담을 나누는 듯한 연주가 서로 빈틈없이 쌓아올려지다 마지막에 이르러 폭발하는 장면은 가히 압권이라는 표현이 무색하지 않을 정도다. 사이키델릭한 음향과 함께 광선처럼 표현된 시각 효과는 무용수들이 거대한 현악기 속에 들어가 움직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흡사 무용수들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는 것처럼 무용수들의 움직임에 반응하며 시시각각 변화하는 광선의 효과는 몸짓과 가락의 대화를 눈으로 보는 듯한 착시를 준다.
이재화는 작품을 선보이기 전 “칠채가 과거의 장단이 아닌 현재의 리듬으로 전달되길 바란다”라는 일성을 던졌는데, 한국 전통의 장단, 그것도 무용에서 잘 쓰이지 않는 장단을 소재로 춤과 소리의 새로운 옷을 입힌 그의 시도는 젊은 예술가다운 혁신이자 ‘전통의 현대화’라는 화두를 붙들고 고민하는 예술가들에게 전통의 어느 부분을 취해 현대로 가져올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도 귀한 성취가 아닐 수 없다.
또한 작품 외적인 측면에서도 〈가무악칠채〉는 단원이 단체의 안무 개발 시스템 속에서 발전된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점에서, 국립무용단이 레퍼토리시즌을 거듭하는 동안 무용수가 몸으로 체득한 경험들이 쌓인 결과물을 내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젊은 안무가 육성과 동시대와 호흡하는 작품 개발이라는 고민을 안은 무용계에 과정 없는 결과는 없다는 기본 중의 기본을 되새기게 해주었다.
글_ 윤단우(무용칼럼니스트)
사진제공_ 국립무용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