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무용은 흔히 한국무용, 현대무용, 발레라는 삼분법으로 고착되어 있다. 이러한 나눔은 무용과가 생기는 즈음부터 지금까지 관념화되었고, 무대공연예술의 토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동안 인구 감소에 따라 입학 인구도 줄어들면서 무용과도 자연발생적으로 정리가 되고, 무용과의 존재가치에 대한 여러 논의가 함께 이루어졌다. 이는 아카데믹 중심의 무용계가 지닌 장단점에 대한 문제를 바탕으로 무용이 대중과 소통을 제대로 하였는지 본질적인 문제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에 반해 실용무용에 대한 관심은 조금씩 높아가고 있다. 스트릿댄스, 방송댄스 등등 쓰임에 따라 여러 장르로 나뉘는 실용무용은 대중문화의 범위가 넓어짐과 동시에 수요가 많아지며 점점 각광을 받고 있다. 이는 무용과가 줄어듦에 비해 전문학교, 교육원 등이 점점 늘어나는 현실적 모습에서도 이들의 가치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굳이 제도권의 대학 교육에서 무용을 배워 비효율적 구조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반성은 이러한 대중적 소통을 통해 하나의 대안으로 자리 잡기 시작하였다.
이번
강창우의 ‘19-23’은 팝핀을 중심으로 춤에 대한 열정을 드러낸 무대이다. 팝핀의 특징은 관절의 꺾임을 통해 순간적 희열을 전해주는 춤이다. 어떤 구성보다는 그 춤 자체를 즐길 수 있는 춤으로 이 무대에서도 모티브보다도 단순하게 팝핀에 대한 자신만의 생각을 담으려 하고 있다. 이주향의 ‘시선’은 기승전결을 두고 음악의 흐름에 몸을 실어 자아를 표현한 무대이다. 자유 몸짓의 의지와 함께 기본에 충실하여 완성도를 높이며 서정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다.
김혜빈의 ‘인연’은 가요 ‘인연’을 춤으로 재해석한 무대이다. 단순하게 이 무대는 리듬에 맞추어 해석하기 것에서 나아가 다큐 사랑 ‘너는 내 운명’에 나온 애절한 사연을 바탕에 두기에 몰입감을 전해준다. 김성빈의 ‘Pressing’은 안무자에게 주어지는 압박감을 어떻게 춤으로 자유롭게 풀어내는지를 말하고자 한다. 매듭과 풀림은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의 몸이다. 압박이 있어야 자유로움이 분출되듯 이 작품은 하우스댄스의 경쾌한 발놀림과 더불어 군무의 규율 속에서 개성이 돋보인다.
박현우의 ‘The other side’는 뮤지컬 영화 ‘The Greatest Showman’의 ‘the Other Side’에 대한 안무자의 재해석으로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무대이다. 뮤지컬에서 왜 춤이 필요하고 어떻게 질감을 높일 수 있는지 이 흥겨운 무대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박찬희의 ‘Keep going’은 일상을 살아가는 젊은 춤꾼의 이야기가 추상적 표현 속에서 리듬에 담아 자아를 통해 풀어놓고 있다.
함새미의 ‘We sing Halleluah’는 가요 ‘여러분’을 종교적 의미로 해석하여 이를 춤으로 담아내고 있다. 종교와 무용의 상관적 의미에 대한 현재성을 묻고자 한 무대이다. 박정은의 ‘Return-소환’은 스트릿 댄스다운 무대로 흥겨움이 함께 한다. 관객을 장악하는 흡입력도 있고, 끼가 넘치는 무대를 선보이며 멋지게 피날레를 장식한다.
이들의 무대에서 느낄 수 있는 점은 8명 모두 개성이 뚜렷한 춤을 추고 있다는 점이다. 각각이 춤의 성격도 다르며 지향하는 바도 다르지만 이들을 통해 실용무용이 나아갈 바를 어렴풋하게 발견할 수 있다. 그래서 이들의 개성처럼 적용 범위가 다양하기에 무대공연예술로서 실용무용의 확장성도 쉽게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이들에게는 안무자로 하나의 주제의식을 가지고 무대를 구성하는 어려움과 도전이 따랐다. 그럼에도 리듬에 맞추어 단순하게 안무를 하는 것이 아닌 구성, 말 그대로 코레오그래피를 적용해보았다는 측면에서도 의미를 지닌다. 물론 개개의 능력에 따라 편차가 따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도전이 스트릿댄스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무대이기에 나름의 의미를 지니는 무대였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사진제공_ 정수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