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통춤의 길은 지난(至難)하다. 이는 전통춤이 기법을 배운다고 짧은 시간 안에 체득되는 것이 아니며 몸에 익숙해지고 개성이 붙으려면 인고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 전통춤의 도제식 교육 방식은 한 스승만을 섬기는 것이 관습이어서 여러 춤을 다양한 색깔로 담아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니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
임수정의 경우는 이러한 담론에서 여러 논의가 가능한 춤꾼이다. 기나긴 시간 동안 전통춤을 수련하여 자신의 개성을 담아냄은 물론이거니와 여러 대가들의 춤을 섬기면서도 그 원형을 잘 전승한 춤꾼 중 한사람이기 때문이다. 이번 ‘2018 임수정전통춤판<무애(無碍)>’(서울 남산국악당, 2018.11.6.)도 그러한 내음이 짓게 묻어난 무대로 긴장과 이완의 소통 속에서 관객의 감흥을 불러일으킨 공연이었다.
이 무대는 1995년 제1회 개인 무대를 가진 이후 17번째 무대라는 점에서 놀라움과 그 꾸준함에 상찬할 수 있다. 또한 제목 ‘무애’라는 말처럼 스승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거침없는 개성으로 드러낸 무대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이 무대는 ‘승무(구도)’, ‘울산학춤(선무), ‘한량무(풍류여정)’, ‘춤본Ⅱ(춤내림)’, ‘판소리(흥보가)’, ‘진도북춤(신명)’으로 구성하였는데, 승무, 춤본Ⅱ, 진도북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승무는 한국 전통춤의 대표성을 띠는 춤으로 춤꾼들이 멋들어지게 무대에서 펼쳐 보이고 싶은 춤 중 하나이다. 임수정은 이매방에게 승무를 사사하였는데, 이매방류 승무의 특징은 음양의 조화 속에서 은현(隱現)의 미를 드러내며 그 경계의 미학을 유려하게 보이는 춤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본질적으로 이매방이 가지는 외유내강의 춤정신에서 비롯되는데 이에 대해 임수정은 시원스러움이 있으면서도 세밀하고, 여성스러우면서도 역동적인 승무의 흥취를 드러내고 있다. 이는 스승의 양태대로의 답습이 아닌 가장 핵심적인 요소를 자신의 몸짓으로 담아내기에 가능한 면모이다.
임수정 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장단이다. 전통춤에서 장단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정도로 큰 의미를 지니는데 그는 이론 연구에서도 장단에 집중하여 이론과 실제에서 그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그의 북가락은 빈틈과 거침이 없는 경지로 몰고 가 피안세계로 이끌며 장단의 자유로움과 춤이 조화를 가져온다.
‘춤본Ⅱ’는 김매자의 대표춤으로 알려져 있다. 이 춤은 박병천의 진도씻김굿 음악을 바탕으로 맺음과 풀림의 기승전결에 의해 구성된 작품이다. ‘춤본Ⅱ’를 이번 무대에 수용한 것은 아무래도 스승인 박병천에 대한 그리움과 그의 정신을 잇고자 하는 애정에서 출발한다. 박병천과 임수정의 교집합은 아무래도 전통음악에 대한 이해와 무대에서 실제 적용이란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이 춤에서 임수정은 씻김굿 음악이 지니는 격정성을 유동적 몸짓으로 응축하여 펼치고 있다. 이번 무대에서는 그의 개성이 제대로 발현되지는 못하고 기본에 충실한 감이 없지 않지만 앞으로 지속적으로 선보일 레퍼토리라는 측면에서 의미를 지닌다.
진도북춤은 잘 알려져 있듯 박병천에 의해 무대화된 민속춤이다. 문화재가 아닌 전통춤이 이렇게 보편화된 것도 박병천과 그의 제자들에 의한 파생적 노력에 힘입은 바 큰데, 그 노력의 한 축에서 임수정을 논할 수 있다. 임수정의 진도북춤은 웅혼하면서 형식미가 있다. 그는 민속춤이 지니는 본질인 자율적인 행위의 질서가 바탕이 됨과 동시에 기본에 충실하여 흐트러짐이 없다. 또한 그가 여성으로서는 조금 큰 신장임에도 불구하고 균정미를 보이는 것도 진도북춤의 원형질과 전형성을 확보하여 유려함을 보여줌에 있을텐데 어느 무대에서건 그의 진도북춤이 두드러지게 보이는 것도 균형을 유지하며 즉흥과 본질을 제대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통춤도 거장들의 한 시대가 지나며 새로운 흐름 속에서 자연발생적인 변혁기에 놓여있다. 그동안 무형문화재를 중심으로 전통춤의 확산이 이루어졌다면 이제는 본질적인 의미를 공고히 하는 전통춤의 내실화가 필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2018 임수정전통춤판<무애(無碍)>’는 임수정의 무대는 물론이거니와 찬조한 공연까지 포함하여 전통춤의 개성과 정체성을 드러내며 관객과 소통한 공연이라는 측면에서 가치가 높다 할 것이다.
글_ 김호연(문화평론가)
사진제공_ 한국전통춤문화원